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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 탓에 멸종위기 몰린 궁노루
사향 탓에 멸종위기 몰린 궁노루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
  • 승인 2019.01.23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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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14.궁노루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주변에 조성된 비목공원은 가곡 ‘비목(碑木)’의 탄생을 기념하는 곳이다. 한명희 시에 장 일남이 곡을 붙인 비목노래를 필자도 무척 즐겨 부른다. “초연히 쓸고 간 깊은 계곡/깊은 계곡 양지녘에/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이름 모를 비목이여/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달빛타고 흐르는 밤/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울어 지친 비목이여/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그리고 “풍경(風磬)이 있으면 맑은 소리 울려나고, 궁노루 있으면 향내가 풍기는 법이다.”라고 한다.

아무튼 앞의 비목노래와 속담속의 ‘궁노루’는 다름 아닌 ‘사향노루’렷다. 그리고 강원도 화천 비무장지대(DMZ)에는 멸종위기에 내몰린 사향노루와 산양이 살고 있다. 비무장지대가 없었다면 벌써 절멸(絶滅)했을 사향노루이니 ‘DMZ의 역설(paradox)’라고나 할까. 동존상잔의 뼈아픈 대가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보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향노루  (사진출처 = pxhere)
사향노루 (사진출처 = pxhere)

사향노루(麝香─,Moschus moschiferus)는 소목, 사향노룻과에 드는 발굽(hoof)을 가진 유제류(有蹄類)로 남북한 · 시베리아 · 러시아 · 중국북서부 · 몽고 등 동아시아에 토착(土着)하여 살고 있다. 사향노루(Siberian musk deer)는 주로 1,900~2,600m의 고산지대에 서식하고, 겨울에는 스라소니나 삵을 피해 아주 뾰족한 바위가 즐비한 산악 언저리에서 지내지만 여름에는 나무가 짙게 우거진 강가의 풀숲으로 털레털레 내려오는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16호로 지정된 동물로 고가의 한약재인 사향을 얻으려는 밀렵꾼들의 행패와 6.25사변 탓에 1960년대를 기점으로 남한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강원도비무장지대를 비롯하여 전북, 경북 등의 일부 산악지대에 30여 마리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것으로 추리한다. 그리고 중국, 러시아 등지에 아직도 꽤 많이 남았을 것으로 본다.

사향노루는 노루는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작은 고라니보다 작다. 몸길이 85~87㎝, 어깨높이 56~67cm, 꼬리길이 27㎝ 남짓, 몸무게 15~17kg이고, 꼬리는 흑갈색이다. 그리고 한 쌍의 젖꼭지를 가지고 있고, 사슴 · 노루 · 고라니와 같은 무리와는 달리 膽囊(쓸개)이 있다. 또 엉덩이 쪽이 어깨 쪽 보다 약간 높고, 귀는 큰 편이며, 꼬리는 아주 짧고, 암수 모두 뿔이 없다. 대신 암수모두 엄니를 가지는데, 암컷의 것은 작고, 수컷은 위턱송곳니가 길게 자라난 칼날 같은 엄니가 입 밖, 아래 턱 밑으로 뻗었고, 평생 10cm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리고 궁노루의 몸 빛깔은 어둔 갈색이고, 작은 얼굴은 캥거루를 닮았으며, 몸이 똥똥한 편이고, 앞다리는 가늘고 짧지만 뒷다리는 길고 힘이 세며, 달리기 보다는 뒤뚱뒤뚱, 뚜벅뚜벅 걷는 편이지만 급하면 허겁지겁, 뱝뛰어(깡충깡충 뛰어)간다. 12~1월에 짝짓기를 하고, 임신기간은 6개월로 5,6월에 1~2마리를 낳으며, 성숙하는데 1년이 걸리고, 수명은 10~14년이다.

그렇다. ‘有角無齒요 有齒無角’라 했다. 이 말을 풀어 옮기자면 “사슴과 같이 뿔이 있는 짐승은 예리한 이가 없고,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동물은 뿔이 없다.”란 뜻으로, 한마디로 하늘은 뿔과 이빨을 다 주지 않는다. 사향노루나 고라니는 엄니(큰이)가 발달한 대신 뿔(角)이 없고, 닮은 노루는 뿔을 가졌다. 이 또한 報償現象(보상현상)인 것!

발굽이 길고 넓기 때문에 후미지고 가파른 절벽을 타고 다니고, 까마득하게 높고 더할 나위 없이 깎아지른 암벽에서 미끄러져 구르지 않으며, 진구렁이나 눈구덩이에 잘 빠지지 않는다. 후각은 둔하지만 청각?시각이 뛰어나 눈치 빠르게도 멀리서도 쉽게 위험이나 인기척을 감지한다.

그리고 수줍고 겁 많은 사향노루는 홀로 살고, 야행성으로 짧은 거리만 이동하며, 보통 새벽저녁 무렵에 먹이를 뜯고, 낮에는 덤불숲에 숨는다. 초식성으로 주식은 地衣類(lichen)이지만 작은 나뭇가지나 나무껍질?풀잎?솔잎 따위를 먹고, 풀이 없는 겨울철에는 99%를 지의류로 채운다.

수놈은 3종류의 향을 내는 샘을 가졌으니‘발굽사이 샘(蹄間腺)’, ‘꼬리 샘’, ‘사향 샘(musk gland)’이 그것들이다. 사향은 생식기와 배꼽 사이의 피하에 있는 달걀만한 주머니(香囊) 속에 들었고, 세상에서 동물이 만드는 유기물질 중에서 가장 비싸다한다. 사향의 주성분은 무스콘(muscone)이고, 페놀(phenol), 밀랍(wax), 스테로이드(steroid), 콜레스테롤(cholesterol), 안드로스테론(androsterone) 등이다.

그런데 필시 사향노루수놈이 사향을 갖는 까닭이 있을 터다. 그렇지 않은가? 오줌을 지리기도 하지만 특별나게 사향을 영역(領地)표시수단으로 쓰고, 암놈들을 유인하며, 또 암놈으로 하여금 이내 발정하고 배란케 한다. 그런가하면 사향이 남성을 유혹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서 옛날궁중여인이나 대갓집여인네들이 이 사향을 향주머니에 넣어 옷섶에 간직하였으니 남정네들의 마음을 사기 위함이었다한다.

그리고 곰이 웅담 때문에 죽어나가듯이 사향노루는 사향 탓에 여태 죽었다. 또 사향은 옛날부터 향수 말고도 흥분과 경련을 가라앉히는 진경제(鎭痙劑)로, 또 기절했을 때 정신이 들게 하는 영험한 약으로도 썼다. 그러나 요사이 아주 값싼 인공합성사향으로 대치하기에 이르렀다니 향수나 약재로 쓰기 위해 수놈사향노루를 잡을 필요가 없어졌다한다. 거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다! 어쨌거나 죽기 전에 시향노루가 마구 뛰노는 세상을 봤으면 참 좋겠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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