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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 계간지 여름호 리뷰
풍경 : 계간지 여름호 리뷰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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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세운 문제의식 보이지 않는다"

계간지 여름호를 보니 '사회비평'과 '전통과현대'의 빈자리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사회비평'은 편집위원을 일괄 교체하는 과정에서 잠깐 휴간을 선언했고, '전통과현대'는 여러 가지 내부사정으로 무기한 발행중단에 접어들었다. 계간지 수난시대를 말해주는 것인지, 아니면 시대와의 발전적 진통의 과정인지, 후자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진보' 등 시의성 있는 이슈 파고들기
나머지 책들은 제 시간에 도착했다. '당대비평', '창작과비평', '황해문화'의 특집과 기획은 '시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황해문화'(새얼문화재단 刊)는 '보수'를 다뤘던 저번호에 이어서 이번엔 '한국의 진보, 새로운 가치와 양식을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최근 네그리적 문제의식으로 평단에 복귀한 80년대 운동권의 '상징'인 정치평론가 조정환 씨가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풀었다.
그는 "오늘날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기존 진보는 파괴와 퇴보의 다른 말이 돼버렸다"고 규정짓는다. 그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진보가 다중의 구성력과 활력에 연속성이라는 척도를 부과하고 착취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다중의 힘이 이런 척도부과적 행위를 거부하고 자기해방의 길을 가는 것이 진보의 새로운 방향"임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대선 이후 개혁세력과 일정한 선을 긋고 활동하고 있는 진중권씨는 "정권을 획득하자마자 하나의 기득권으로 집단화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한계와 그 지지세력의 실망스런 행태들을 지적하면서, 지금부터 진보진영은 지금까지의 '반수구연대'라는 허구적 전선을 본격적인 '보수-진보'의 대립 전선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화하지 않는 진보, 대중화되고 선정화된 진보에 대해 매몰차게 고개를 돌리는 반면, 내부 반성의 기미는 별로 없었다.
'참여민주주의와 '참여정부', 그 간격에 대하여'를 특집으로 마련한 '당대비평'(생각의나무 刊)에서는 별 다른 논리를 발견할 수 없었다. 정치가의 '책임윤리'를 강조한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글은 그저 좋은 덕담처럼 들리고, "참여가 정치적 목표를 위해 뛰어들거나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자의 삶을 동시에, 성찰적으로 보는 시민사회의 철학"이라고 강조한 박형준 동아대 교수의 메시지는 귓가에서 맴돌 뿐이었다. 프랑스 좌파의 실패담을 통해 참여정부의 참여가 신자유주의적 약자 배제와 길항할 것이라 경고한 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의 글은 현 정부의 가까운 미래를 암울하게 예견해 긴장감을 준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지방분권의 '분권'이라는 말에서 빈틈을 찾아내 공격하고 있다. 그의 비판의 요지는 오늘날 지방자치가 권력을 나눠준다는 식의 시혜적 입장에 서 있으며,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지방활성화에 목표를 두고 있어 지방자치의 본질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의 래디컬한 시각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동북아 중심국의 세가지 시나리오 제시
그러고 보니 '당대비평'은 틈을 사유하겠다는 지난호의 문제의식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명확한 근거도 없이 현정부에 너무 비판적인지라 균형감각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고, 당대적 주제를 찾고 있지만 그 치열성이 무뎌진 느낌이다.
'창작과비평'(창작과비평사 刊)은 기존에 하던 대로 동아시아 담론의 연장선상에서 동북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총 네 개의 글 가운데 우정은 미시건대 교수(정치학)의 글이 단연 돋보인다. 동북아도 '특화' 항목을 정해서 해야한다는 걸 정치경제학적 능란함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동북아 중심'의 항목들을 크게 세가지로 구분하면서 "금융과 재정에 대한 강조는 서울이 전지구적 도시가 되는 걸 필요로 하고, 운송과 물류 거점에 대한 강조는 중국의 지역경제로 통합되는 것이며, 두 개의 한국과 시베리아를 통한 육상수송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동아시아에서 가장 떠들썩하고 생동하는 민주적 문화 중 하나를 가진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물론 이것들이 하나라도 이뤄지기 위해서는 한반도 중립화가 필수적이라 덧붙였다.
앞에서 소개한 세가지 시의성과는 달리 '문화과학'(문화과학사 刊)은 '쟁점'과 '시사논단'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지식, 지식인'을 책 전체의 특집으로 꾸미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현단계 한국의 지식생산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위기상황을 진단하는 것에 초점이 가 있다. 지식인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지만 기존에 논의됐던 부분들을 다듬고 확대재생산한 것이다.
먼저 아쉬운 점을 말하고 쉽다. 지적대중의 성격을 논한 노명우 한예종 강사, 문학연구의 대안적 지식생산을 위해 질문을 던진 이동연 상지대 겸임교수, '국어사전'과 근대지식의 관계를 소묘한 고길섶 언어평론가의 논문은 너무 평이하거나 문화이론적 논의로 일관돼 있어서, 기대한 만큼 아쉬움이 크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가령 2002년 군중현장의 배후에 있는 대중들이 독자적 세계해석을 했다는 점에서 '지적'이지만 전통적 미디어에 접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중이라며, 이를 '지적 대중'이라 평한 노명우의 글은 나름대로 그럴듯하지만, 결국 인텔렉추얼과 대중의 추상화된 사실을 접합시켜놓은 말놀이에 불과하지 않냐는 느낌이다.

지식의 공공적 생산성을 향해

지난 1997년 경부터 신자유주의적 지식생산 패러다임을 비판해온 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그간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교수노조, 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 등 지식생산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사회운동이 지식의 전략적 생산성에 답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변화를 촉구했다. 지식생산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와 투쟁하기도 해야겠지만, 동시에 대학에서 생산되는 지식의 질적 향상을 통해 지식이 공공영역에서 생산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이 과정에서 학문들과 지식들, 사용자와 생산자 사이의 권력을 민주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덧붙였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의 '민주화와 지식인의 사회참여'도 같은 맥락에 있다.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와 편집위원진들의 좌담은 과거의 지식생산 조건을 반면교사로 삼고자 기획됐는데 김진균 교수의 학문세대가 어떤 형성과정을 거쳤는지, 지식생산의 변화와 특징은 무엇인지 국대안 시절부터 1980년대까지를 훑고 있다. 결론격으로 나온 얘기는 "단일 분과학문에서 벗어나 문제의식과 배경지식을 공유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콜로키움이 필요하다"라는 것. 언론이나 기업, 정부 같은 데 얽매이지 않는 지식인의 자율적 영역의 구축은 학계의 해결되지 않은 과제라는 걸 재인식시킨다.
이 외에 '문학과경계'(문학과경계사 刊)는 창간 3주년을 맞아 혁신호를 펴냈고, '환경과생명'(환경과생명 刊)도 새만금, 이라크전 이후의 평화담론의 향방을 주제로 여름호를 내놨다.  '문학과사회'(문학과지성사 刊)는 이 시대의 국가와 국가주의의 의미를 탐색하고, 그것이 문화와 문학 안에서 구현되는 방식을 성찰한 특집을 마련했다.
미디어 범람의 시대에 계간지의 향방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흔적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특집이나 기획에서 익숙한 논의와 논법들이 반복되는 까닭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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