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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꿈’을 꾸어야 한다 
그래도 ‘꿈’을 꾸어야 한다 
  •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 명예특임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19.01.21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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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2019년 새해가 시작됐다. 대학 총장들은 신년사에서 주로 ‘미래’, ‘혁신’, ‘경쟁력‘ 등을 이야기하며 의욕을 보이지만, ‘재정’, ‘평가’, ‘순위’라는 용어에서는 답답함을 드러낸다. 교육부 총리는 대학 혁신을 위한 자율성 보장, 교육·연구 경쟁력을 위한 지원을 이야기하지만, 대학들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정부는 올해도 작년 대입제도개편 공론화 과정처럼, 대학들의 비전이나 요구와는 별 상관없이, ‘관리자’ 위치에서 획일적인 틀로 ‘재원 나눠주기’ 중심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구조조정’, ‘재정지원’의 틀에서 ‘양적 줄 세우기 평가’가 반복되고, 시간강사법 적용, 정규직화 등에 대해 재정지원과 연계하며 대학에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올 한해 대학의 보직자들은 어떻게 지내게 될까? 우선 대학혁신지원사업 계획서 제출에 바쁠 것이고, 시간강사법 8월 시행에 대한 대응, 내년도 4단계 BK21사업 대비, 그리고 ‘공영형 사립대학’ 등 앞으로 다가올 여러 이슈에 대한 전략 세우기 등에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 한해 ‘교수 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전개될까? 그동안 그러했듯이 교원업적평가, 교육 혁신, 연구비 확보, 연구 성과에 대한 일들로 이리저리 분주히 오갈 것이다. 그리고 대학본부는 평가지표로, 정부는 규제와 관리로, 교수들의 마음을 계속 편치 않게 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의 교육, 연구, 사회적 역할에 대한 본질적, 내용적 고민보다는, 모두가 당장 필요한 투입 요건, 수단에만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정부와 대학이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혁신’, ‘구조조정’, ‘평가’라는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지 않고,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는지 목표가 분명치 않다는 점도 안타깝다. 

정부마다 바뀌는 정책추진방식, 이에 대응하기 숨 가쁜 대학.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틀에 계속 머물러있을 것인가? 정부와 대학은 벨기에의 겐트대와 캐나다의 몬트리올대에서 배워야 한다. 

세계 대학 순위 50위인 겐트 대학 총장은 올해 초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무의미한 “랭킹” 경쟁에서 빠져나오겠다고 선언했다. ‘혁신’을 지수화하며 순위를 평가하는 관습적인 기준과 평가 방식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근본적인 혁신을 가져올 수 없고 진정한 지식 탐구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학모형을 꿈꾸는 것이다.

몬트리올대는 장기적으로 그 지역을 ‘AI의 성지’로 만들어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두뇌와 자금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1990년대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조차 AI를 외면했을 때, ‘조건 없이’ AI 연구자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AI 겨울’이었기 때문에 당시 세계 정상급 연구자들이 몬트리올에 모이게 돼, 오늘의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현재 딥 러닝 분야에서 200명 정도의 대학원 졸업생을 배출한다.

우리 정부나 대학도 이제는 장기적 안목의 철학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당장의 현안에 맴돌며, 미래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대학들이 올해 신년사에서 수많은 평가 지표 중 ‘1위’인 것들만 골라 언급하며 대학 스스로 획일적인 틀, 상대적 순위에서 존재감을 찾았는데, 이러한 일도 그쳐야 한다. 정부도 대학을 대학답게 가꿔야 한다. 이제는 대학별로 ‘사람’, ‘인재상’ 중심으로 새로운 가치, 영향력 등을 기대할 수 있는 ‘꿈’을 꾸도록 해야 한다. 상상력, 창의력도 여기에서 나온다.  

이제는 교수들이 대학의 본질을 위해 먼저 깨어 있어야 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리고 변화의 힘을 얻기 위해 철저한 자기 성찰과 함께 정직과 학문적 권위로 국민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 변화를 당하기보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변화를 이끌어가야 할 것 아닌가. 세계의 대학들은 AI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최고의 인재확보, 최고의 지식 창출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주변현실이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꿈’과 ‘희망’이 필요한 때다.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 명예특임교수·과실연 명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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