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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그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 설한 기자
  • 승인 2019.01.03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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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설한 편집인/경남대

교수들은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상을 임중도원(任重道遠)으로 진단했다. 원래 인(仁)의 실현이라는 선비의 소임은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다는 뜻이다. 하지만 흔히 위정자의 막중한 책무를 비유할 때 쓰곤 한다. 소명의식과 함께 굳센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우리가 가야할 길로 제시했다. 촛불정부는 이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무엇이 달라졌는가? 적폐청산 속도는 느리고, 개혁 과제는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남북관계에서는 진전이 있다손 치더라도 사회·경제개혁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다른 것 다 못해도 남북문제 하나 해결되면 모든 게 용서될 수 있나? 평등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며,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통일이 된다고 달라질 게 무엇인가?

게다가 ‘항산(恒産)이면 항심(恒心)이라’ 했던가. 민주주의와 자유도, 국가조차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항산, 경제력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 국민이 생업에 종사하는 것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들의 경제적 기반이 안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개혁뿐 아니라 남북 평화와 통일을 앞당길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내치, 특히 경제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저성장과 경제적 양극화,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되고,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만연해 있다. 어릴 때부터 지옥 같은 수험경쟁에 시달리기 시작하여 늙어서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니 고단함은 한평생 계속된다. 시장에서의 불공평한 소득분배로 인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는 억울하고 답답하다. 복지문제에 있어서도 저성장 단계로 접어들면서 사회안전망의 미비는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한국은 1인당 GDP나 산업구조 면으로 보면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총체적 삶의 질로 보면 문제투성이 선진국인 셈이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총체적 모순, 다양한 불만과 그에 따른 갈등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혁명이 아닌 한 오랜 시간 누적된 적폐를 일순간에 청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새해에는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그 다음 날이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대학은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한 대학은 물질주의에 빠지고 반(反)지성주의를 양산하고 있다. 큰 배움이 사라진 한국의 대학은 길을 잃었다. <대학(大學)>의 첫 구절은 대학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대학의 길은 인간의 내면에서 올바른 품성을 밝혀내고, 사회 속으로 나아가며, 지극한 선(善)을 이루는 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이 길은 국가와 기업에 휘둘린 채 정체성과 자율성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오늘날의 한국 대학이 돌아가야 할 대학 본연의 길이다.

교수는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고작 사자성어를 찾아 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실천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사자성어는 그 의미가 깨우쳐져 실천되어야만 ‘성어(成語)’, 즉 말이 되는 것이다. 교수는 학자와 선생으로서 연구하고 가르치며, 지식인으로서 권력에 대한 감시자와 비판자로 사회에 봉사하는 본연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야할 길이 있다. 지도자의 길이 있고, 대학의 길, 교수의 길이 있다. 스승에게는 사도가 있고, 상인에게는 상도가 있다. 모든 길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다. 진흙길도 있고, 자갈길도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가다보면 모래밭이나 수렁에 빠져 헤맬 때도 있을 것이다. 가끔은 힘들고 지쳐 주저앉거나 정도를 벗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본연의 길을 걸으며 꿈을 꾸고 희망을 노래했으면 좋겠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할지라도.
 

 

설한 편집인/경남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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