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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차별과 대학의 비참함
시간강사 차별과 대학의 비참함
  • 박순진 대구대·경찰행정학과
  • 승인 2018.12.17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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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대구대·경찰행정학과

세월은 참으로 빠르면서도 무심하게 지나간다. 시간의 물리적 빠르기는 모두에게 매한가지겠으나 주관적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다. 대학에서 느끼는 시간 단위는 학기별로 묶음 지어있어 돌이켜보려 하면 어느새 휙 지나가 버린다. 이번 학기도 종강이다. 올 한해도 어느새 저물어 가니 이런저런 소회가 적지 않다. 학기를 마무리하거나 한 해가 지나는 이맘때면 항상 세상사에 민감하지 못하고 대학의 일에도 무심하게 지내지는 않았는지 문득 반성하게 된다.

학기 말이라 바쁜 마음으로 출근하는 길에 눈길을 끄는 현수막 몇 장을 읽어본다. 벌써 몇 주째 찬바람을 맞으며 걸려있어 마음 한구석을 후비는 현수막은 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붉은 글씨로 써서 내건 것이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에서 벌어지는 편법대응을 질타하는 내용이다. 혹은 이런 현수막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그 내용을 공감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으나 필자는 이 현수막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간강사는 모든 대학에 명백하게 존재하면서도 대학을 구성하는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도 필자가 소속한 대학은 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고 해마다 단체교섭도 꾸준하게 지속 되어 왔으니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한다. 시간강사의 권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사례가 드물고, 시간강사의 처우를 두고 대학 당국과 공식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하는 대학은 무척 드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분명 대학 교육의 큰 몫을 담당하고 있고 조직의 일원으로 마땅한 권리를 누려야 함에도 학기 단위로 계약되어 신분도 불안정하고 권리를 주장할 통로가 없어 합리적 처우에 대한 논의는 진전될 기미가 없다.
시간강사는 대학이라는 조직에서 명백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와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당한 처우를 주장하거나 대학 교육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일부 대학에서는 갈등이 공공연하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대학에서 절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있는 시간강사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은 마치 없는 듯이 잠재되어 있다.

교수들은 대부분 그 자신이 한때 시간강사였음에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시간강사의 고충에 대해서는 못 본 체 외면하거나 쉽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와 불안정한 신분에 대해 전업 교수로서의 자리에 이르기 위해 응당 거쳐야 하는 과정처럼 생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물론 한때는 이런 식의 이해방식이 사실과 전혀 다르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런 식으로 말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도 엄혹하다. 시간강사의 현실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가 횡행하면서 명백히 존재하는 부조리에 대한 합리적 해법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다.

한 사회가 가는 길을 보려면 눈을 들어 대학을 보라는 말이 있다. 진리를 탐구하고 세상의 빛을 밝히는 곳이 대학이다. 우리 대학에서 누군가의 무지에 의해서든 누군가의 몰이해에 의해서든 합리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정도의 심각한 차별이 노골적으로 존재하고 계속되어온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적으로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대학의 비참이 절대 누그러질 수 없다. 저무는 해를 무심하게 바라보지 말고 대학의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대학마다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만 한다.

요즈음은 길거리를 지나도 좀처럼 캐럴을 듣기 어렵다. 국내외로 쉽지 않은 난제가 쌓여있고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살림살이도 여간 녹록하지 않다. 대학사회도 전혀 예전 같지 않다. 교육현장에는 온갖 부정과 비리가 만연해 있고 대학마저 적폐로 가득한 듯 매도하는 국민적 여론이 따갑다. 일상화된 구조조정의 압력 속에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한 개별 대학들이 오랜 시간 쌓여온 시간강사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해가 저물기 전에 대학사회에서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온갖 종류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시간강사의 현실을 솔직하게 대면하는 노력이 대학 현장에서 시작되기를 기원해 본다.
 

 

박순진 대구대·경찰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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