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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학과이름, 지금은 변신 중
[학술동향] 학과이름, 지금은 변신 중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7.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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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문화' '디지털'... '전임' 확보해야 성공

이름을 바꾸는 것은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다. 최근 '문학영상정보학부', '디지털문화 이벤트 전공', '바이오산업공학부' 등 생소한 전공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무엇을 가르치는 곳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이름들이다.

본격적으로 학과명이 변한 것은 학부제가 시행되면서부터였다. 인문학부, 사회과학부, 자연과학부, 공학부 등으로 기존의 전공을 묶어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형식이었다. 당시 가장 유행했던 것은 인문과학부, 생활과학부 등 학부명에 '과학'을 끼워 넣는 것. 이전까지는 과학과는 무관했던 전공들이 '과학'으로 부활했다.

대학들, 유행쫓아 전략적 개명

개칭의 물결은 계속 이어졌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따라 대학은 좀더  전략적인 이름을 내놓았다는 것. 여기에는 몇 가지 유행이 있다. '문화', '디지털', '영상' '정보' 등 몇 가지 키워드가 작명의 단골메뉴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지식정보사회를 향해 가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학문도 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건양대는 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를 '문학영상정보학부'라는 이름으로 합쳤고, 목원대 경제학과는 디지털경제학과로 이름 바꾸었다. 디지털비즈니스, e-비즈니스학과들이 대학마다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이런 학과명 개칭은 당연히 지방에서부터 출발했다. 서울 소재 대학보다는 지방소재 대학이, 4년대 대학보다는 2년제 대학이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점차 이 흐름이 서울을 향해 옮겨가고 있다는 것도 특징. 실용학문을 추구하는 2년제 대학에서는 전공명이 화려하기까지 하다. 대전 대덕대학의 경우 '컴퓨터네트워크', '멀티미디어콘텐츠', '마이크로로봇' 등 순수영어 이름에서부터 '인터넷사무정보', '디지털경영정보'처럼 영어와 한글용어를 혼합한 전공이름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이름을 내걸었다.

전통이 깊은 학과도 문패를 바꿔달고 있다. 이중에서도 철학과의 '변신'이 도드라지는데, 호서대는 철학과를 문화기획과로 바꿨다. 부산외대 철학과는 문화학부로, 대전대 철학과는 영상철학과로 옷을 갈아입었다. 대구한의대 문화학부는 언론문화학과 관광·정보문화학을 합쳐서 만든 퓨전학과다. 학제간 학문도 나타나는 것도 하나의 경향인 셈.

이름 바꾸기의 효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교수가 많다. 조연상 목원대 교수(디지털경제학부)는 "기존의 경제학과를 디지털경제학과로 바꾸면서 학생들의 관심이 급증했다"라고 말했다. '경제학은 어렵다'라는 고정관념을 바꿨기에 40명이었던 정원을 70명으로 늘려도 문제가 없었다. 기존의 전공과정을 대폭 수정해 정보통신 관련 전공과목을  40%이상 늘인 것이 비결이었다. 최정신 가톨릭대 생활과학부 교수(소비자주거학) 역시 "명칭 개편 이후 학과의 전문성이 훨씬 강조됐다"라고 평가했다. '가정관리학과'가 뭘 가르치는 곳인지 두리뭉실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전공의 특성의 강조됐기 때문이다. 가정관리학은 소비자인간발달학, 가정관리·소비자학 등 학교마다 주력분야를 정해 앞자리에 내세웠다. 

"달라진 것 없다" 명칭에 걸맞는 내실 부족

정반대의 평가도 있다. 윤경로 한성대 교수(사학)는 "현재의 역사문화학부가 이전의 사학과와 달라진 것이 없다"라고 비찬한다. 애초에 역사문화학부로 바꿀 때는 지역학과 문화연구 등을 보충할 생각이었으나, 실제로는 전임강사의 채용 미비 등 현실적인 지원이 없어 커리큘럼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곳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존의 교수와 커리큘럼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름만 바꾼 곳도 많다. 이에 대해 김교빈 호서대 교수(문화기획과)는 "변화의 의지가 없다면 학과명칭 개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문제다. 실제로 조연상 교수는 "새로운 전공을 늘리고 보니, 기존의 교수들이 강의하기 힘들어 다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전임교수를 들이지 못해, 시간강사 중심으로 강의를 운영해야하는 것도 곤란한 점. 인력과 재정의 재배치가 따르지 않는다면,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가뜩이나 학문적 토대가 부실한데, 학과의 명칭 변화와 더불어 너무 실용적인 학문 위주로 학제가 개편되는 것은 아니냐"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시대의 변화는 인정하지만, 상아탑으로서의 위상를 고민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반면에 명칭개편의 선두에 있는 학과에서는 "모든 대학이 다 순수·기초학문을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되묻는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특성화된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면 고사한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학문이야 응용학문이냐, 학칭 개명은 또 한번 대학의 위상을 고민하게 만든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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