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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정신이상이란 미친 듯한 세상에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적응한 것이다"
책을 말하다_"정신이상이란 미친 듯한 세상에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적응한 것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18.12.0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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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자기: 온전한 정신과 광기에 대한 연구』(로널드 랭 지음, 신장근 옮김, 문예출판사, 2018.11)

로널드 랭은 지금도 영국에서 그에 대한 뮤지컬이 장기 공연되고, 여러 차례 영화가 만들어질 만큼 정신의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하지만, 세기가 바뀌고, 2018년 말이 되어서야, 한글로 번역된 랭의 첫 번째 책이 출판되었다. 정신의학이나 심리치료 쪽에 종사하는 분들은 너무나 의외라고 여길 것이다. 조현병과 관련되어서 랭만큼 자주 인용되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익숙함과 랭을 통해 이루어진 정신의학 및 심리치료 현장의 변화 때문에, 우리는 랭이 쓴 <분열된 자기>의 한글판이 이미 나왔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심리치료사는 마음의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마음을 고치는 과정은 단순히 기술의 활용이 아니라,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다. 두 사람이 이때껏 살아온 삶 전체가 만나 서로 성장하게 하는 과정이 심리치료다. 어느 한 쪽만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자도 내담자도 함께 변하고, 성장한다.

이런 면에서 심리치료에서 치료기법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치료사 자신의 성숙한 인격과 마음의 건강이다. 하지만, 이 말은 완벽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이기게 될 때, 우리는 치료자에게 꼭 필요한 능력, 즉,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뜻이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저자 랭이 쓴 <분열된 자기>는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지만, 너무나 중요한 이 사실을 웅변하듯이 보여준다. <분열된 자기>는 1960년 첫 출간 이후 조현병 연구는 물론 정신치료 분야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책이다.

랭이 ‘분열된 자기’라는 책에서 말하려는 것은 조현병을 고치는 획기적인 치료법이 아니다. 랭이 강조하는 것은 내담자를 바라보는 치료자의 눈이 바뀌고, 태도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정신과적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정상에서 벗어난 비정상이나 환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와의 관계에서 불화’를 경험하고 ‘자신과의 관계에서 분열’을 경험한 사람으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는 마녀재판이 난무하던 중세 사람들의 생각과 아주 다르지 않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우리의 담론 속에는 여전히 무성한 신화와 억측이 넘쳐나고 있다. 그것은 융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조현병 환자들의 기괴한 언어와 행동 속에서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보기 때문이다.

즉, 내 안에 있는 어두운 면이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공격은 최고의 방어가 된다. 내 눈앞에서 조현병 환자가 보이는 저 기괴한 모습이 내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려면, 아니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도 어느 정도 자신과 분열된 채 파편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을 부정하려면, 조현병 환자에게 낙인을 찍고, 심각하게 도덕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최고의 방어인 것이다.

이렇게 조현병 환자에게 우리의 어두운 면을 다 투사해놓고, 우리는 스스로 정상적인 “빛의 자녀”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 가르기와 철저한 심판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악의 화신이나 악마로 만들어 놓고, 나는 순수한 선으로만 뭉쳐있는 천사가 되어 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비출 참 빛은 절벽과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어두움의 가장 깊은 바닥에 이르지 않고는 찾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스스로 정상이라고 여기며, 정죄하고 비정상적인 악마라고 낙인찍은 조현병 환자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그들을 따듯하게 감싸지 못한다면,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 사랑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환영받지 못한 임신으로 태어난 경험, 네 번의 결혼과 냉랭하고 어두운 가정, 평생을 싸워야 했던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속에서 랭도 치열한 싸움을 싸웠다. 랭이 어떤 치료자보다 영혼의 깊은 어두움과 정신적 고통의 무게를 알고, 환자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도 그 아픔을 지닌 채 영혼의 병을 앓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였기 때문이다.

랭은 조현병 환자에게 조현병이라는 틀을 씌워놓고, 무조건 약물로 치료하려는 방식을 반대했다. 하지만, 랭의 이런 입장을 약물치료에 대한 완전한 금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조현병을 치료하려면 반드시 발병 초기에 전문의에 의한 정확한 진단과 적시의 약물치료가 일정기간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랭이 말하는 환자가 당하는 고통에 귀를 기울여주는 일은 이러한 치료를 해나갈 때, 치료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태도이지, 약물치료와 상반되거나, 약물치료를 대신할 수 있는 치료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조현병 치료에 관해서는 그동안 많은 의학적 발전이 있었다. 다양한 신약이 개발되고, 그 약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런 면에서 1960년대 초에 나온 랭의 책은 시대에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대 정신의학에 미친 랭의 영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오해다. 조현병 환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환자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그의 교훈은 어쩌면 모든 심리치료 기술보다 더 중요하고 효과적인 치료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조현병 환자는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고 사는 사람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고려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는 랭의 정의는 모든 사람을 정상과 이상으로 나누는 기계적인 인간 이해에 경종을 울린다.

이 책은 어찌 보면 까다로운 정신의학적 주제를 다루는 책이지만, 그 교훈은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 있다. 바로 모든 사람을 존중하며 배려하면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고, 세계에서 나와 다른 타인의 독특한 경험을 존중하는 것이다.

자신의 잣대로 함부로 남을 판단하고, 남이야 듣든 말든 내 할 말만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 나와 다르면 무조건 없어져야 할 적으로 간주하며, 이질적 요소를 제거하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만드는 것을 안정과 평화라고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람들로 넘쳐나는 우리 사회를 본다면 랭은 뭐라 말할까?

한 사회가 구성원 전부를 끝 모를 경쟁 속에 몰아넣고,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행복을 약속할 때, 이러한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과 이 경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낙인을 찍을 때, 이토록 병든 세상에서 정상인이란 말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정신이상이란 미친 듯한 세상에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적응한 것이다”라는 랭의 화두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신장근 한국열린사이버대 외래교수·심리학


미국 페퍼다인대학에서 임상심리학 석사를 하고, 아주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심리치료 사례의 통합적 해석』, 『그림자 밖으로: 성중독의 이해』, 『권력과 거짓순수』, 『신화를 찾는 인간』, 『창조를 위한 용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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