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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사회란 비정상적 작동을 정상으로 여기는 사회"
"중독사회란 비정상적 작동을 정상으로 여기는 사회"
  • 교수신문
  • 승인 2018.11.2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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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중독의 시대: 대한민국은 포스트 트라우마 중독사회다』 (강수돌·홀거 하이데 지음, 개마고원, 2018.10)

중독사회란 한편으로는 온 사회에 다양한 중독들이 만연한 상황을, 다른 편으로는 사회 전체가 마치 알코올중독자처럼 중독행위를 하면서 움직이는 경우를 말한다.
중독조직의 연장선 위에서 파악되는 중독사회란 개념적으로는 후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는 결국 전자를 뜻하기도 한다. 지금 스마트폰중독이나 일중독 등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 사회는 곳곳에 중독 현상이 만연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중독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더욱 심층적인 가설은 ‘자본주의가 중독사회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일중독·소비중독·알코올중독·마약중독·성형중독을 조장하면서도, 또 그 토대 위에 더 잘 작동한다. 나아가 자본주의 시스템 전반이 이윤(성장) 중독증에 빠진 중독자로 행위한다. 이런 면에서 자본주의는 곧 중독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중독 시스템은 중독사회 내지 중독조직을 시스템 관점에서 일컬은 것이다. 가족·학교·기업·정부·조직·기관 등 그 형태를 불문하고 어떤 시스템이 중독자와 동반 중독자들의 중독행위로 인해 비정상적 과정들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전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면 중독 시스템이다.

중독 시스템은 4가지 신화를 갖고 있다. 자신이 이 세상의 유일 시스템이란 신화, 자신이 가장 우월하다는 신화, 전지전능하다는 신화,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신화가 그것이다. 그 결과, 중독 시스템은 ‘신’의 경지라는 신화가 탄생한다.

중독의 사회적 차원은 그 통제 욕망의 동태적 성격 및 전염적인 특성에 기초를 둔다. 중독은 비록 처음에는 비정상으로 보이지만, 정기적으로 반복된 행위에 의해 중독행위는 온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옮아가고 마침내 정상적인 규범처럼 수용된다.

자본주의와 중독 시스템

자본주의 사회가 ‘중독을 조장한다’는 말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일단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자본’과 ‘중독체계’ 사이에는 상당한 친화성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중독(중독행위)을 조장할 뿐 아니라 중독 자체를 ‘먹고 산다.’ 즉 중독은 자본주의의 부산물이기도 하고, 토양이기도 하다.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본질적으로 중독 시스템이다. 중독 시스템으로서 자본은 인간의 욕망을 만들어내고 재생산한다. 그것도 원칙적으로 보면 무한정 생산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무한성 내지 불만족이 자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탈정신화 과정(인간이 경외심의 세계나 대자연으로부터 분리된 과정)이 내적 안정을 파괴하면 할수록 원래의 욕구를 물적 재화를 통해 보상해야 하는 필요성이 강화된다. 그러나 물질적 보상을 통해선 원래의 욕구가 충족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더 이상 직접적으로 의식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배고픔은 충족되지 않고, 충분하다는 느낌은 사라진다. 그 결과가 인간욕구의 ‘불충족성’이다.

이렇게 해서 자본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내면의 욕구충족이 아니라 대리만족을 시켜줄 만한 수단들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알코올이나 마약류, 약물류, 그리고 절묘하게 고안해낸 ‘기호품들’(예컨대 담배)과 같은 물질적 수단들은 물론이거니와, 번지 점프와 같은 활동적인 놀이상품이나 자본과의 동일시를 조장하는 수동적 ‘오락물’까지 만든다. 그 결과 알코올중독·마약중독·설탕중독·니코틴중독 등과 같은 물질중독, 그리고 일중독·소비중독·게임중독·모험중독·등산중독 등과 같은 과정중독이 부단히 생성된다.

‘욜로’ ‘워라벨’ ‘소확행’ 같은 말들이 나름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새로운 중독물 기능을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오늘날 스마트폰중독에서도 드러나듯, 드디어 ‘정보’조차 뛰어난 중독물이 되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정보 속에 포함된 내용을 통해서 뿐 아니라 그 산더미 같은 정보의 양을 통해서도 중독이 조장된다. 스마트폰중독은 그 자체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흔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경험하듯이 인기중독이나 관계중독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런 대중매체들이 대량의 중독적 정보들을 통해 인간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사람이 이 중독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각자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중독을 촉진, 조장하는 그런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이 중독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만드는) 이 세상에서 고립이나 부정직, 환상 또는 자기중심성 속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요컨대, 중독은 눈앞 현실조차 제대로 인지 못하게 심신을 마비시킨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중독이라는 냉매를 통해 내면의 괴로움·공허함·두려움·불안함 등을 마비시킨다.

이렇게 가족이나 학교, 기업과 같은 조직은 물론 사회 전체가 하나의 중독자처럼 움직일 때 중독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즉 중독 시스템은 그것이 개별조직이건 전체 사회이건 간에, 개인과 조직, 또 그 연결망 등으로 구성된 요소들이 서로 톱니처럼 맞물려 움직이면서 중독과정을 영속화하는 병든 시스템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독사회 대한민국’ 역시 커다란 ‘중독 시스템’이며, 그 속에서 가정이나 학교도, 기업이나 종교도, 심지어 노조나 정부 역시 작은 ‘중독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나아가 경제성장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핵무기 경쟁까지 하는 세계경제는 가장 크고 심각한 중독 시스템이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서울대에서 경영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독일 브레멘대학에서 노사관계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나부터 교육혁명』, 『나부터 마을혁명』, 『더불어 교육혁명』, 『팔꿈치 사회』, 『행복한 삶을 위한 인문학』, 『대통령의 철학』, 『행복한 살림살이 경제학』 등이 있다.

 

홀거 하이데 브레멘대학 경상학부 명예교수

독일 킬대학에서 정치경제학 및 경영경제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역경제 및 세계경제, 특히 한국경제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사회경제행위연구소(SEARI) 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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