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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빅 리서처(Big Researcher)’를 만드는가? 
무엇이 ‘빅 리서처(Big Researcher)’를 만드는가? 
  • 전주람 서울시립대 교육대학원 연구교수
  • 승인 2018.11.26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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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안다’는 것은 모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자, 앎의 상태로 옮겨가는 즐거운 이동 과정이다. 이 과정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이라면, 인간의 보다 나은 상태로 발전하고자 하는 본질적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므로 즐거운 행위로 이해된다. 물론 연구의 과정은 고된 훈련의 과정도 필요로 하므로, 매일 같이 유쾌한 감정만을 경험할 수는 없겠으나, 그 고통의 시간 뒤에 찾아오는 노력의 결실, 특히 새로운 연구의 결과는 연구자들에게 한여름 사막에서 맞이하는 오아시스와 같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 사회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처럼 여러 구조적 어려움을 동반하긴 하나 각 분야에서 발전을 이뤄가고 있다.

‘빅 리서처(Big Researcher)’, 이 단어는 정직하고 성실한 연구자, 동시에 자신의 분야에서 큰 획을 긋는 뛰어난 전문성을 발휘하는 열정적이고 선한 좋은 연구자(passionate and good researcher)를 뜻하는 말로 필자가 만들어낸 비공식인 개념이다. 여기서 필자는 ‘빅 리서처’가 지녀야 할 다섯 가지 핵심역량에 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훈련(training)이다. 평범한 두뇌를 가졌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날마다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운동선수가 시합 당일 최후의 결판을 위해, 날마다 고된 훈련을 하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예컨대, 연구자에게는 연구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선행 연구를 찾아야 하고, 자신의 연구가 어디쯤 와 있는지 통찰하기 위해 다른 학문 분야도 대강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즉, 자기의 분야는 깊이 파헤치면서 다른 학문 분야에 관심을 갖고, 글을 읽고 배우는 것이 삶 그 자체이다.

둘째, 즐거움(enjoyment)이다. 츠즈키 츠구오(都築繼雄)의 2012년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들의 교육 및 연구 환경에 관한 연구를 보면, 그 내용 중 일본의 화학자 노요리 료지는 “연구는 정말로 심오하고 연구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다. 연구는 내가 젊었을 때 한 여러 가지 취미나 오락보다 훨씬 재미있다”(讀賣新聞東京本社調査硏究本部, 2005)라고 적혀있다. 연구자에게 “연구”가 즐거움이 된다면, 더 이상 일이 아닌 즐거운 활동으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한껏 발휘될 것이다.   

셋째, 모른다는 자세(not-knowing)이다. 이 말은 상담학 교재에 나오는 단어인데, 연구자에게 매우 중요한 자세로 연결된다. 연구의 영역은 광대하여 연구마다 새롭다. 따라서 박사 학위만으로, 또는 교수라는 타이틀만으로 타인의 연구, 혹은 나에게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연구를 내용 면에서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연구의 설계가 다르고, 표집 대상이 다르고, 연구마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자에게 잘 알지 못한다는 자세는 겸손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기본적 태도는 초심으로 새로운 연구를 맞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넷째, 그릿(Grit)이다. 안젤라 덕워스(Angela Duckworth)는 그릿은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끝까지 해내는 힘이며, 특별할 것 없는 재능, 불우한 가정환경에도 놀라운 성공을 일궈낸 사람들이 어떻게 그 모든 불리함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지에 대한 성공 비결이라 했다. 연구의 영역 역시, 긴 터널을 지나기까지 끈기와 인내심이 중요한 요소로 작동할 것이다. 

그릿(Grit)은 안젤라 덕워스
[편집자주] 그릿(Grit)은 안젤라 덕워스 미 펜실베니아대 교수가 만든 개념이다. 덕워스 교수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남들보다 한 발 더 뛰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연구로 밝혀냈다. 위는 덕워스 교수의 TED 강연 모습. 전주람 박사는 이를 활용해 '빅 리서처'라는 연구자 모델을 만들었다. 연구자의 윤리학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다섯째, 위 네 가지는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로 연결돼야 한다. 최근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은 전재산 56억 홍콩달러(한화 약 8100억원)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돈은 내 것이 아닌, 잠시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돈은 행복의 원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식은 물리적 자원인 돈과 다르나, 무형의 자산으로 쌓아 혼자만 누릴 것은 못 된다.

돈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필요한 말과 글로 옮겨질 때, 또한 더불어 많은 사람과 함께 공유할 때 진정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2014년도부터 현재까지 북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좋은 길을 열어주신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에 감사한다. 

 

전주람 서울시립대·교육대학원 연구교수
성균관대에서 가족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가족 연구에서 시야를 확장해 최근 「남한 출신 복지 관련 종사자는 탈북동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2018)라는 논문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북한연구, 사회문화갈등과 통합에 관심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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