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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겨울, 그때 그 촛불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방향
2년 전 겨울, 그때 그 촛불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방향
  • 양도웅
  • 승인 2018.11.19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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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촛불혁명 2주년 학술토론회」 열어

특정 사건을 역사화하고 그것의 의미를 결정하는 건, 그 역사화한 사건의 시점에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가령 2016년 겨울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이름 짓고 이를 ‘민주주의의 승리’ ‘민주주의의 패러다임 전환’ 등으로 말하는 건, 기존과는 다른 민주주의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한다는 걸 말한다. 따라서 특정 사건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두고 벌이는 논쟁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논쟁과 같다.

지난 2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관 「촛불혁명 2주년 학술토론회-한국 민주주의의 패러다임 전환」에서 지선 이사장은 “87년 6월항쟁이 대통령 직선제와 언론의 자유 등 ‘자유’의 문제에 집중했다면, 촛불혁명은 ‘이게 나라냐?’고 물으며 헬조선의 원인과 실체에 접근한 ‘평등’의 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화두였다”고 말했다. 지 이사장은 촛불혁명의 의미로 평등을 꺼냈다. 그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목표는 보다 평등한 대한민국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다른 의견은 없을까? 이날 ‘저항의 시대에서 형성의 시대로’라는 주제로 기조발제한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문재인 정부가 남북문제와 국가 주권 문제에서 진전된 모습을 보이는 건 시대정신의 자연스런 구현”이라며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통일의 기초를 확고히 놓는 것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촛불혁명의 의미 가운데 하나로 ‘민중의 주체성 확립’을 꼽으며, 민중의 주체성 확립과 민중이 속한 국가의 주체성 확립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뗄 수 없이 공속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의 의견대로라면, ‘촛불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가 국가 주체성 확립을 위해 남북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럼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걸까? 김상봉 교수는 여기서 경제민주화를 꺼내 들며 문재인 정부를 의심한다. 지선 이사장이 말한 대한민국의 목표인 ‘평등’이 여기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촛불혁명이 이룬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촛불혁명을 촉발시킨 87년체제의 모순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그 모순은 6월항쟁 이후 정치는 민주화됐으나 경제는 전혀 민주화 되지 못했다는 것인데, 대한민국을 기업국가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정부가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정부였으며,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계승자이다.” 경제민주화를 달성할 방법은 없는 걸까? 김 교수의 발표문의 뒷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 사진 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 사진 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와 기업국가의 미래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재벌이 지배하는 기업국가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특권계급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해답도 있게 마련이다. 그 답은 북에서 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남북 교류에 따른 북한 특수가 남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리라는 망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호남선 고속철도 공사가 광주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군산의 자동차 공장이 몰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그리고 4대강 사업이 부산과 대구의 토호들을 배불리는 것 외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했던 것처럼, 남쪽의 기업이 북한 땅에 철도와 도로를 놓는 토목공사를 벌인다면 재벌 금고에 돈이 쌓이기는 하겠지만 그 때문에 남쪽 젊은이들의 가난이 해결될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땅에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돈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니라 기업과 기업들 사이에서만 오간다. 기업은 최저생계비만 지불하고도 비정규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산업예비군들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그리하여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불이라는 시대에 재벌 기업의 금고에만 천문학적인 사내 유보금이 쌓여 갈 뿐, 정작 이 땅에 사는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에 시달리는 초현실주의적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북한의 개방과 남북한의 경제교류가 가져다줄 효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남한의 재벌독점경제체제와는 다른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게 되리라는 분명한 사실이다. 북한의 경제개방이 북한체제에 위협이 되리라는 것은 증명이 필요 없는 자명한 사안이다. 그 위험은 휴전선 남쪽에 북한과는 전혀 다른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증폭될 것이다. 그리고 남북한의 교류가 본격화되면 될수록, 북한 주민들의 동요는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는 과거 동서독의 통일과정을 돌이켜 볼 때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지금과 같이 남북한 교류와 경제개방을 추진하면서도 체제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이 북한 체제가 남한체제보다 우월하다는 확신, 아니 최소한 남한체제보다 북한 체제가 열등하지 않다는 확신을 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그 확신을 심어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경제의 사회주의적 공공성밖에 없다. 중국이 말하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socialist market economy)나 베트남이 모색하는 사회주의적 지향의 시장경제(socialist oriented market economy)처럼 북한 역시 시장 경제를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적 공공성을 결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일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제의 사회주의적 공공성이 지금으로서는 개선될 가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남한의 재벌독점경제체제와 비교해서 북한이 확고하게 비교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이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서로를 폭력적으로 굴복시키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던 역사를 끝내고 두 체제가 평화적으로 선의의 경쟁을 시작하게 되면, 결국 서로 좋은 점을 배우면서 더불어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남한은 북한을 따라 경제의 공공성과 국가의 주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북한 역시 남한을 따라 정치의 공공성과 시민적 주체성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과 북은 서로의 고통에 손을 내밀어 응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의 고통에 응답하고 서로에게 배우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서로에게 “너도 나라”는 고백을 할 날이 올 것이다. 통일은 그렇게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서로주체성의 실현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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