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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세 번 집에 오신 분 
하루에 세 번 집에 오신 분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
  • 승인 2018.11.1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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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

건넌방 벽에 물이 샌다고 한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이사 갈 날이 코앞이다. 네이버에 들어가 ‘누수’라고 검색어를 치니 ‘파워 링크’로 올려놓은 회사들이 많다. 일단 한 곳에 전화 걸어 알아보니, ‘누수’라는 것 잡기 어렵고 원인 찾는 것부터 문제여서 그것만 해도 일단 몇 십만 원 든단다.

아파트 단지 앞에 인테리어니 설비니 쓴 곳들이 있어 가보니 다들 일 나가고 문이 잠겼다. 전화만 해 보고 돌아오는데, 두 곳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저희 집 벽에 방바닥하고 붙은 곳부터 곰팡이가 피고 있어서요. 관리소 아저씨께 여쭈니 벽 위쪽도 이상하다고, 윗집에서 내려오는 것 같다네요. 그걸 보려면 이 벽이 면해 있는 화장실 쪽 천장을 살펴봐야 하는데요. 십 년 전에 리모델링할 때 업자께서 천장에 점검구를 안 만들어 놓으신 거예요. 점검구부터 만들고 어디서 물이 새는지, 윗집에서 내려오는 것 같다는데, 한 번 와주시면 좋겠어요”

저쪽에서 투박하기 짝이 없는 촌 아저씨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안 되고 내일은 가능하단다. 그럼 아침 아홉 시에 와달라고, 비용은 얼마나 드려야 하느냐고 물으니, 그건 가봐야 안단다. 아니, ‘누수’는 탐지하는 데만, 출장 오는 데만 몇 십만 원 달라는데, 일단 가봐야 얼만지 안다니, 그렇다고 거기다 대고 먼저 비용 말씀하셔야 부를 수 있다고도 할 수 없다. 

다음날 아홉 시에 그분이 오셨다. 현관문을 열어 드리자 인테리어업자 같은 세련된 행색 대신 방금 막일 마치고 돌아 나온 일꾼 같은 차림의 중노인이시다. 문제의 건넌방 벽 아래 습기 찬 곳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이어 벽 위쪽도 쳐다보고 만져도 본다. 화장실 쪽으로 가서는 윗집에서 내려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천장 쪽은 안 보고 욕조와 맞닿은 타일 모서리를 휴대용 형광 전등을 밝혀 들고 유심히 쳐다보고, 샤워기 고정시켜 놓은 두 쪽의 이음매 부분도 자세히 살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짯짯이 욕조 아래쪽 부분까지 다 살핀 그분, 알겠다는 듯 진단을 내린다. 

“천장에 점검구를 내달라면 내드릴 수두 있지만 그건 앞날을 위한 대비일 뿐이고, 제가 볼 때는 윗집과는 관련이 없어요. 타일 붙인 모서리에 작은 틈 있는 거 보이시죠? 그리고 샤워기 고정시켜 놓은 부분 만져보면 한 쪽은 말라 있는데 한 쪽은 젖었어요. 수도관이나 하수관에 문제 있으면 저 정도로 끝나질 않아요. 오랜 시간에 걸쳐 저런 틈으로 물이 미세하게 스며들어 저렇게 된 겁니다.”

그런 것 같으시냐고,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실리콘으로 막아서 처리하면 된단다. 그렇게 간단할 수도 있나. 아무튼 그렇게 하자고 말씀 드리니 그럼 잠깐 기다리라고 가게에 가서 장비를 가져 오시겠단다.  

일이 의외로 수월하게 끝나고 나는 수고하셨다고 커피를 타 드린다. 믹스커피 아닌 원두커피에 뜻밖에 반색을 하시며 마주 앉은 이분, 팁이라도 주시는 것처럼 한 말씀 하신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타일 붙인 것만 봐두 얼마나 일해 본 사람이 붙였는지 다 보입니다. 이 집 타일은 한 18년쯤 일한 사람이 붙인 건데, 하자 없이 완전하게 하려면 한 25년은 일한 사람이 해야죠. 그것도 남의 집 일이라도 잘 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그러시냐고, 나는 이 분의 보이지 않는 경력에 놀라면서 그럼 이제 얼마를 드려야 하느냐고 묻는다. 

“한 오 만원은 주셔야 혀유. 오늘 이 집 세 번을 왔어유.”

세 번? 아침에 한 번 오시고, 장비 가지러 갔다 오셨으니 두 번이건만. 

어떻게 세 번이냐고 여쭈어 보니 이 분 말씀인 즉, 이 아파트 지리를 잘 몰라 혹시 시간에 늦을지도 몰라 새벽에 한 번 어딘지 확인해 보러 오셨단다. 

나는 한 번 정말로 놀라며 나갈 일도 잊고 이분의 인생 얘기를 듣기 시작하는데, 세상에 이런 사람 드물다.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공부도 글 쓰는 것도 이 분 같아야 하는 것을.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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