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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언어의 발생과 발달을 생물학의 진화적 관점에서 분석하다
인간언어의 발생과 발달을 생물학의 진화적 관점에서 분석하다
  • 김형엽 고려대·글로벌학부 영미학 전공
  • 승인 2018.10.29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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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왜 우리만이 언어를 사용하는가: 언어와 진화』 로버트 C. 버윅·노엄 촘스키 지음 | 김형엽 옮김 | 한울엠플러스 | 320쪽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상가들은 인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언어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최고 순위에 두어왔다. 그리스 학자로부터 근대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정의하려는 주장들은 물론, 인간의 과거와 미래를 정리하고 논술하는 사상가들의 논의에서도 언어는 중요한 요소로서 항상 언급되고 있다. 오늘날 4차 산업시대를 맞이하여 이 새로운 무대에 올라서게 될 인간을 재고하려는 시도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 언어는 좀 더 철저한 고증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정신 분야를 확실하게 알아야 하며, 이와 더불어 정신을 제어하는 핵심 조정자로서 인간 두뇌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

인간 두뇌는 신체의 일부로서 생물학적인 시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진화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 형태에 도달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새 시대에 인간을 논의할 때 두뇌는 가장 핵심적인 대상이 되어야 하며, 실제로 인공지능 이야기를 전개할 때 인간 두뇌가 절대적인 대상으로 부각되는 상태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 두뇌가 과연 어떤 형태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수단으로서 언어가 수행되는 현상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접근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두뇌를 진화의 결과로 보려는 관점에서 제기되는 것은 언어 또한 진화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본 저서의 저자들이 제기하였듯이 진화 속에서 언어를 바라보려는 시도에는 무엇보다도 변화, 변이, 선택, 유산 등이 포함돼야 한다. 이 요인들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진화 자체를 논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언어학 주장들은 언어의 존재 자체를 당연한 사실로 가정했으며, 대부분의 연구 논지들이 언어 활용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논리적 외형 모델을 정형화하려는 노력에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저서처럼 언어의 발생과 발달 과정을 단순한 언어 이론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진화적 관점으로, 그리고 인간 두뇌를 진화 현상의 핵심 요소인 유전자를 바탕으로 한 연구 주제로 제기한 방식의 전환은 아주 시의적절한 시도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우리는 진화가 지구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체의 발생 및 발달을 보여줄 수 있는 핵심적인 조건이며, 현존하는 생태계 모습이 진화에 근거하여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런 개념적 환경 내에서 언어학과 생물학을 동시에 바라보려는 기획으로서 생물언어학(Biolinguistics)의 태동 현상은 지금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론의 중심에는 언어 발생과 관련하여 특이 유전자의 출현과 함께 형태 및 기능을 변모시키는 발달 단계를 살펴보려는 관점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생물학적 관점에서 관찰하는 과정에서 현재 상태로 언어가 발전하고 구축되어 온 단계들이 인간 두뇌 능력의 발현이 비교적 단기간에 완성되었다는 사실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점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해당 기간이 아주 짧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언어 모습이 오늘날처럼 엄청난 규모로 발달하였다는 결과에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언급하였던 언어와 진화 그리고 생물학적 발달 등에 연관된 다양한 내용들에 대한 상세한 서술 속에 언어가 어떤 생명체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결합 장지의 응용’ 그리고 ‘상하계층 구조 구축’이라는 두 가지 기준들을 갖추고 있음을 일목요연하게 제기한 저자들의 탁월한 혜안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본 저서의 주요 용어인 ‘MERGE’의 번역 용어로서 ‘결합’을 선정한 이유는 나름 이유가 있음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용어는 최근 언어학 이론에 관한 대부분의 논문 및 저서에서는 ‘병합’으로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 굳이 다른 용어로 번역한 이유는 원래 저자들이 언어를 설명하면서 생물언어학적 분야의 유전학적인 관점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생물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유전학 내부에서 하나의 생물적 완전체가 구축되는 과정에 유전자들의 결합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설명을 진행시키고 있다. 그래서 번역어로서 ‘결합’을 선택한 것은 매우 적절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또한 ‘결합’의 결정체들은 또 다른 상위 결정체를 완성하는데 중요한 단위가 되고 있다는 사실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생명체 완성이 결국 유전자 결합으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부분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생명체들의 내부가 결합들이 완성된 하위 단어들을 기반으로 차곡차곡 단계별로 발달한 결과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면 ‘결합’ 및 ‘상위계층 구조’라는 번역어들을 선택하고 전체 설명에 적용시키는 시도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 번역자는 오랜 작업의 결과를 제시하면서 스스로가 언어의 원천에 관한 해답에 성큼 다가섰다는 확신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언어학 이론자로서 절대적 위치에 서있는 촘스키마저도 이 책을 완성하면서 언어의 시작에 대한 윤곽을 좀 더 분명하게 제시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공동저자인 버윅(Robert C. Berwick)의 생물학적 학문 지식이 이런 과정을 완수하는데 중대한 몫을 차지하였을 것이다.

이 두 학자는 다윈이 주창하였던 점진적 진화 발달 형태를 기반으로 인류 발전에서 가장 최근이라고 판단되는 7∼8만 년 전의 도약 단계를 설정함으로써 인류의 조상들이 지구상에 자리를 잡았던 시점으로부터 현대인간의 모습으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두뇌에서의 어마어마한 변화를 제시하였다. 이들은 이런 상황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현재 언어의 외형적, 내재적 특성들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언어의 엄청난 잠재력의 출현은 생명체들이 점차적인 변화를 거쳐 변모하는 상황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분명하게 제기하고 있다. 그만큼 언어와 인류는 일심동체로서 분류할 수 없는 대상들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 저서는 제 1장에서 진화를 파악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다윈의 사고방식을 제기하였으며, 제 2장부터는 진화의 변화 현상은 물론 다양한 돌연변이의 역할을 제시하면서 이들 두 변화 촉매제들이 인간 언어의 발생에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증명하려는 노력을 진행시키고 있다. 물론 전체 내용을 보면 자신들은 이런 주장을 펼치는 데 나름대로 운이 따랐다는 점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물학에 포함된 여러 요인들과 마찬가지로 진화 또는 인위적 선택 등은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부분은 여전히 열린 문제로 남겨두고 있다.

김형엽 고려대·글로벌학부 영미학 전공
일리노이대학에서 언어학으로 박사를 했다. 현대영어교육학회와 한국음운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주 연구 분야는 음운론, 형태론, 영어교육, 언어철학 등이다. 저서로는 『인간과 언어: 언어학을 통해 본 서양철학』 등이 있고, 역서로는 『언어의 역사』, 『언어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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