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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상실
광장의 상실
  • 안상헌 충북대
  • 승인 2003.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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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안상헌 충북대/철학


  기말고사 종료와 함께 波市 같던 대학 교정은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다. 바야흐로 파장인 셈이다. 난전이 섰던 교정에는 撤市 후 성과를 결산하고 다음 장시에 내놓을 물건을 조달하려는 이들만이 남아있다. 이문(利文)을 많이 남긴 이들은 밑천도 두둑하고 또한 할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런 곳은 여전히 불야성이다.

 

 그러나 시장가치라곤 눈곱만치도 없어 보이는 물건을 내놓고 좌판을 벌였던 사람들은 벌써부터 다음 장시가 걱정일 것이다. 구석자리 상설 좌판이나마 차지한 이들은 안도하고  있을 테지만, 구석자리 가설 좌판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난장을 떠난 보따리 장수들은 비벼볼 언덕조차 없어졌으니 절망 또 절망이다.

 

  시장논리가 도입된 후로 대학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요 아수라장이다. 언젠가 어느 학술대회에서 '인문학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냉혹한 시장 바닥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서라도 인문학을 살려보겠다는 충정은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돈이 되는 것만 선호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대학은 이미 ‘대학’이 아니라 ‘시장’에 지나지 않는다.

 

고대 아테네에는 아크로폴리스 북서쪽 언덕 아래에 ‘아고라’라는 시장이 있었다. ‘아고라’는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이면서 동시에 정치지망생, 작가, 철학자들이 시민들과 함께 세상사 인간사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하는 ‘광장’이었다. 우리의 예전 장터도 그러했다. 장 마당은 국밥 한 그릇, 왕대포 한 잔을 앞에 놓고 세상사 인간사에 대한 온갖 얘기가 오가던 ‘광장’이었다. 그러하기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장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선거철에는 장 마당이 곧 유세장이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시장’은 상품을 팔고 사는 기능과 상품 정보를 교환하는 기능은 있으되, 삶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하는 ‘광장’ 기능은 없다. 지금 우리 사회의 ‘대학 시장’도 지식 상품을 사고 파는 ‘시장’ 기능은 있지만, 세상사 인간사를 토론하는 ‘광장’ 기능은 날로 상실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 ‘대학 시장’에서는 ‘생존 기술’만이 상품적 가치를 발하고 있을 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광장’ 기능은 사라지고 있다.

 

  학부제 도입 후 ‘대학 시장’에서는 구석자리 좌판 싸움이 더욱 가혹해졌다. 가령 인문학부로 모집한 곳에서는 어문학, 역사, 철학이 상품적 가치 순서대로 정확히 패가 갈리며, 서양어문학부, 동양어문학부, 역사·철학부 따위로 모집하는 곳에서도 같은 순서로 패가 갈린다. 좌판 싸움의 몽매성을 벗어나기 위한 (비)상품 생산조합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조합은 수수방관하며 오히려 이를 조장하고 있다.

 

  시장판의 해악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학제적 이해와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학생들의 학제간 학습을 위한 교육과정을 제도화하고 있는 사례는 과문한 탓인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복수전공과 부전공 제도가 있다지만 실용 목적에만 이용될 뿐, 그토록 강조하던 영국의 PPE(철학-정치-경제)과정 같은 학제적 학습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문학사, 문화사, 철학사도 따로 좌판을 벌이고 있고, 언어학, 언어철학, 언어심리학도 따로 국밥으로 제공될 뿐 도무지 소통이 없다.

 

  이젠 선수/후수 과목의 구분조차 사라져 먼저 먹든, 나중 먹든, 먹다가 체하든 학생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먹기 좋고 점수 잘 나오는 ‘당의정’ 교과목에 학생들이 운집하며, 시장조합은 이런 상품 개발을 독려하고 후대한다. 물론 파리를 날리는 좌판은 시장 원리에 따라 가차없이 퇴출된다. 이런 몰골의 ‘대학 시장’을 한 마디로 ‘교육 부재’, ‘지도 부재’라 말한다면 지나친 자조일까.

 

  중등학교조차 개별 학생들의 적성을 고려한 선택적 심화 교육과정이 도입된 마당에, 대학에 그와 유사한 정교한 교육과정이 없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대학의 특성화’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개별 학생들에 대한 정교한 ‘학제적 특성화 교육’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학 교육을 방임적 시장원리에 내맡겨두고, ‘학제적 소양’과 ‘선택적 교양’을 혼동하는 한 이런 교육은 몽상에 불과할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연구’에 앞서 ‘교육’에 대해 진정 고뇌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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