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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넘어선 우리 시대의 고전
과학을 넘어선 우리 시대의 고전
  • 홍영남
  • 승인 2018.10.22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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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개정판)』(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2018.10)
1976년 『이기적 유전자』가 출판되면서 지식 사회에 끼친 영향은 마치 1859년에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했던 때와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1976년에 다시 등장한 다윈은 『종의 기원』을 쓴 50세의 다윈이 아니라 35세에 『이기적 유전자』를 들고 나타난 옥스퍼드 대학교의 한 젊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였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다윈의 『종의 기원』은 6판을 거듭하면서 계속 수정했기 때문에 내용이 초판과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는 40주년을 맞는 지금까지 책의 내용을 조금도 수정하지 않았다. 이처럼 도킨스는 놀라울 정도의 완벽성을 보여 준다. 다만 도킨스는 1989년 출간한 증보판에서 끊임없이 등장한 비판 내용에 따른 개정이나 반응 그리고 그 후에 전개된 내용들에 대해 보충하는 주를 달았을 뿐이며, 2개의 장을 첨가해 내용을 더욱 심화시켰다. 12장에서 야외 동식물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게임 이론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13장에서는 도킨스가 1982년에 저술한 『확장된 표현형』을 소개하면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정립한 핵심 개념을 더 발전시켰다. 그리고 30주년 기념판에서는 서문을, 40주년 기념판에서는 후기를 썼을 뿐이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당시 다윈주의에 대해 널리 퍼진 오해, 즉 ‘종의 이익을 위해서’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주장을 ‘유전자의 이익을 위해서’ 이타적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 행동에 대한 난해했던 문제들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간결하고 적절한 생물학적 비유로 풀어갔다. 또한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뛰어난 문장력은 당대 최고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이기적 유전자론’은 정설이 되었으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책이다.

이 책은 놀라운 창조성으로 가득 찬 매력적인 진화론이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눈으로 진화론을 대담하고도 섬세한 이론으로 무리 없이 펼치고 있다. 생명의 계층 구조 속에서 어느 수준이 자연 선택이 작용하는 이기적 수준이 될 것인가? ‘종일까? 집단일가? 개체일까? 생태계일까?’를 두고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도킨스는 이 모두가 틀렸다며 자연 선택의 단위는 이기적인 유전자일 수밖에 없다고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유전자 선택설을 주장했다. 이에 대한 논쟁은 진화생물학이 지식 사회의 중심에 서게 했다. 이로 인한 사회생물학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집단 선택설 주장)과 도킨스, 그리고 단속 평형설을 주창한 고생물학자 스티븐 굴드(종 선택설 주장)와 도킨스의 치열한 논쟁이 진화론을 한층 더 대중화시켰다. 또한 도킨스의 공적은 최근에 쏟아져 나온 다양한 적응론 연구 결과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모두 자기 복제자의 논리 체계를 통해 해석함으로써 다윈주의 하에 통합시킨 것이었다. 40주년이 지난 지금 인간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체가 유전자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 책에서 그는 유전자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37억 년 전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분자인 자기 복제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다. 이 고대 자기 복제자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그것들은 절멸하지 않고 생존 기술의 명수가 됐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주 오래전에 자유로이 뽐내고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 그것들은 거대한 군체 속에 떼 지어 마치 뒤뚱거리며 걷는 로봇 안에 안전하게 들어 있다. 그것들은 원격 조종으로 외계를 교묘하게 다루고 있으며 또한 우리 모두에게도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것들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 주는 유일한 이유다.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 기계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로봇 기계다. 생물 개체는 단지 불멸의 유전자를 운반하는 운반자일 뿐이다. 이 유전자의 세계는 비정한 경쟁, 끊임없는 이기적 이용 그리고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경쟁자 사이의 공격에서뿐만 아니라 세대 간 그리고 암수 간의 미묘한 싸움에서도 볼 수 있다.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원래 이기적이며, 생물의 몸을 빌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물의 이기적 행동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것도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라고.

이 같은 유전자 이야기는 너무나 공포스럽고 충격적이어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맹렬히 비판했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신념, 결정, 행동이 유전자에 제약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도킨스는 내용의 오독과 오해에 의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유전자 결정론을 죄악이나 환원주의와 같은 부류의 단어에 속한다고 반박하며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도깨비는 매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만은 다르지 않을까?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은 맹목적으로 유전자가 하라는 대로 따르지 않고 유전자의 전제적 지배에 반역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초판 마지막 장에서 제기하면서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유사성을 탐구했다. 도킨스는 인간의 특유한 문화 속에 모방의 단위가 될 수 있는 문화적 전달자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 단위 개념을 유전자(gene)에 대비해 문화를 창조하는 새로운 복제자를 밈(meme)이라고 정의하였다. 인간의 문화라는 수프 속에 등장하는 문화 전달의 단위인 밈은 뇌에서 뇌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문화에서 문화로 전파되는 모방의 힘이다. 이 같은 밈 풀 속에서 인간의 뇌는 신이라는 밈을 처음으로 태운 운반자라고 도킨스는 주장하며 신은 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며 밈이라는 상태로 실재한다고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신의  존재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종교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미 인류 문화에 대한 독자적 이론으로 밈을 받아들여 인간의 문화적 진화를 이해하려는 학문, 즉 밈학(memetics)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했다.

현대 진화 생물학의 기본 틀을 통합하고 개념적 토대를 제공한 『이기적 유전자』는 과학적 창의력을 집대성한 저서이며, 더 나아가 복제자/운반자를 구분함으로써 다윈주의 논리를 더 확장시켰다. 이처럼 우리의 사고를 바꾼 과학자 도킨스는 과학의 흐름을 꿰뚫는 과학사에 큰 획을 그은 과학에 담긴 경이로움을 이야기하는 이야기꾼이 아닐까! 이제 우리는 도킨스의 풍부한 이론적 정신을 지니고 있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생명관과 세계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홍영남 서울대 명예교수·생명과학부
서울대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식물학회장과 한국광과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옮긴 책으로 『이기적 유전자』, 『확장된 표현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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