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후 어떻게 지낼까 고민 중 후배의 코칭교육 참가 권유에 머릿수나 채워줄 셈으로 수강한 것이 큰 수술을 받은 양 속을 홀라당 뒤집어 놓았다. 코칭에서 강조하는 바는 긍정마인드를 바탕으로 긍정에너지의 공급을 통한 생각과 행동의 변화였다. 그런데 ‘열심히 배워 학생들을 잘 인도해야겠구나’가 되레 나 자신을 크게 변화시킬 줄을 예전엔 몰랐다. 참으로 놀라웠다. 나 스스로 깜짝 놀랐다.
그러다 이상주 총장과 여러 교수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이 총장이 회고록을 썼다고 간략하게 줄거리를 들려주시는데 하이라이트는 “글쎄! 내가 말이야 . . . 피츠버그대에서 놀랍게도 박사학위를 3년 반 만에 땄잖아 ~”이었다. 문제는 신나 말씀하는 그 놀라운 사실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점이다. 참다못해 내가 “아무나 3년 반 만에 땁니까?”하고 말하니 재미있어 해 “총장님은 남달리 천재성이 있으시니까 가능했던 것이지요”라고 보태자 전원이 한참 폭소를 터뜨렸다. 언뜻 아부성 발언인가 싶지만 그 분은 80을 넘는 노인, 나 역시 고희를 넘긴 마당에 아부를 잘 해 얻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어쩌면 ‘사나이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를 철저히 지키려는 태도인지 마음에 안 들었다.
최근 대학생을 겨냥한 『실례實例 좀 하겠습니다』란 책을 출간해 교수들에게 무려 200권이나 증정했는데도 단 두 사람 외 “책을 잘 썼네요”라든가 “좋은 책을 쓰느라 고생 많았다”는 등의 피드백은커녕, “택배로 보낸 책을 잘 받았다”는 확인조차 일체 없었다. 그 이유는 아부성이라 구역질나고 오해받을까봐 그랬을까. 긍정마인드라면 “어쩌면 글을 그렇게 잘 썼어요? 너무 재미있어 그날 다 읽어버렸습니다”라는 수준의 코멘트쯤 나옴직한데 한낱 이상일까. 꿈속에서조차 언감생심이라 여겨 아예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그래도 심하다는 느낌이었다. 간단히 “대단하네” “놀랍구나!”만 던져도 흐뭇해하건만 사람들은 한사코 외면한다. 옛날 처녀작인 ’회계 산책‘을 냈을 때 여교수 몇 분의 “글을 잘 쓰시더군요,” “너무 재미있어 밤새 독파했어요”라는 말이 지금도 가슴을 짜릿하게 울리건만 침묵으로 넘어간다. 왜 삼가는 것일까? 집안이 망하는가? 하다못해 돌림병에 걸려 죽기라도 한단 말인가?
우리는 긍정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에 인색하다. 고작 바둑 이야기에서 “아마 5단쯤 되지” 라 답하는 순간 갑자기 멧돼지 뛰어들 듯 “5단은 무슨 5단 . . . 3급이나 될까”하고 오래 전 몇 수 두어본 기억을 들어 폄하하고, 재미있어 하기 일쑤다. 말하는 대로 실력을 인정해주면 이른바 두드러기라도 생기는 걸까. 반면 나는 엄청 변했다는 평이다. 부정적인 말은 안 하기로 작정하고 긍정에너지 공급에만 올인하니 변화가 빨랐나 싶었다. 그 결과 관계 관리가 향상돼 행복할 때가 많아졌다. 종친회 여성분이 고마워 “맘씨가 참으로 고우시군요”라고 말했더니 잠시 후 “이것 교수님 잡수세요!”라며 비싼 갈치젓을 넘겨주는 모습이 말한다.
학생들을 지금과 같이 긍정마인드로 지도하였더라면 엄청난 교육성과는 물론 꽤 존경받았을 텐데 안타깝기 짝이 없다. 요즈음 학생들을 만날 때 별로 해준 게 없음에도 꽤 좋아하니 실로 놀라워서 말이다. “넌 강점이 많은 아이야”라는 한 마디에 감동해 평생 멘토가 되어 달라는 녀석도 있다. 심지어는 “교수님이 강조한 긍정마인드 덕분에 100:1의 국책연구원직에 무난히 합격했습니다”라며 무척 고마워한다.
막상 긍정의 길로 들어서기로 작정하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잘 하고 있구나,’ ‘어쩌면 마음씨가 그토록 따뜻하니,’ ‘사람을 잘 챙기는 구나,’ ‘포용력이 있구먼’과 같은 말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가져온다. 이제 핸들을 긍정에의 길로 돌리자!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온통 긍정으로 싸바르며, 긍정바이러스를 공급하려 든다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을까.
정헌석 성신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