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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울창한 숲은 누가 만들었나?
지금의 울창한 숲은 누가 만들었나?
  • 이경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8.10.1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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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이경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요즘 뉴스를 통해서 북한의 헐벗은 산을 접하면서 북한에서 태어난 필자의 마음은 매우 아프다. 북한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더 우거진 숲을 가지고 있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산림의 1/3가량이 민둥산으로 변했다. 반면 남한은 반세기 전에 전국에 걸쳐 민둥산(전체산림의 58%)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나 지금은 OECD 국가의 평균보다 더 우거진 숲(평균 입목축적 150m3/ha)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해서 우리 숲이 이렇게 단기간에 좋아졌을까?

우리 숲은 조선시대 후반부터 인구증가와 더불어 급속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모든 목재와 연료를 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일제강점기의 산림자원 수탈, 해방과 6.25 전쟁의 혼란기를 틈탄 도벌과 남벌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부는 12년 집권하면서 거의 매년 새로운 산림녹화 정책을 쏟아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박정희 정부는 1967년 산림청을 신설하여 산림행정조직을 강화하고 본격적으로 산림복구에 힘썼다. 산림법, 사방사업법, 국토녹화촉진임시조치법, 화전정리법 등을 제정하여 연료림 조성과 사방(砂防)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화전민의 개간을 금지했다.

그러나 정부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번 황폐한 산림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나무를 열심히 심었지만, 오랜 관행으로 되어 있던 낙엽채취가 문제였다. 낙엽은 썩어서 천연적으로 비료가 된다. 낙엽을 지속적으로 빼앗긴 산림토양은 점점 척박하고 건조해졌고, 심어 놓은 나무조차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1973년 정부는 특별한 조처를 내렸다. 농림부 산하의 산림청을 내무부로 이관하여 전국 지자체의 산림 행정조직을 산림청과 연계시켜 강력한 협력 체계를 확립하고, 야심찬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마침 뜨겁게 출범한 새마을운동 조직을 활용해 농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냈다. 새마을운동은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정신개조운동이었으며, 자조와 협동 정신으로 주민이 수혜자가 되는 연료림 조성의 공동사업과 마을 뒷산 조림사업을 활성화했다. 특히 내무부 경찰력을 동원하여 도벌꾼을 잡고 낙엽채취를 근절시켰다.
 
제1차 치산녹화 계획은 6년 만에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1979년에 “제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세워 이를 완성함으로써 총 205만 ha(남한 산림면적의 30%)에 49억 본의 나무를 심었다. 특기할 것은 700년 이상 지속되었던 화전을 완전히 없앴다는 사실이다. 당시 국내에는 농민의 13%(총인구의 6%에 해당)가 화전민이었다. 총30만 가구가 13만ha의 산림을 훼손하고 있었는데, 영농 지원, 정착촌 건립, 취업 등의 생계수단을 마련하는 완벽한 이주 정책을 세웠다. 화전정리는 세계사에 빛나는 업적이다.

위와 같이 20세기의 기적으로 불리는 산림녹화의 진정한 공로자는 누구인가? 물론 녹화사업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국민을 독려한 국가 지도자와 산림공무원이 우선 떠오른다. 그러나 험준한 산에서 그 넓은 면적에 그 많은 나무를 심은 현지 농민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식수사업은 손으로 한 그루 씩 나무를 심는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당시 농민들은 굶주린 배를 끌어안고 열심히 나무를 심었다.

밀가루 한 되박을 얻기 위해 사방사업 현장에서 땀 흘리면서 일한 사람은 가난한 농민들이었다. 농민들은 예전부터 두레 정신에 입각하여 마을별로 산림계(山林契)를 결성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이 필요한 연료림을 1가구당 0.5ha 씩 조성하고 가꾸었다. “내마을 붉은땅 없애기운동”은 협동 정신에 입각하여 자발적으로 수행한 모범적인 조림사업이었다.
 
위와 같은 모범적인 녹화사업은 지구온난화와 개발도상국의 산업화로 세계 산림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시점에서 세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 당시 산림녹화에 관련된 기록물을 수집하여 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업이다. 필자는 “산림녹화UNESCO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국립산림과학원 구내)의 위원장으로서 현재 소실되어 가고 있는 기록물을 수집하는 데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협조를 기대한다.
 

 

이경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산림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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