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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론'은 없다?
'일본문화론'은 없다?
  • 서동주 서울대·일본연구소
  • 승인 2018.10.0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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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판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일본문화론’이라는 장르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서점에는 문학, 역사, 정치, 철학 등과 같이 익숙한 항목들 사이에 일본문화론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다. 그곳을 일본문화론의 고전으로 불리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비롯해 일본인 저자들이 집필한 수많은 관련 서적들이 채우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일본문화론이 계속 쏟아지고 있는데, 아마 일본인들처럼 자국의 문화론을 사랑하는 국민도 없으리라. 

2000년대를 대표하는 일본문화론의 하나인 『일본변경론』(2009)에서 저자 우치다 다쓰루는 일본인의 자국 문화론에 대한 식지 않는 애착의 원인을 ‘변경인의 사고방식’으로 설명한다. ‘변경인의 사고방식’이란 일본에 대한 참된 지식은 일본 안이 아니라 일본 밖에 있다는 생각을 가리키는데, 그 때문에 일본인은 일본인이 쓴 일본문화론을 읽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곧장 새로운 이론에 정신을 빼앗겨 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문화론이 번성한 것은 자신들이 자국 문화에 가장 정통하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거꾸로 진리에 대한 비주체성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이 해석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전후에 출판된 수많은 일본문화론은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참고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중에서도 인류학자인 나카네 지에의 『종적 사회의 인간관계』(1967)나 정신과 의사였던 도이 다케오의 『아마에(甘え)의 구조』(1971)와 같은 책들은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돼 외국인들의 일본 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들은 공통적으로 일본인의 대인관계에서 관찰되는 ‘약한’ 개인주의와 ‘강한’ 집단주의의 원인을 탐구하고 있다. 요컨대 전자가 그것을 ‘이에(家)’라는 전통적인 생활공동체의 유산으로 파악했다면, 후자는 타인과의 정서적 일치를 원하는 일본인 특유의 심리(아마에의 심리)로 설명하고 있다. 

일본인의 자국문화론에 대한 식지 않는 애착의 원인을 '일본변경론'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한 우치다 다쓰루의 『일본변경론』(김경원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12). 나카나 지에의 『종적 사회의 인간관계』는 우리나라에서 『일본 사회의 인간관계』(소화 펴냄, 2002)로 번역·소개됐다.

이 책들을 계기로 1970-80년대는 일본문화론의 출판이 일종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것들은 일본인 특유의 집단에 대한 강한 정서적 일체감이 전후 고도 경제성장의 문화적 배경을 이룬다고 주장함으로써 일본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달리 말해, 이 책들은 문화론의 형태를 빌려 전후 일본인이 이룩한 성공신화를 정당화했고 그 결과,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의 확산에 기여했다. 여기에 이 시기 일본에서 가족, 회사, 지역 등과 같은 공동체들이 일본인의 사회적 관계의 토대로서 착실히 기능했다는 점도 일본문화론 번성의 한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는 전통사회의 ‘이에’를 대신하는 생활공동체의 역할을 담당했다. 가장들은 회사에 헌신했고, 회사는 그들의 헌신에 안정적인 고용제도로 보답했다. 이런 헌신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전후 핵가족 제도를 유지하는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집단주의를 옹호하는 일본문화론이 융성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정체성의 핵심이자 생활의 모태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소위 ‘버블경기’의 붕괴에 이어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의 결과, 공동체의 모습은 달라졌다. ‘회사인간’을 낳았던 연공서열과 종신고용 제도는 과거의 것이 되었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수를 점하는 시대로 변화했다. 개인 간의 소득 격차만이 아니라 지역 간의 격차도 심해져 ‘지방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들린다. 非혼자가 증가하고 출산율이 감소하면서 가족의 모습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그에 따라 일본문화론의 내용도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과거의 일본문화론은 ‘일본인론’에 가까웠다. 이와 달리 최근의 일본문화론은 ‘서브컬처’ 내지 ‘오타쿠문화’를 다룬 글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일본의 상업적 대중문화가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본래 하위문화를 의미하는 ‘서브컬처’라는 말의 유행에서 보듯, 문화의 전체성과 같은 개념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음을 의미한다. 

일본에서 하위문화를 다룬 책 가운데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책은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은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7)이다. 

이와 함께 개인의 사회적 관계의 토대가 되는 공동체의 의미도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 가족, 회사, 지역과 같은 기존의 공동체가 퇴조하고 정보사회의 확산을 배경으로 신념과 취향의 공통성에 기반하는 작은 공동체들이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사례에서 보듯, 현대의 공동체들은 때로 폭력을 통해 사회적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계층, 세대, 지역 간의 심화되는 격차는 사회적 갈등의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인들에게 사회란 공동체들의 조화로운 결합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 간의 경쟁과 대립의 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분명한 점은 이러한 현대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문화론의 설명력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서브컬처 문화론만으로 일본에 대한 지적 허기를 모두 채울 수 있을지 확신하긴 어렵다. 당분간은 이런 애매한 상황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마도 일본문화론이 앞으로도 계속 양산될 터, 사회가 더 이상 ‘아마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미래의 일본문화론은 어떤 응답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서동주 서울대·일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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