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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 미래 한국의 救命艇 될 수 있을까?
국어국문학, 미래 한국의 救命艇 될 수 있을까?
  • 문광호 기자
  • 승인 2018.10.08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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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기념, 전국 대학 국어국문학과 현황 진단 

인문콘텐츠학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 외국어로서 한국어교육. 최근 바뀐 국어국문학과의 명칭들이다. 시대적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국어국문학과가 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정 위기에 놓인 대학들의 면피용 ‘꼼수’라는 쓴 소리도 제기된다.

<교수신문>은 오는 9일 572번째 한글날을 맞이해 한글과 한국어 연구의 근간인 국어국문학과의 현황을 짚어봤다.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국어국문학 연구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는 반면, 깊이는 얕아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줄어드는 국어국문학과 수… 5년 새 10% 줄어

단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학생들의 수가 줄었다. 대학알리미 ‘학교별 학과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일반대 중 국어국문학과의 수는 2014년 106개에서 올해 96개로 14개 학과가 사라지고 4개 학과가 생겨났다. 학과 성격이 변경되거나 세부 전공으로 격하된 학과 수를 합치면 그 규모는 더 크다.  

학과가 사라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어국문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데 있다. 취업에 도움이 안 되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실용적인 가치를 가르치지도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재설 우석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80년대 후반부터 국어국문학과가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국어국문학과가 무조건 있어야 하고 정부에서 살려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학에서만 살려놓고 취업이 안 되면 그 학생들은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석대 국어국문학과는 남아 있는 학생들이 모두 졸업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대학의 실용학문 선호도 국어국문학과의 통폐합을 가속화하고 있다. 강남대 국어국문학과는 영어영문학과와 함께 한영문화콘텐츠학과로 통합됐다. 김희정 강남대 교무처 팀장은 “ICT·복지 융합대학으로서 강남대의 비전을 추구하기 위해 순수학문을 다루는 학과들을 개편했다”고 밝혔다. 강남대 이외에도 많은 대학들이 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대비한다는 이유로 국어국문학을 비롯한 순수학문 학과들을 개편하고 있다.

대학구조개혁평가는 국어국문학 소외 현상을 부추겼다. 구조개혁평가에서 재정지원을 제한을 받은 대학 상당수가 국어국문학과를 통폐합했다. 김문주 영남대 교수(국문학과)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가 대학에 들어오면서 인문학이 위축됐다”며 “정부가 돈으로 대학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취업률이 떨어지는 인문학과들을 대거 축소하고 구조조정하면서 인원을 많이 감축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신과 사고의 근간, 국어국문학… 해외에서도 각광

연구자들은 국어국문학과가 사라지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국어국문학의 역할과 가치까지 잊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손종업 중앙어문학회 회장(선문대·국어국문학)은 “대세나 추세를 따른다고 해서 정말 미래가 있을까”라고 되물은 뒤 “국어국문학은 난파선의 구명정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미래에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하는 학문”이라고 설파했다. 이어 그는 “문학 공부를 선택할 때 ‘무엇을 공부하면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가’보다 ‘무엇이 이 세상과 삶, 인간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을 수 있는, 나를 전면적으로 걸어볼 학문인가’라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학과 통합을 경험한 이철우 동의대 교수(한국어문학과)도 국어국문학의 가치를 실용성에서만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국어국문학은 한국 사회의 정신과 사고의 근간을 이룬다”며 “국어국문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학문적 발상을 시도할 때 새로운 가치, 미래가치가 창출된다”고 말했다.

외국어로서 한국어의 조명

한편, 한류 등 시대적 흐름에 조응해 국어국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시도도 있다. 외국어로서 한국어, 외국인을 위한 한국문학 교육이 대표적. 한국외대는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고 한국어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KFL학부를 신설했다. 2019학년부터는 신입생을 모집한다. KFL학부를 담당할 허용 한국외대 교수(한국어교육과)는 “글로벌 인재양성과 고급 知韓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유학성 전용학부”라며 “45년이 넘는 한국어교사 양성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학문 영역을 개척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외에도 연세대 글로벌인재학부, 부산외대 한국어문화학부, 상명대 한국어문화학과 등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교육하거나 해외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리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어, 한국문학에 대한 해외의 학문적 접근도 늘고 있다. 허 교수에 따르면 해외 100여 개국의 1천개 이상의 고등교육기관이 한국학과정을 개설했다. 미국 조지메이슨대는 현대·고전언어학과 내에 한국어 교육과정을 만들고 한국학센터도 운영 중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교수로 있는 류블라냐대 역시 한국학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류블라냐대 예술학부는 한국문학, 한국사, 한국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다. 남경대, 복단대의 한국어과, 길림대 한국학연구센터 등도 한국어 연구 교류에 관심이 많다.

국어국문학, 어디로 가야하는가

국어국문학과 교수들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철우 교수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한국어와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상품화되고 있다”며 “그러나 단순히 상품으로 한국어와 문화를 대한다면 언젠가는 콘텐츠가 소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한글, 한국문학 등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전달할 수 있도록 국어학 전문가들도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문주 교수는 국어국문학의 변화 이전에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150세 이상을 살고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역동적으로 변하는 사회 속에서 평생 직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학을 취업기관으로 생각한다면 취업률은 기껏해야 첫 직장 선택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인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유일하고 예외적인 학문으로서 인문학, 국어국문학이 중요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견지에서 국어국문학이 교양교육, 시민교육 차원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부 대학은 국어국문학을 교양교육으로 편입시키기도 한다. 하버드대, 예일대 등 해외 명문대 역시 교양교육을,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교육으로 개편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반론은 있다. 교양교육은 종합교육(General education)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학문을 다루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다시 실용주의다. 실용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을 맞닥뜨린 국어국문학이 미래 한국을 구원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제는 답을 찾아야 할 때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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