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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 기타, 내 인생의 두 바퀴
헤세와 기타, 내 인생의 두 바퀴
  • 정경량 목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9.0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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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정경량 목원대 명예교수

나는 서른 살에 일찍 교수가 되어, 33년 동안 목원대에 봉직했다. 그리고는 지난 해 봄 명예퇴직을 하였다.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조기 은퇴를 하게 되었을 때, 오랜 세월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는 아쉬움과 앞으로 자유롭게 펼쳐나갈 ‘노래하는 인문학’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했다.

14살 때 나는 헤세와 기타를 만났다. 우울하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시절이었다. 정신적 고뇌로 인하여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헤르만 헤세의 시 「방랑길에」는 나를 위로해 줬다. 인생은 덧없이 훌쩍 흘러가는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는 것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시를 통하여 인생은 짧은 것이리라는 예감을 하게 됐고, 낙천적인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무 살 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만나면서, 나는 독일 문학과 헤세 문학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됐다.

1968년 성탄절 때,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기타 한 대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다. 그 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나는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살아왔다. 헤세가 내 삶의 정신적 스승이라면, 기타는 내 인생의 소중한 벗이 된 것이다. 그러니 헤세와 기타는 내 인생의 두 바퀴인 셈이리라.

1990년대 말 학부제로 인해 대학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닥쳐오자, 기타는 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아주 요긴한 교육 기자재로 활용됐다. 독일어 문학 관련 학과에도 다가올 어려움이 예상되자, 나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우선 독일어와 독일 문학을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기타를 활용하여 「노래로 배우는 독일어」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독일 시 수업도 가능한 한 독일 노래를 연계시켜 「독일 시와 음악」 수업으로 진행했다.

독문과 학생들이 이 수업들을 아주 좋아하게 되자, 나는 다른 학과 학생들과도 이런 수업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자 문득 노래 속에는 시와 음악이 함께 들어있다는 사실이 번뜩 떠올랐다. 흡사 기발한 아이디어를 고안해 낸 것처럼 나는 그 순간 너무나도 기뻐했다. 교양과목 「아름다운 시와 음악」은 그렇게 해서 개설됐으며, 「노래로 배우는 독일어」 수업과 더불어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수업이 됐다.

2011년 어느 날 아침이었다. 문득 하나의 문구가 떠올랐으니, 바로 ‘노래하는 인문학’이다. 인문학을 노래로 풀어내자는 뜻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오랜 세월 동안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인문학의 삶을 살다보니, 내 삶 전체가 노래하는 인문학이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된 것이다. 평생을 몰두해 왔더니, 드디어 하느님께서 내 삶에 이름 하나를 붙여주시는구나! 그 날 나는 하느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퇴직하고 나니 여러 해 동안 진행해 온 ‘노래하는 인문학’ 콘서트 활동이 더욱더 전국적으로 확대돼 진행되고 있다. 50년 전에 취미로 시작했던 기타 연주와 노래가 오늘날 인문학과 어우러져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활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오는 9월에는 헤세와 기타, 노래하는 인문학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제3회 독주회를 ‘노래하는 인문학-헤세와 기타 50년’이라는 주제로 연다.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인문학을 강연하는 것이 나는 무엇보다도 즐겁고 행복하다. 국내외의 아름다운 곡들을 모두 기타로 연주하고 노래하고 죽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망이다.

21세기는 인문학과 문화예술의 시대이다. 또한 평생학습의 시대이다. 아름다운 시와 노래, 문학과 음악이 있다는 것, 읽어야만 할 소중하고도 훌륭한 인문학 관련 책들이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남은 삶에 아직 충분한 기대와 희망이 있다.
 

인생이란 즐거워야만 한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인생
연주하라, 낭송하라, 노래하라!

 

 

정경량 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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