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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살아있다
대학이 살아있다
  •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 명예특임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18.08.27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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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한 언론에 「교육부에 첫 반기 든 포스텍 ‘정시 30%’ 수용 않겠다」라는 헤드라인이 떴다. 포스텍은 2022학년도부터 신입생 30% 이상을 정시로 뽑으라는 교육부의 권고안을 수용하지 않고, 현재처럼 330명의 신입생 전원을 수시에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하겠다고 밝힌 내용이다. 재정 지원을 못 받더라도, 맞지 않는 입학제도는 따르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 모습은 대학 등 우리 사회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대학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교육부는 현재 중3부터 적용되는 2022년 대입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수능 개편을 유예한 후, 몇 달간의 숙의 공론화 과정을 거친 국가교육회의의 대입개편 권고안을 받아 발표한 것이다. 여기에는 수능위주 전형인 정시 비율을 대학들이 30% 이상 확대할 것을 권고하는 안이 포함돼 있다. 

교육부는 학생부 교과성적이 낮은 수험생 등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취지에서 수능위주 전형비율을 확대했고, 정책의 실효성을 위해 대학에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권고는 일종의 지침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대학의 자율성을 해치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교육부는 이 권고안에 협력하면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이므로, 자율성 관련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BK21’, ‘잘 가르치는 대학(ACE)’ 사업 등으로 고등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문제는 모든 대학들을 획일적으로 끌고 가며, 재정지원을 무기로 대학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등록금 동결, 반값 등록금, 입학금 폐지 등으로 재정이 매우 취약해진 대학에게 재정지원사업은 ‘생존’ 문제처럼 됐다. 그래서 대개 지원사업의 내용이 그 대학 발전에 적합한지 따져보기 보다는, 재정지원 받는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흐름에서 ‘대학의 자율성’ 주장은 침묵 모드로 변했다. 

그런데 포스텍 김도연 총장은 ‘매년 8~9억원 받던 재정 지원이 끊길 경우 타격이 크지만, 지원을 못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10여년 간 우수학생 선발을 위해 정성을 다해 축적한 수시 노하우를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수능선발은 정답을 골라내는 인재만 양성하므로 미래 인재양성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는 그동안 정부 정책에 ‘순응화’된 대학사회를 일깨우는 사건으로 평가될 것 같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ACE 사업’ 1기, 2기 연이어 선정된 서울여대의 움직임이다. 이 대학은 교육부가 연 50억원 이상 지원하는 프라임사업에 신청하지 않았다. 취업시장 수요에 맞춘다지만, 3년 후 지속이 어려운 사업을 위해 구조조정하면, ACE 등 여러 사업을 통해 6년 동안 내공을 쌓아온 인재상 기반 인성교육, 서비스러닝 중심의 교육시스템이 훼손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주요 지원사업을 모두 받는 ‘그랜드 슬램’을 자랑스런 목표로 삼는 대학 현실에서, 서울여대가 보여준 인식과 의지도 새롭게 보인다. 단기적으로 재정적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학 발전의 흐름을 견지하는 일이다. 현재 2030년을 향한 중장기발전계획을 진지하게 수립 중인 서울여대는 1년 지원하는 ‘2018년 대학혁신지원 시범사업'에도 신청하지 않았다. 제대로 준비 안 된 중장기 계획을 신청서에 담을 수 없다는 전혜정 총장의 판단이다.

정부와 사회는 이처럼 미래를 향해 자율적으로 각자의 위치를 세워나가는 대학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적극 격려하며 도와야 한다. 정부는 대학들을 하나의 틀에 넣기 보다는, 큰 방향만 제시하고 입학정책을 포함한 다양성 확대를 권장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는 다양성, 맞춤형이 핵심요소다. 언론은 교육부의 ‘권장’ 사항에 대해 대학이 그 특성에 따라 판단한 것을 ‘교육부에 반기’라고 표현하지 말고, 대학 스스로의 노력이라 생각하고 박수 쳐주기 바란다. 대학들이 살아있어야 미래의 희망도 있다.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 명예특임교수·과실연 명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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