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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해체한다는 것에 대하여
서재를 해체한다는 것에 대하여
  • 교수신문
  • 승인 2018.08.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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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를 '소유 효과'라고 하는데, 얻는 것과 잃는 것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기 때문에 생긴다. 또한 사람들은 같은 양의 고통과 즐거움이 있을 때 즐거움보다 고통을 두 배나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즉 10달러를 잃을 때 느끼는 고통의 강도가 10달러를 얻을 때 느끼는 즐거움의 강도의 두 배라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를 알 수 있는 연구 결과다.

각 대학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8월 말이면 많은 교수님들이 정년을 맞이해 정든 연구실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때 겪게 되는 필연적인 과정 중 하나는 연구실 벽을 가득 채웠던 책들을 정리하는 일이다. 집으로 가져갈 책, 후배에게 물려줄 책, 폐지로 버려야 할 책들을 골라서 박스에 싸야 한다. 물론 손때 묻은 서가를 망연하게 바라보는 것도 또 하나의 과정일 터.

이렇게 서재를 정리하기 위해 책을 싸는 행위를 “최후의 심판 전 온순한 입관 절차와 같다”고 표현한 알베르토 망겔(A.Manguel).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십대 후반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서점 점원으로 일하다가 시력을 잃어가던 작가 호르헤 보르헤스를 만나 그에게 4년 동안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망겔은 그 영향으로 작가, 번역가, 편집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많은 책을 집필했으며, 현재에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그가 최근에 출간한 책 『서재를 떠나보내며』(Packing My Library, 이종인 역, 더난, 2018)는 70여 개의 상자에 3만 5천여 권의 책을 포장하며 느낀 소회와 단상을 담은 에세이다.

망겔은 여러 나라를 돌며 활동하다가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자신의 장서가 모두 들어갈 만한 넓은 헛간이 딸린 집을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한다. 그리고 그의 전작 『밤의 도서관』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매우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망겔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15년 만에 그곳을 떠나 맨해튼의 침실 한 칸짜리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서재를 해체해야 할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망겔은 서재를 해체하고 책들을 상자에 집어넣는 작업을 하면서 자신에게 서재가 어떤 의미인지, 책을 서가에 꽂거나 빼내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또 문학의 효용가치가 의심받는 이 시대에 문학이 갖는 힘이 무엇인지까지도 사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 편린들을 『서재를 떠나보내며』에 담담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내 서재에는 전문적인 장서가가 가치 있다고 할 만한 책들은 몇 권 되지 않는다. 그래도 꼽아본다면 13세기 독일 수도원의 필사실에서 제작된 채색 필사본 성경, 16세기 종교 심문관의 매뉴얼, 진귀한 초판본들 그리고 저자나 선물한 사람의 사인이 들어있는 책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문적인 수집가가 되기에는 돈도 부족했고 지식도 풍부하지 못했다” 세계적인 독서가이자 장서가인 망겔의 이러한 진술은 도도한 겸손이라 할 수 있다.

“나는 1969년에 유럽으로 떠나면서 나의 초창기 책들을 모두 놔두고 왔다. 당시는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서기 전이었다. 만약 내가 그곳에 계속 머물렀더라면 많은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경찰 단속을 두려워하며 책들을 처분해야 했을 것이다. 그 살벌했던 시절에는 단지 수상해 보이는 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란죄 혐의를 뒤집어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대목에서는 우리나라의 엄혹했던 1970-80년대를 연상시킨다.

책은 그걸 읽는 순간 속에 존재하고, 그 후에는 읽은 페이지에 대한 기억으로서 존재하며, 책이라는 구체적 형태는 얼마든지 처분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스승 보르헤스와 달리, 망겔은 언어의 구체적 물질성, 책의 단단한 현존, 그 형체, 크기, 질감을 원하는 사람이다. 그는 전자책이 플라토닉한(?) 관계의 특성만 갖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은 “믿으려면 먼저 만져봐야 한다”는 성경 속 도마 같은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이런 사람이기에 망겔에게 책을 박스에 넣어 창고에 처박아두는 일은 생매장처럼 느껴졌고, 서재의 해체 후 긴 애도의 기간을 견뎌야 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애서 목록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며 또 그가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매력적인 사람인지도 미리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서재는 일종의 ‘자서전’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기 역사’가 곧 ‘세계사’라고 설파했던 일본의 대표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에 의지하자면, 자서전이라 할 서재를 해체하는 일은 ‘자기 역사’를 해체하는 일이고 세계사를 해체하는 정도의 고통스러우면서도 장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학자나 작가에게는.

 

 

김정규 서평위원/방송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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