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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의원회라는 곤경
대학평의원회라는 곤경
  •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 승인 2018.08.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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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요즘 국공립대학들은 한가지 난감한 일을 겪고 있다. 특히 학교를 운영해야 하는 총장의 처지는 곤혹스럽다. 지난해 11월말에 느닷없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되고 지난 5월 29일부터 발효한 ‘고등교육법 19조 2’ 때문이다. 이 법은 대학에 ‘대학 발전계획, 학칙, 그밖에 교육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하고, ‘교육과정 운영, 대학헌장 제(개)정’ 등을 자문하는, ‘교직원과 학생 등으로 구성되는 대학평의원회를 설치·운영하여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평의원회는 교원, 직원, 조교. 학생 중에서 각각의 구성단위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 (동문 및 학교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를 포함할 수 있다) 11명 이상으로 구성하되, 어느 하나의 구성단위에 속하는 평의원의 수가 전체 평의원 定數의 2분의 1을 초과해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립대학들은 사립학교법에 따라 이미 대학평의원회를 운영해 왔기 때문에, 이 법의 효력은 실질적으로 국공립대학들에만 작용하는 셈이다. 물론 국공립대학들에도 저간의 ‘대학민주화’ 노력의 중요한 결실로, 교수평의회, 평의원회 등의 동일하거나 유사한 이름을 가진 기구들이 존재해 왔다. 대학에서 거의 유일하게 총장이 임명하지 않고 교수들이 선출하는 위원들로 구성되는 이 기구들은, 의사결정과 행정과 징계의 삼권을 독점한 총장의 독단과 전횡을 견제하는 데 적잖이 기여하면서 민주적 의사결정에서 중요하게 구실하고 있다. 덧붙이면, 대학의 민주주의를 눈엣가시로 여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이 기구들을 약화시키고 그것으로 총장의 권력을 절대화한 다음 총장을 통제함으로써 대학을 장악하고 지배하고자 온갖 방책과 술수를 구사했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지금 대다수의 국공립대학들에서 교수들은 해당 법에 따른 ‘대학평의원회’ 구성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며, 국회에 법조항의 재개정을 청원했고, 헌법소원 청원도 준비 중이라고 듣고 있다. 교수들이 해당 법에 부정적인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이름은 ‘대학평의원회’임에도, 대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연구’에 관한 사항은 이 기구의 심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연구에 관한 사항도 ‘학칙’의 주요 내용이기 때문에 ‘대학평의원회’가 구태여 다루고자 한다면 못 다룰 일도 아니지만, 입법과정에서 부주의 탓이었던지 아니면 의도적인 것이었던지 (어느 쪽이거나 심각한 문제이지만) 아무튼 결함을 가진 해당 법에 따라 구성하는 기구는 반쪽짜리를 벗어날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어느 하나의 구성단위에 속하는 평의원의 수가 전체 평의원 정수의 2분의 1을 초과해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이다. 이 규정은 기존 사립학교법 시행령의 ‘평의원회의 구성’ 조항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으로, 법률 체계의 측면에서도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학의 특성과 대학에서 각 구성단위가 갖는 지위와 역할을 고려해보면 제정의 취지나 목적을 납득하기 어렵다. 예컨대 ‘직원’을 사례로 말하면, 대학에서 그들은 총장의 명령을 받아 규칙이나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한다. 그들이 심의기구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이 입안한 규칙이나 정책을 심의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러 대학들에서는 심지어 각 구성단위의 비율을 1:1:1:1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11월에 국회의원들은 갑자기 법조항의 개정하면서, 그 법의 주된 이해당사자인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국회의원들의 의견은 듣지 않은 채 ‘국회평의원회를 설치·운영해야 하며, 의원, 보좌관, 사무처직원 등으로 구성하되 어느 하나의 구성단위의 평의원의 수가 전체 평의원의 정수의 2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다’는 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그 와중에 그 비율을 1:1:1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리는 상황인 셈이다. 국회의원들께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이런 연유로, 대부분의 국공립대학에서 대학평의원회 구성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더구나 해당 법의 시행령은 ‘구성·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을 정할 때 구성단위로부터 의견을 수렴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어, 일부 구성단위의 의사를 무시하고 구성을 강행할 수도 없게 돼 있다. ‘대학평의원회’의 심의가 필요한 사항들이 쌓여가는 총장으로서는 법을 위반할 수도,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는 곤경에 처해있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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