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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의 섬, 제주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려면?
세계평화의 섬, 제주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려면?
  • 고성빈 제주대·정치외교학과
  • 승인 2018.08.13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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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에 새로 쓰는 ‘제주4·3’의 의미론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 왼쪽 두 번째부터 군정장관 딘 소장, 통역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맨스필드 제주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총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9연대장, 최천 제주경찰감찰청장. 이날 회의에서 강경진압을 촉구하던 조병옥 경무부장과 유화책을 건의하던 김익렬 연대장 사이에 육탄전이 벌어졌다(1948. 5. 5). 사진 출처=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근대는 막연한 것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구성하는 시대였다. 이성, 주체, 종교, 국가, 과학의 의미는 실체적 개념과 이론으로 구성됐고 이해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인식하고 파악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오늘날 탈근대적 문제의식에 의하면 그 분명했던 의미들은 파편화돼 정확히 이해했다고 말하기 힘들게 됐다. 이제는 근대가 구성한 의미들이 분명한 개념과 이론으로 포착되는 게 아닌 골목길을 지나다 발로 차보는 돌멩이거나 아니면 바닷가 소라껍질처럼 호기심에서 주어 보는 대상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파편화된 4·3의 의미

즉, 오늘날 제주4·3의 의미는 좌·우이분법으로 분명히 해석돼지기에는 너무 사분오열돼 해수욕장에 모래알처럼 널려있게 됐다. 어떤 이들에게 4·3은 진실을 찾기 위한 수단이자 이정표이지만, 생각에 따라 진실은 달리 재현되고 있다. 누구에게 그것은 권력이나 명예를 도모하기 위해 긍정 혹은 부정하기도 하는 방편에 불과하다. 진보는 4·3으로 인해 미국과 국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보수는 살상의 참극을 종식시켰다고 경외하기도 한다. 지식인들은 그에 대한 진실을 규정하려고 여기 저기 흩어진 상충되는 자료와 기억들을 모으느라 동분서주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신세를 한탄하는 실패서사의 재료, 어떤 이는 그럼에도 성공했다는 성공서사의 재료로 사용한다. 어떤 이에게는 죽어도 기억하고 싶거나, 아니면 살아생전에 반드시 잊고 싶은 비극의 역사이다. 물론 이들 중에 최악은 4·3으로 이런 저런 프로젝트를 만들어 예산을 긁어모으고 비즈니스를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오늘날 대다수 제주인과 육지인들은 4·3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 즉, 의미마저 희박해지면서 ‘무의미’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4·3은 오늘날 많은 파편화된 의미들 중의 ‘어떤 (무)의미’가 됐다. 따라서 그냥 ‘제주4·3’이라고 칭하자. 그 이유는 4·3의 의미가 흩어져버린 이 시대에 우리들로 하여금 자유스러운 사고를 허용하기 위해서다. 독자들은 각자의 견해대로 4·3 뒤에 어떤 이름(사건, 사태, 운동, 학살, 폭동, 반란, 봉기, 항쟁 등)을 붙이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정의 명칭을 사용해 사유를 고착화 시킬 필요는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역사는 고정된 ‘실체적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해석되고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철학적 진실’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사유의 운동이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지도 한참 후인 2018년 역사의 망원경(현미경이 아닌)으로 과거의 그날들을 타임슬립해 쳐다보면서 몇 가지 특징을 추출했다. 여기서의 서술은 문화적으로는 포스트모던이자 정치적으로는 포스트냉전 시대의 렌즈로 과거의 일을 비평했기 때문에 일종의 후견지명(hindsight)으로 볼 수 있다. 독자들이 나의 ‘망원경으로 역사 새로 보기’에 거북함을 느낀다면 당신 자신의 망원경을 사용해 살펴보고 토론할 것을 제안한다.       

인정투쟁, 탈제국·탈식민의 제2의 독립운동

한반도 역사를 관조하면 항상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외세를 이용하는 세력들이 서로 권력을 다투면서 민중의 비극적 희생을 가져왔다. 이념이니 대의명분이니 하는 것들은 그저 구실에 불과했다. 그리고 조선 말기 이래 지속된 한국의 근대사를 보면 구시대를 보내고 새 시대로 가는 전환기에 구시대의 부패기득권세력이 희생된 게 아니라 그들을 대신해 민중들이 희생을 당하고 그 토대위에 새로운 구조가 건설됐다. 

근대 이래로 4·3은 학살의 규모면에서 한국전쟁을 제외한 비극적 사건들(여순 봉기, 4·19, 광주민주화항쟁)에서 발생한 희생보다도 그 규모가 컸고, 따라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걸쳐 유무형의 파급효과도 심대하다. 단지 육지에 비해 제주의 담론패권이 약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21세기 포스트모던, 포스트냉전이 가져다 준 사유를 활용해 파편화되고 있는 의미를 다시금 재발굴해 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째, 장기지속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4·3은 탐라시대부터 육지의 중앙권력으로부터 차별과 배제를 당한 제주인의 고유성과 주체의식을 주창하려는 측면에서 ‘인정투쟁’의 의미가 있다. 

둘째, 중기 국면의 역사에서 보면 몇 가지가 중첩된다. 일제의 직접적인 식민통치가 종언을 고한 뒤 남쪽에 등장한 신제국 미국에 의해서 친미반공의 순종적 국가통합을 강요당하는 ‘형식적 독립’상태를 거부하고 자주적 주권을 요구한 ‘진정한 의미의 독립운동’이다. 즉, ‘제2의 독립운동’이었다. 물론 북쪽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있었으나 소련제국과 그에 편승한 좌익들에 의해 철저히 무력화 됐다. 소련의 지배는 미국보다 더욱 획일적이어서 북한의 자주적 민족주의 운동가들은 활동공간이 더욱 좁았다는 차이가 있다.  

셋째, 전후에도 서세동점을 지속하기 위한 서양의 대표제국인 미국은 동아시아를 패권지배하기 위해 식민지를 직접 통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냉전체제를 구축하고 거기에 한반도를 종속시키려 했다. 이렇게 4·3이 동아시아를 향한 전후 서세동점의 신제국주의 통치에 대한 저항으로 여겨진다면 탈제국·탈식민의 저항운동이다. 단지 베트남과 달리 전국적으로 대미항쟁이 발전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넷째,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서 4·3은 상기의 국면에 반응한 사조들이 결합해 발생한 제주인의 ‘자발적’인 항쟁이었다. 이후 등장한 친미반공 독재정권이 소련과 북한의 지령으로 발생한 한반도적화를 위한 좌익게릴라폭동이라는 주장은 현상적 사건만을 냉전적 사고로 왜곡시킨 것에 불과하며, 실증적 근거도 부족하다. 이에 대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우익의 군인이었던 김점곤의 연구(『한국전쟁과 노동당 전략』)와 백선엽의 회고록(『智異山』)이 명백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다섯째, 결과적으로 당시 남한의 단독선거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신속하게 공산진영에 대한 저지선을 구축하려던 미국의 전략에 4·3은 한반도에서 좌우이념갈등의 분리적 지배기제를 심는데 좋은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즉, 좌익을 악마화하고 우익을 천사화해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민중을 편 가르기로 의식을 조작하고 패권적 지배기제를 구축하려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사과와 배상의 주체는 미국과 보수우익의 계승세력

4·3 당시 남한은 미군정이 지배했다. 미군정은 5·10선거를 추진했으나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됐고, 제주는 단독선거를 거부한 유일한 지역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4·3은 단순히 지역문제를 넘어 친미반공정권의 정통성과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지배에 대한 민중의 도전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로써 제주는 초토화의 참상을 겪게 된다.  

올해 70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 이어서 국가폭력의 역사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배상의 조치를 취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4·3의 배후 조정자인 미군정과 보수우익의 계승자들은 아직도 4·3을 좌익게릴라폭동으로 규정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을 거부하고 있다. 비판적 역사론을 전개하는 진보적 정치세력과 진보적 시민·지식인들의 공감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때 늦은 조치들을 폄하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부분적인 역사청산에 불과하다. 사실 진보진영은 사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진보적 시민과 정치세력은 애초부터 국가주의적 폭력을 비판해 왔으며 유족들과는 생각의 차이가 거의 없다. 사과하고 배상을 해야 할 세력은 미군정의 지휘자인 미국정부와 학살을 저지르고 정당화시켰던 보수우익의 계승세력이다. 따라서 이들이 반성하지 않는 한, 아직도 진정하고 실질적 의미에서 왜곡된 역사의 청산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단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의도된 망각’으로 인도되고 있을 뿐이다. 

제주4·3의 비극적 학살이 일어난 ‘세계평화의 섬’에서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되찾아 오려면, 비극의 배후 조정자인 미국과 직접적 가해자인 보수우익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이 있어야 한다. 

 

고성빈 제주대·정치외교학과
SOAS런던대에서 박사를 했다.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대한 주제로 논문을 다수 발표했으며 동아시아의 지성사와 사상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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