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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이 진단한 한국, “자본가가 되면 안 될 이들이 자본가가 된 나라”
장하준이 진단한 한국, “자본가가 되면 안 될 이들이 자본가가 된 나라”
  • 양도웅
  • 승인 2018.08.06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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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특별판 기자 간담회

“물론 개인적으로는 금서 지정이 ‘신나는(?)’ 일이었다. 금서가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광고 효과로 책 판매가 엄청나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놀라운 숫자의 새로운 독자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었고, 그 덕분에 더 많은 독자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최근 ‘불온 도서 지정 10년, 그후…’라는 소개 글을 달고 개정·출간된 『나쁜 사마리아인들』 서문에 적힌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과)의 소회다.

지난 2008년 여름, 국방부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한 23권의 책을 ‘국방부 불온 도서’로 지정했다.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등이 그 이유였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선정된 이유는 ‘반정부·반미’였다. 21세기에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정부 경제 정책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미국이 제안하는 질서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금서·불온이라는 딱지를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특정 도서에 붙인 것이다. 

하지만 과거 1970~80년대 금서·불온 도서처럼 그 도서들이 사람들 손이나 책상 위에서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불온’이 하나의 마케팅이 돼 사람들에게 그 책들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몇몇 책은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금서로 사람들의 눈과 귀가 가려진 게 아니라, 금서로 사람들은 당시 MB정부의 ‘진면목’을 더 정확하게 보게 됐다.  

이 불온 도서의 수혜자(?) 중 한 명인 장하준 교수가 지난달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본격적인 진행에 앞서 장 교수는 “내 입장에서는 내 이야기가 재미없다”며 “기자 여러분의 코멘트와 질문으로 행사를 진행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 장 교수의 모두 발언은 15분 남짓에 불과했다. 발언의 내용 또한 장 교수가 그동안 지적해온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바람대로 기자 간담회는 기자들의 현안에 대한 질문, 그에 대한 장 교수의 답변으로 열기를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최저임금 인상’ 문제로 대한민국 곳곳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번 기자 간담회에서 장 교수가 말하고자 한 것은, 보수·진보라는 특정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모든 경제 주체가 경제 발전에 참여하는 방법을 채택하자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복지국가인 스웨덴을 예로 들며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제안, ‘북한과도 협상하는데 정부가 삼성·현대 등의 대기업과 협상 못 할 이유가 있나, 마찬가지로 대기업이 노동자와 협상 못 할 이유가 있나’라는 문제제기에서 그런 그의 입장을 엿볼 수 있었다. 장 교수와 여러 기자 사이의 질의응답을 요약·소개한다. 

장하준 교수는 이번 기자 간담회에서 남북회담, 북미회담 등을 고려해 정부, 재벌기업, 노조 등이 서로 협상(타협)하지 못할 이유가 있냐고 지적했다. 사진 제공=부키

▲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실직하면 생계 때문에 바로 막막해진다. 그래서 엄청나게 생계형 창업을 한다. 선진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약 12% 정도인데,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25%를 넘어간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 수준의 국가들과 비교해도 자영업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 다른 국가 같으면 이런 사람들은 자본가가 되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최저임금을 제대로 지급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본가가 되어선 안 된다. 복지지출을 늘려 그런 생계형 자영업을 하지 않아도 기본 생활이 유지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자영업이 맡은 분야에 대기업이 진출하는 등 구조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설령 그 분야에 대기업이 진출하더라도 대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걷어 재분배를 통해 격차를 해소하면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선 사회적인 합의를 위한 여러 논의가 필요하다. 시작할 단계가 됐다고 생각한다.”

▲ 지난 한 포럼에서 현 정부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해 ‘학점 보류’라고 평가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일부 언론들이 내 말을 현 정부 비판에 사용하더라.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현 정부의 경제 기조가 기본적으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모두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벗어난 바가 없다. 굳이 구분하자면 친재벌적인 정권과 반재벌적인 정권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정권도 금융시장을 적극적으로 규제하고, 건강한 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투기자본을 내쫓는 등의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FTA(자유무역협정)만 봐도 그렇다.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FTA를 추진하고, FTA 강국이라고 선전하지 않았나.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줄이기 등에 박수를 보내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정책 방향에 변화를 줬으면 한다. 물론 이 방향은 1997년 IMF 이래로 변함없이 유지된 방향이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뜻에서 ‘보류’라고 말했다.”

▲ 미·중 간 무역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는 이유는 국내 문제 때문이다. 자기 문제를 다른 나라에 떠넘긴 것이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유럽 국가에 비해 복지 지출이 낮고 고용안정성도 좋지 못하다. 어느 나라의 선진 산업이 미국에 들어오면 노동자들이 바로 타격을 받는다. 노조 같은 것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노동자들이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다. 실직 후 유럽처럼 재교육을 받는 여건도 아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기업이나 부자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복지 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하고 싶지 않으니 중국을 문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미국의 GDP 대비 무역의존도는 대략 15%다. 그렇게 높지 않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미국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 기계 부품 산업, 바이오 산업 등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문제제기한 바 있다.   
“산업 정책을 말할 때, 피킹더위너(Picking the Winner)를 꼽는다. 소위 말해 국가(정부)가 유망산업을 선정해 전략적·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취했던 경제 발전 방식이다. 그런데 이 방식이 없었으면 지금의 삼성, 현대 또한 없었을 것이다.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기업의 힘만 필요한 게 아니다. 정부가 대규모 지원을 하지 않으면 기업 성장도 불가능하다. 미국은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 것 같나? 미국 경제를 이끄는 실리콘밸리의 주요 기초 기술들은 모두 펜타곤(미 국방성)에서 연구한 결과물들이다. 앞서간 사람이 뒤에 따라오는 사람에게 ‘나처럼 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고 말하는데, 앞서간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해선 앞서간 사람을 추격할 수 없다.”

이번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불온 도서 지정 10년'을 '기념'해 개정·출간됐다. '기념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10년 전 MB정부의 판단은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다. 사진 제공=부키

▲ 위에서 사회적 합의(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모범 사례를 들어줄 수 있는가.
“내가 줄곧 주장한 것이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되, 그 대가가 필요하다면 재벌구조를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이 주장은 사실 스웨덴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재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스웨덴은 가장 큰 재벌(발렌베리 그룹)을 가진 나라다. 5대째 세습 중이고, 스웨덴 주식 시장 시가총액의 약 40%를 이 그룹이 점유한다. 근데 노조 조직률은 약 85%에 이른다. 하지만 스웨덴도 처음부터 이런 국가가 아니었다. 1920년대만 하더라도 노사관계가 최악인 국가였다. 노동자 1인당 파업 건수가 1위였던 적도 있다. 물론 스웨덴을 무조건 따라 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스웨덴을 보고 유연하게 생각하자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도 협상(타협)하는 시대다. 정부와 재벌이 타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또한 재벌이 노조와 타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 국제 관계로 우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나.
“국제화·세계화를 내가 오랫동안 비판했지만, 무분별한 국제화·세계화를 비판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로 우리나라는 더 국제화를 해야 한다. 선진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더욱 철저하게 배워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보다 사정이 어려운 나라의 발전을 위해 도움을 줘야 한다. 지금 당장 손해 보는 행동인 것처럼 보여도, 기술 전수 등의 도움을 줘야 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노무현 정부부터 시작해, 국제무대에서의 역할을 FTA와 같은 신자유주의적으로만 접근해 찾았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의 비교 대상이었던 대만, 홍콩, 싱가포르보다 한국은 정치적으로도 국제적 위상이 있는 나라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우리의 유일한 위치를 잘 활용해야 한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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