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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시험문제요? ‘옛다 정답!’ 자세로 풀어주세요”
“말도 안 되는 시험문제요? ‘옛다 정답!’ 자세로 풀어주세요”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7.26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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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 『역사의 역사』 출간 기념 강연회 盛了

출간되자마자 인터파크,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등 4대 인터넷 서점 인문/교양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석권한 책 『역사의 역사』(돌베개, 2018.07)의 저자 유시민 작가의 강연회가 지난 7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렸다. 「알쓸신잡」, 「썰전」 등의 인기 TV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면서 인터뷰, 강연 요청을 일절 거부해왔던 유시민 작가였기에, 오랜만에 열리는 출간 강연회가 열린 컨벤션홀은 계단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독자들로 가득했다. 환호 속에 등장한 유시민 작가는 큰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오랫동안 읽힐 책을 쓰려고 했는데 너무 많이 사랑해주셔서 시시한 책 한 권 내고 민망한 상황”이라고 입을 뗐다. 이날 강연에서 유시민 작가는 어떻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부터 역사 활용법, 정보 수집 노하우까지 1시간 30분 동안 예의 그 달변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유시민 작가에게 던져진 질문과 답변 중에서 함께 나눠볼만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글·사진=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 고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수시특집' <대나무> 34호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 7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역사의 역사』 출간기념회에서 유시민 작가가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윤상민 기자
지난 7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역사의 역사』 출간기념회에서 유시민 작가가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윤상민 기자

▲『역사의 역사』에는 헤로도토스, 사마천, 랑케 등 희대의 역사가들이 등장하는데, 책을 쓰면서 가장 감정이입한 역사가는 누구이며, 역사책을 쓴다면 누구랑 비슷하게 쓸 것 같으신가요?
"역사를 그 정도 철학적 깊이가 있는 문장으로 한 사람이 오랜 기간 동안 쓴다는 것은, 저로서는 너무나도 대단한 작업이기 때문에 감정이입하기가 어려워요. 그저 모든 분들이 대개 훌륭한 분들이어서 조금씩 감정이입을 해 본 거죠. 그래도 역사책을 쓴다면… 문장이나, 논리 전개를 봤을 때, 새뮤엘 헌팅턴이 좋았어요. 비록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논증하는 방식이나 시각이 괜찮았거든요. 제가 공부를 제대로 깊이 있게 했다면,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스타일로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많은 지식인들이 책을 쓰면서 자기 복제를 합니다. 그런데 유시민 작가는 계속 공부를 하면서 써요. 전문분야가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끊임없이 공부할 수 있나요?
"평생 우려먹을 수 있는 전공이 없어서 그래요(웃음). 사실 제 책에도 중복이 있어요. 「사기」 챕터는 『청춘의 독서』에 나오는 사마천 이야기랑 겹치고요, 마르크스 부분도 좀 중복되죠. 완전히 새로운 걸 하진 못해요. 일부는 과거 책들과 부분적으로 겹칠 수밖에 없기에 저의 모든 책을 읽었다는 독자를 만나면 좀 무섭기도 해요. 사실 제 전공이 경제학인데 그걸로 살지 않았기에 깊이 있는 내용을 쓰진 못하고요. 궁금한 게 생기면 제가 공부를 먼저 하고, 그 공부한 걸 다른 사람과 나누면 즐거울 것 같다는 판단으로 책을 써요.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지 못한 자의 슬픔도 있지만, 전 지식유통산업에서도 최종소비자인 독자와 거래하는 지식소매상이거든요. 물론 도매상 분들이 보기엔 콘텐츠가 약하다거나, 진짜 지식 있는 분이 보기엔 껍데기만 있다고 보기도 하시죠."

▲이 책을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먼지가 낀 지구본을 꺼내보게 됩니다. 수많은 역사가 중에 14명의 역사가를 선택하신 기준이 뭐였나요?
"일단 유명한 역사책 리스트를 뽑았어요. 유명하다는 건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거니까요. 출판사측에서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좋은 책이긴 하지만 독자가 읽기에 완독률이 떨어진다고 조언해주더라고요. 사실 저도 대학생이 되자마자 그 책을 읽었는데 너무 어려웠어요. 영양가가 너무 많은 책은 소화하는 데도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소화력이 부족한 사람은 먹다 말거나 먹긴 먹었는데 별 영양가도 못 얻는 거죠. 또 역사전공자도 아닌 사람이 역사이론서를 쓰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요. 고민하다가 내 주장 말고 역사를 쓴 사람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쓰기 시작했어요. 또 하나의 기준은 ‘재미’에요. 전 서사 중심으로 책을 보는데요, 어떤 독자가 에드워드 기븐의 『로마제국흥망사』는 왜 없냐고 묻더라고요.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유명한 책을 보고, 느낌이 오는 책을 고른 후, 그 다음에 이 책이 역사학 발전 과정에 영향이 많았던가를 살피고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14명의 역사가 중에 마르크스는 역사학자가 아니잖아요?
"마르크스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책을 쓰지도 않았는데요. 『공산당선언』에 나온 몇 문장이 우리가 역사를 보는 눈을 혁신하게 해 줬다는 의미가 있어서 선택했어요. 마르크스의 말이 진리라는 말이 아니고요. 그전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관점에서 역사를 본 거고, 실제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만들어지고 상당기간 동안 이 관점에 맞춰서 서술하려고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력했죠. 역사철학이 이론적으로 완전하지는 않다고 해도, 다른 철학들처럼 진리의 이면을 포착해냈거든요.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요."

▲고등학생들이 역사는 어렵다고들 합니다. 수학은 법칙이 있고, 영어, 국어는 문법이라도 있는데 역사는 무조건 외우는 과목이라는 거죠.
"저도 아들이 고3입니다. 역사 공부 왜 해야 하냐는 질문을 설마 안 받아봤겠어요? 저는 아들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옛다. 정답!’ 정신으로 풀라고요. 그러니까 시험문제에 나오는 건데 왜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학생들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게 우리 역사교과서도 그렇고. 역사교육도 마찬가지로 맥락 없는 정보를 너무 많이 가르쳐요. 공무원 시험에서 언젠가 중세 시기 도서를 출간 순서대로 배열하는 문제가 나왔더라고요. 근데 연도 차이가 5년 정도밖에 안 나요. 말이 돼요? 제가 봤던 서울대 입학시험에는 이광수의 『무정』이 몇 년도에 출간됐는지 나왔다니까요.(한숨) 제도의 문제가 아니고, 내용, 평가 방식의 문제인데, 공정성에 대한 집착 때문에 바뀌지 않아요. 그래서 아들이 질문하면 “어, 사실 맥락은 이건데, 이렇게 답 쓰면 틀릴 거야”하면 아들도 웃어요. 그럼 “어른들도 이런 이상한 문제 내느라 고생이 많으니, ‘옛다. 정답! 내가 해 줄게’ 이런 자세로 그냥 풀어줘”라고 말해줬죠. 제도의 문제가 아니고, 내용, 평가 방식의 문제인데, 공정성에 대한 집착 때문에 바뀌지 않거든요."

『역사의 역사』 책 사진.  사진출처=돌베개출판사
『역사의 역사』 책 사진. 사진출처=돌베개출판사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보편적 역사를 가르칠 때의 문제입니다. 역사교사가 역사의 전달자로 가져야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이건 역사 교과서의 문제죠. 정부에서는 ‘교과서 집필기준’을 만들어줘요. 집필기준은 다수의 국민들이 큰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고, 학계에서 다수 학설에 속하는, 대개 그런 거죠. 자유로운 상상력이나 기발한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정부에서는 올바른 역사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회 다수가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내용을 교과서에 싣는 거예요. 역사 교과서에 많은 걸 바라면 안 되는 이유죠. 실제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다른 책을 읽어야 해요. 학생들이 귀한 시간을 들여 역사를 배우는데, 국가에서 가르치라고 하는 것만 가르치면 성실한 선생은 될 수 있겠지만 훌륭한 선생은 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지적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선생이 좋은 선생 아닌가요? 아이들은 다 알아요. 재밌는 이야긴지, 말도 안 되는 소린지요. 그런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시각을 전달해주고, 다른 상상을 해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더 나아가 좋은 책도 소개해줄 수 있다면 좋은 역사전달자라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현대인들이 동영상이나 SNS로 일상을 기록합니다. 역사를 전공한 분들은 서민들의 일상과는 동떨어져서 역사를 기술하는데, 미래에 현대를 역사로 남길 역사가는 어떤 사람일까요?
"도전적인 과제입니다. 저도 한 번 고민해본 적이 있어요. 지금은 21세기 벽두고, 앞으로 과학혁명은 더 진전이 될 거예요. 지구촌은 과거보다 훨씬 작아질 테고, 디지털 정보가 중심이 될 거라고 봐요. 정보를 기록하는 양적인 한계로 문자만으로 기록하는 건 불가능한 단계죠. 물론 여전히 텍스트로서의 역사는 존재하겠지만, 사료의 형태가 문헌정보에 국한되지는 않을 거예요. 한 편의 영상, 혹은 다양한 형태의 역사를 서술한다는 표현도, 부족해지는, 뭐랄까요, 역사를 연출 혹은 제작한다는 것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역사기록을 만들거나 하는 사람이 꼭 역사학 전공자이거나 기록을 담당하는 직종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방송PD가 역사가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물론 문자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오감을 동원해 상상을 자극하는 것이 텍스트 역사니까요."

▲앞으로 어떤 책을 쓸 계획이신가요?
사실 향후 10년 간 쓸 책이 다 기획돼 있어요.(박수) 새로운 책 기획은 안 하고 있거든요. 전 여행작가가 될 거예요. 10년간 여행 이야기를 쓸 거예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라오스 여행하고 쓴 글 있는데요, 그거보다는 잘 쓸 자신 있거든요. 하루키는 소설을 잘 쓰지 여행기는 별로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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