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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타계
최인훈 타계
  • 양도웅
  • 승인 2018.07.23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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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여러 산문을 묶은 『바다의 편지-인류 문명에 대한 사색』(삼인출판사, 2012)을 펼치면, 사색 중인 그의 옆모습을 볼 수 있다.
최인훈의 여러 산문을 묶은 『바다의 편지-인류 문명에 대한 사색』(삼인출판사, 2012)을 펼치면, 사색 중인 그의 옆모습을 볼 수 있다.

“중립국.” 소설 『광장』(1960)의 주인공 이명준이 택한 건 중립국이었다. 남한도, 북한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탄 타고르호의 종착지, 인도도 아니었다. 그는 타고르호가 마카오에 도착할 무렵, 배에서 자취를 감췄다. “아마, 마카오에서, 다른 데로 가버린 모양이다.” 『광장』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나마 이명준의 행방을 가늠(상상)해볼 수 있는 단서는 『바다의 편지』(2003)에서 찾을 수 있다. “어머니, 오래지 않아 이렇게 부를 수도 생각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요즈음 자주 보는 물고기 떼가 여기저기서 나를 건드리면서 지나간다. 물고기 떼의 한 부분은 내 눈 속을 빠져나간다.” 『바다의 편지』 주인공의 첫 독백이다. 그는 이명준과 달리 잠수정을 타고 최전방 바다를 정찰하는 군인이었으나, 이명준처럼 남북 분단의 희생양이었다. 

희망을 좌절로 쓰다

최인훈은 생애 내내 여러 작품에서 분단에 따른 억압과 고통에 ‘좌절’하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에 쓴 「『광장』의 이명준, 좌절과 고뇌의 회고」라는 산문에서 “이 소설의 발표 당시에 필자는 적어도 소설 속의 분위기보다는 훨씬 현실적으로 낙관적인 전망 속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소설 주인공의 좌절이 곧 작가 자신의 좌절도, 남과 북의 좌절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위 문장에 이어 “적어도 필자 자신의 그때까지의 정치적 전망을 극복하고 청산하려는 자세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적었다. 희망을 좌절로 쓴 셈이다. 

이런 그가 오늘(23일) 오전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84세. 『바다의 편지』 한 구절을 옮기며 고인이 평안한 곳으로 가셨길 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해나가겠지요. 언젠가는 이 바다는 내가 수행했던 임무를 위한 배들이 숨어 다니는 바다가 아니고 햇빛 아래에서 흰 돛을 달고 달리는 아름다운 돛배들의 놀이마당이 되겠지요.”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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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영안실 1호실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01)  
발인: 7월 25일 수요일 아침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영결식: 7월 25일 수요일 아침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내 강당 (文學人葬)
장지: 자하연 일산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 456, 전화 031-977-8351)
유족: 부인 원영희, 아들 윤구, 딸 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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