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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에서 본 세계적 사건들, 서구중심주의 우려
지중해에서 본 세계적 사건들, 서구중심주의 우려
  • 박상진 부산외국어대
  • 승인 2003.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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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참관기: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6차 지중해학 국제학술대회

박상진/부산외국어대, 이태리어과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 6차 지중해학 국제학술대회는 작금의 세계화 시대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기회였다. 지중해라는 시공간에 관련해  나올 수 있는 논의들을 모두 한 자리에 묶고, 또 그 의미를 극대화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지중해학'의 가능성을 점점 더 구체화시켜나가는 대회였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중부 유럽과 지중해의 교류를 점검하는 것이었지만, 그 외에 일반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주제들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나 클레와 모네 같은 화가들의 지중해 경험, 라틴아메리카의 오리엔탈리즘과 지중해, 오스만제국의 역사, 지중해의 시공을 가로지르며 일어난 예술사의 여러 현상들, 종교의 교류와 충돌,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이루어진 문명교류의 현장들, 세계화에 대처하는 이슬람권의 자기비판과 극복의 노력, 유럽문학과 영화에서 나타난 로마의 재현의 비교고찰, 지중해 각 지역의 역사적 사회적 문제들의 검토, 연극과 음악, 그리고 여행기 등을 통해본 지중해네트워크의 작동, 지중해 소지역들의 상호 비교를 통해본 국민국가의 정체성 문제, 현재 지중해에서 세계적 차원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 러시아의 지중해적 성격 등 대단히 다양한 주제들이 이번 대회를 채우고 있었다. 다양하긴 하지만, 그러나 그들을 함께 아우르는, 그들을 가로지르는 일정한 맥은 당연히 지중해라는 실제 시공이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지중해에서, 혹은 지중해를 걸치면서, 인류의 문명과 역사에서 일어났고 고려할 수 있는 것들을 이리저리 잇고 짜고 맞추면서 논의해나가는 박진감 넘치는 장이었다.

은유/상징/과거로 남은 시공간

아쉬웠던 점은 2백명이 넘는 발표자 중 동아시아에서 온 사람은 단 하나뿐이었다는 점이었다. 아직 지중해학이 본격 궤도에 오르지 않은 탓이 클 것이다. 그것은 역으로 동아시아의 역할이 아직 빠져있다는 말이고, 이는 동아시아 학자들의 참여의 길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실크로드는 로마와 한반도를 이어줬고, 지리적으로는 지구상에 지중해와 카리브해와 함께 황해라는 '지중해'가 존재하는 것을 생각해볼 때 동아시아가 지중해에 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지중해'라는 개념은 무엇보다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볼 때, 동아시아적 관점은 거기에 필수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야 할 터이다. 지중해 문제는 세계화의 시대에서 어느 한 지역의 문제가 고립된 것이 아니듯이,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중해의 모델은 지중해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연구하고 세워나가는 사람들이 속한 각 지역의 문제들을 논의하는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세계화에 대한 일정한 견제와 비판까지 가능하게 한다. 그러한 지역 동질성들의 확인과 그들간의 교류의 연구가 소위 지역학의 원래적 목적이라고 보면, 지중해학은 지역학의 정체성을 제고하고 수립하는 데에도 기여를 하는 셈이다.

이렇게 가능성이 열린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대부분의 논문들은 아카데미즘에 젖어있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지중해는 여전히 하나의 은유이고 상징이며 과거였다. 그에 비해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지금 극명한 실세로 떠오르고 있고 미국의 패권주의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우리의 현실을 서구문명에 의한 세계화의 각축장으로 만들고 있다. 지중해학이 아카데미즘으로 흐를 때, 지중해는 이러한 강력한 서구중심주의에 휩쓸려 그 고유의 대항총체성의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반도가 그러하듯이, 지중해도 세계화의 모순이 집결된 시공이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세계화의 시대에서 함께 고려해야 할 우리의 시공인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나의 논문이 일정한 관심을 모은 것은 이와 같은 새로운 맥락을 적용한 지중해학의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구멍난 근대성' 개념과 대항 총체성

이번 학술대회에서 나는 지중해학의 방향을 조정해보려는 목표를 가졌다. 그것은 이른바 '지중해적 근대성'을 모색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지중해적 근대성'에 대한 논의는 전통적으로 서구 중심으로 논의되고 발전돼온 근대성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근대성으로 지중해를 바라봐야 근대지중해의 진정한 면모를 알 수 있고 또 세계화의 시대에서 지중해가 지니는 비판적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내용이다. 거기에 이어 지중해학은 바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서 하나의 의미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중해적 근대성'이란 서구의 전통적인 근대성과 완전히 다르지는 않으면서 일정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개념의 근대성으로, 근대 이래의 지중해를 구성하고 받쳐온 이른바 '구멍난 근대성porous modernity'이라는 나의 가설적 개념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서구의 전통적 근대성과 아직도 서구중심주의에 사로잡혀있는 탈근대성 논의로 분분한 우리의 현실에 또 다른 이정표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것이 지중해학의 또 다른 효과가 아니겠는가. 이는 또한 지중해학을 우리의 학문과 지식세계에서 개척해야 할 새로운 영역으로 삼아야 할 필요를 더욱 확신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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