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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적 마인드와 올바른 시민의식
제국적 마인드와 올바른 시민의식
  • 이강재 서평위원/서울대·중문학
  • 승인 2018.07.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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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인류 문명의 초창기에 제국의 흥성은 국가와 도시의 발전과 함께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통합과 문명화의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제국의 형성과 발전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생산력의 한계에 봉착했을 때 가게 되는 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제국은 타국에 대한 경제적인 침략의 방향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 제국에게는 경제적 번영의 길을 제공하지만 침략당한 국가에게는 경제적 빈곤과 비민주적인 상황을 만나게 된다. 이 때문에 열강의 각축 속에서 희생당하고 결국 일본의 침략에 의해 국권을 침탈당한 아픈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제국’이나 ‘제국주의’란 말은 부정적 인식이 앞서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최근 제국에 대한 논의가 자주 등장하고 또 이 논의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도 보인다. 이 논의는 현재 몇몇 강대국과 그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위해 여전히 제국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달 25일자 「책을 말하다」 코너에 소개된 『제국, 문명의 거울』(김능우 외 지음, 서울대출판문화원, 2018. 06)은 이 예에 속한다. 「책을 말하다」에서 “제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을 때에 제국을 상대할 수 있다”라고 박용진이 쓴 것처럼, 이 책에서 제국을 다룬 것은 현재 진행형인 제국들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문명을 만들었던 제국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책이 『문명 안으로: 문명 개념의 형성과 한자문화권의 번역 과정』(한길사, 2011), 『문명 밖으로: 주류 문명에 대한 저항 또는 거부』(한길사, 2011) 및 『문명의 교류와 충돌: 문명사의 열여섯 장면』(한길사, 2013)이라는 연이어 출간된 세 권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기획 의도는 ‘제국’보다는 ‘문명’을 논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제국에 대한 논의는 때로 현대의 특정한 나라가 더 발전해 미래 사회에서 제국이 되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도 있다. 2006년 중국의 국영 TV방송국인 <CCTV>에서 방영된 『大國?起』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아마도 이 예에 속할 것이다. 「대국이 일어서다」 혹은 「대국의 흥성」이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는 제목을 가진 이 프로그램은, 스페인에서 미국까지의 서구 8개국과 일본을 포함한 모두 9개 나라의 발전과정을 세계적 대국의 흥망성쇠라는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와 현재 세계적으로 발전한 나라의 성장과정을 잘 다루고 있다는 장점으로 인하여 국내 방송사에서도 번역을 통해 방영한 바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제목에 ‘대국’이라는 말을 썼지만 내면에는 ‘제국’의 뜻을 갖고 있으며 결국 중국이 세계의 제국으로 가는 길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것은 또한 문명의 형성시기의 고대 로마제국이나 중국제국 등을 다루지 않았고, 상업과 무역의 발달이 가져온 세계적인 힘의 변화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그런 판단을 하기에 충분한 면이 있다.

역사적으로 제국의 형성에는 문명사적인 측면에서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다른 의미로 제국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문명사회에 대한 추구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경기 침체는, 이미 자본주의 국가들 전체가 대안처럼 행해온 양적완화로는 해결할 수 없는 큰 한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처럼 자국 중심적인 방향으로의 급격한 회귀현상이 나타나면서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한 현대의 문명사회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시민사회의 자각과 이를 통한 인류공동번영의 길에 대한 모색은 매우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나는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선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사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적이 없다는 내면의식을 넘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세계시민사회를 이끌어가겠다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해 우리나라 교육의 목표에 대한 재고를 필요로 한다. 과거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고 이에 따라 국가의 산업화라는 목표로 한 인재양성을 가장 중시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인류의 공동번영을 목표로 하면서도 그러한 공동번영을 주도하겠다는 발전의 목표가 추가되어야 한다. 이때 우리에게 일종의 제국적 마인드가 필요할 수 있다. 이것이 세부적인 사항에 있어서는 때로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타국에 대한 침탈이 아닌 공동번영을 목표로 한 제국 논리의 개발과 올바른 시민사회의 양성이라는 인문학적인 교육 목표가 여기에 더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제 우리는 보편적인 인류문명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국민교육헌장’이 제시돼야할 시점이라고 할 것이다.

이강재 서평위원/서울대·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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