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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은 완결된 전체가 지닌 근본적인 尊嚴性”
“인격은 완결된 전체가 지닌 근본적인 尊嚴性”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7.02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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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학교_ 5강 박승찬 가톨릭대 교수(철학)의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21세기에 중세를 알아야 하는가?”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에 던진 질문이다. 이에 중세 전문가 5인이 ‘중세학교’를 통해 역사, 문학, 시각예술, 역사, 철학의 측면에서 이 질문에 답한다. ‘중세 학교’는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한 『중세』(시공사 刊) 시리즈 완간을 기념해 마련된 특별 강연으로 지난달 25일에부터 지난 22일까지 5주간 매 금요일 저녁 7시 30분에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진행됐다. 마지막 강의를 맡은 박승찬 가톨릭대 교수(철학과)의 발표문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소개한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중세가 완전히 망각하고 무시했던 고대 그리스 문화를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들이 부활시켰다.”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를 열심히 공부했던 이들은 중세와 르네상스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러한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판단의 숨겨진 전제는 아마도 “중세는 암흑기”라는 표현일 것이다. 이달 완간된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시리즈(I-IV)는 이런 판단이 얼마나 사실과 동떨어진 편견인지 무수한 예들을 통해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에코는 이미 제I권 서문에서 중세에 대한 오해들을 나열하면서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중세는 고전주의 문화를 무시하지 않았다”, “중세는 고대과학을 혐오하지 않았다” 등의 기본적인 명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에코가 내린 단정의 근거는 역사, 철학, 문화, 예술 등 다방면의 예들을 통해서 제시될 수 있다. 

필자는 중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다뤘다. 이 물음이야말로 인간이 제기하는 물음 중에서 가장 절실한 물음이요, 물음 중의 물음이라 불릴 만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이처럼 오래 된 물음이지만 그러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물음이다. 어느 학문 치고 인간과 인간의 필요와 연관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어느 시대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인간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질문은 중세 시대에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필자는 중세가 단순히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제시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단순히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와의 만남을 통해서 얻게 된 통찰을 통해 이를 더욱 심화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중세 시대에 제시된 인간에 대한 이해는 르네상스와 근대를 넘어 서양 사상 안에서 명시화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성찰에 기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필자는 근대 데카르트 이후 제기된 인간에 대한 이원론이 야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주요한 사고틀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렇게 낯설어 보이는 주장을 펼치는 근거는 무엇일까? 

박승찬 가톨릭대 교수(철학과).

초기 그리스 사상에서 나타났던 ‘생명의 원리’로서의 영혼론은 후대에 발전돼 나올 많은 가능성을 그 안에 함축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인간 정신과 의지 등의 역할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함으로써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함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더욱이 데모크리토스에 이르러 영혼의 인식 능력과 관련된 문제조차 단순히 원자들의 기계적인 운동과 변화에 따른 것으로 환원돼 버렸다. 

피타고라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플라톤과 그의 추종자들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관심 때문에 영혼을 강조하고 이로부터 육체를 뚜렷이 구별하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비판한 바와 같이 엄격한 이원론의 입장은 ‘육체와 영혼의 경계선이 어디이며, 어떻게 이들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이들에게서는 근본적인 인간의 통일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라는 두 원리가 함께 협동해서 비로소 인간이라는 단일의 완전 실체를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영혼 그 자체만으로는 아직 인간이 아니고 육체와 함께 할 때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에게 고유한 정신, 즉 지성적 능력을 영혼으로부터 구별했다. 바로 이 지성과 육체의 형상인 영혼의 관계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못함으로써 이후에 많은 혼란이 나타났다. 

또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는 개인 자신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할 줄 몰랐고, 개인의 가치를 본질적으로 계급이나 신분, 부나 종족과 같은 외적인 조건에서 평가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들조차도 노예 제도와 같이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못했다. 

중세 시대에 들어오면서 고대 철학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인간 존재 전체를 포괄할 어떤 이름 즉 ‘인격’(persona)개념이 발견됐다. 본래 라틴어의 ‘페르소나’(persona)의 어원인 희랍어 ‘프로소폰’은 연극 배우가 극 속에서 사용하는 가면이자 그가 담당하는 역할을 뜻하던 하나의 예술 용어이다. 이것은 그리스?로마의 이교문화에서 통상적으로 假裝한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그리스도교가 전파시킨 인류의 근본적 평등성

인류의 단일성, 독특성, 더 나아가 인류 각 개인이 존엄성의 측면에서 근본적인 평등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부터 명확하게 부각됐다. 인격 개념은 본래 그리스도 신앙의 기본 진리인 하느님의 삼위일체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파악하려는 신학적 탐구 활동의 결실이다. 그리스도 신앙가들은 당시까지 철학적으로 중요성을 거의 지니지 않았거나 별다른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던 ‘인격’에 해당되는 말을 활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마침내 인간 존재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새로운 사고 기점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리스도교의 통합적인 인간이해에 따르면 인간은 원천적으로 전적인 단일성을 지닌다. 인격 개념에 대해 최초로 깊이 있게 검토한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격이란 말로 단일 개체를 의미했지만, 아직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인격에 대하여 신학적, 철학적인 의미에서 특히 존재론적 입장에서 정의를 내린 이는 보에티우스다. 그에 의하면 “인격은 이성적 본성의 개별적 실체”(Persona est rationalis naturae individua substantia)이다. 이 정의로부터 우리는 인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단지 개체성?본성?실체 각각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보에티우스는 모든 동물이 갖고 있는 이런 특성(類)에 인간을 구별하는 種差로 인정됐던 이성을 첨가함으로써 정의를 구성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정의를 수정해 “이성적 본성 안에 그 자체로서 자존할 수 있는 존재”(esse per se subsistens in natura intellectuale)라고 인격을 정의했다. subsistens라는 단어의 추가를 통해 인격은 최종적인 자아의 통일성을 자체 안에 소유하는 정신적인 완전 실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렇게 아퀴나스는 보에티우스의 정의를 수용하면서도 다양한 수정 노력을 집대성해 ‘인격’개념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즉 아퀴나스는 ‘이성적 본성’과 이에 따른 ‘자기의식의 중요성’, 윤리적 행위 결정의 ‘자율성’과 ‘책임성’은 물론, ‘개별성’과 ‘자립성’에 바탕을 둔 ‘교환불가능성(유일회성, 대체불가능성)’, ‘관계성’과 신과 인간의 유비적 연결에 기반을 둔 ‘자기 초월성’ 등을 균형적으로 설명했으며, 이들 모든 특성을 포괄하는 ‘완결된 전체’가 지닌 근본적인 ‘존엄성’을 강조했다. 

토마스는 이 작업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관을 계승하여 변형시킴으로써 수행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라는 두 개의 불완전한 실재가 함께 협동해서 비로소 인간이라는 단일의 완전 실체를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영혼 그 자체만으로는 아직 인간이 아니고 육체와 함께 할 때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와 정신을 수용하면서도, 그리스적 이원론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교정함으로써, 인간의 단일성을 강조하는 성서의 관점을 정당화하려 했던 것이다. 그가 다양한 논쟁을 통해 영혼과 육체의 본질적 통일성을 강조했던 것은 이것이야말로 완결된 전체로서의 인격체인 인간을 설명하기 위한 형이상학적인 기초를 제공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통찰을 바탕으로 필자는 고대와 중세에 나타난 다양한 인간 이해 중에서 보에티우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격 개념이야말로 현대인들을 새로운 성찰로 초대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인격개념과 그것이 표현하는 사태는 점차로 서양 문화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관통했고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따라서 이 개념은 근대 휴머니즘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상 전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필자는 중세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안한 영혼과 육체의 합일에 대한 강조는 데카르트 이후 제기된 이원론적인 입장에 대한 현대 철학의 정당한 비판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 기대한다. 더 나아가 유물론적 입장이나 몸만을 강조하면서 나타날 수 일부 현대이론이 부딪치는 문제해결 능력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풍부함을 그 안에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이 과거에 주로 사용됐던 본질적 정의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고, 중세의 인간관을 강조하는 것이 마치 다시 본질주의로 복구하려는 시도로 오인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상이 나오게 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그것이 의도했던 핵심에 대해 철저히 탐구하고 그것을 다시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새롭게 해석한다면 중세 사상의 풍부함은 현대의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새로운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업이 이루어질 때에만 표층적인 문제의 뒷수습만이 아니라 현대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한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육체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이성적 영혼에 의해 통합되는 방향, 더 나아가 인간 영혼이 지닌 초월성을 충족시키는 쪽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때, 참다운 인간 실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존엄성과 신성불가침한 권리를 기초해 줄 중세 인간관의 탐구는 현대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많은 이들에게, 금전과 권력만을 향해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소중한 척도를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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