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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들
화학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7.02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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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동서 문명과 근대’_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의 「화학의 발전과 생활 변화」

네이버문화재단 ‘열린연단_ 문화의 안과 밖’의 다섯 번째 강연 시리즈 ‘동서 문명과 근대’가 매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강연은 동서양 근대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취지에서 기획됐으며 올해 50회 강연이 예정돼 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의 「화학의 발전과 생활 변화」 강연 중 주요대목을 발췌·요약해 소개한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화학물질이 ‘안전한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한 것이다. 모든 화학물질은 인간에게 위험할 수 있다. 인간에게 완벽한 안전이 보장되는 화학물질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지방·단백질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우리의 생존에 꼭 필요하다는 산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중의 산소 농도가 23%를 넘어서면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낸다. 산소의 강한 산화력이 생리작용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안전에 대한 관심과 ‘허용기준’

화학물질의 ‘허용기준’에 대한 오해가 화학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가 정해놓은 ‘허용기준’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허용기준은 누구에게나 안전을 보장해주는 기준이 아니다. 화학물질의 독성에 대한 생리적인 반응은 개인에 따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허용기준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고려한 통계적 안전장치일 뿐이다.

허용기준도 고속도로의 제한속도와 같은 것이다. 허용기준을 넘었다고 당장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허용기준에 미치지 않았다고 건강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허용기준을 넘으면 문제가 되는 것은 건강 때문이 아니라 민주 사회에서 반드시 지키기로 약속한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용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똑같은 화학물질이라도 허용기준은 나라마다 다르다. 나라마다 독성이 달라서가 아니라 허용기준에 경제적 비용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허용기준을 강화하면 사회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런 비용을 부담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국가만 더 엄격한 허용기준을 정할 수 있다. 결국 허용기준은 독성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책무

자연과 생태계는 화학물질의 재활용에 의해 작동한다. 우리도 자연의 재활용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우리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기술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의 이기주의 때문에 자연과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체내의 생리작용을 정교하게 통제하는 단백질과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핵심 구원소인 질소의 순환은 생태계의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다. 화장실의 오물도 생태계의 질소 순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단백질을 통해 흡수한 질소가 소변과 대변의 형태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화장실 오물의 그런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퇴비를 사용하는 농사법을 개발했다. 퇴비 기술을 활용하지 못했던 서양에서는 ‘삼포제’로 문제를 해결했었다.

수세식 화장실은 우리 보건·위생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보건·위생 환경은 물론이고 고층 건물이나 아파트도 황당한 공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평균수명이 80세를 바라보게 된 것도 수세식 화장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수세식 화장실을 통해서 배출되는 배설물은 생태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정화조나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분해된 질소 화합물은 결국 강물을 통해 바다로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자신의 청결과 위생을 위해 사용하는 수세식 화장실이 자연의 질소 순환을 단절시키는 심각한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자연의 순환을 위해 다시 냄새 나고 더러운 재래식 화장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 스스로 자초한 질소의 낭비를 우리 스스로 채워주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서 만든 질소 비료가 그 대안이다. 화학 비료가 무조건 나쁘다는 일부의 주장은 자연의 순환을 무시한 주장이다. 수세식 화장실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양의 화학비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천연물에 대한 과도한 관심

나일론, 레이온, 데도론(폴리에스터)과 같은 합성섬유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쉽게 깨지지 않고 색상이 고운 플라스틱 바가지도 발전의 상징이었다. 불과 40년 전의 이야기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종잡을 수 없는 법이다. 놀라운 특성을 가진 합성물질에 감탄하던 우리가 언젠가부터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이면 모두 인체와 환경에 해로운 것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자연에서 생산되는 천연물질이라면 무엇이나 인체와 환경에 안전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천연물질’과 ‘합성물질’의 구분은 의외로 간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식과 전혀 맞지 않은 경우도 있다. 우리는 나일론과 레이온은 무조건 합성물질이라고 여기고, 綿은 우리에게 좋은 천연물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면은 지극히 인공적인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서 유전자를 변형시킨 종자와 역시 인공적으로 합성한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재배한 것이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천연물질처럼 보이는 면도 사실 오늘날의 농업관행을 고려해보면 지극히 인공적인 제품인 셈이다.

천연물질에 대한 집착은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천연물질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전혀 없던 과거에 우리가 뼈저리게 경험한 역사적 진실이다. 자연산 의약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의학은 소수의 지배 계층의 독점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위험한 질병에 걸리더라도 효과가 의심스러운 민속 처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누구나 병원과 약국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인공적으로 대량 합성한 합성의약품 때문임이 명백한 사실이다.

자연에서 얻는 천연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안전하다는 인식은 자연의 기본적인 생존 법칙을 무시한 것이다. 자연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모두 서로 기본적인 화학물질을 재활용하면서 살아간다. 곰팡이와 식물은 미생물이 분해시켜놓은 화학물질을 영양분으로 이용해서 열매를 맺고, 동물은 그 열매를 먹이로 사용해서 살아간다. 동물은 먹이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하고 남은 것을 배설하고, 그것이 다시 식물이나 곤충의 귀중한 영양분이 되기도 한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생물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존과 후손의 번성을 위해서 살아간다. 자연계의 생물이 인간을 위해서 유용한 물질을 스스로 제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철저하게 잘못된 환상일 뿐이다. 특히 생태계를 구성하는 식물의 생존 전략은 정말 무섭다. 곤충이나 짐승처럼 위험을 피해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식물이 생존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맹독성의 물질을 이용한 ‘화학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식물은 맹독성의 물질을 만들어낸다. 물론 식물도 자신의 후손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거나, 씨앗을 더 멀리 확산시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생물에게 유용할 수도 있는 물질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바로 그런 물질을 찾아내서 식용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재배하는 농작물과 채소와 과일들이 바로 그런 식물들이다. 물론 그런 식물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나 땅에서 자라는 것은 몸에 좋다’는 주장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다.

사회적 책무성

정부·기업·언론의 전문성과 사회적 책무성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올바른 사용법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업은 제품의 개발과 생산 과정에서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고, 실수가 드러날 경우에는 마땅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부의 책임도 무겁다. 기업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소비자의 안전을 소홀히 여기는 일이 없도록 엄격하게 관리를 해야만 한다.

화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 일반인과 똑같은 인간일 수밖에 없는 화학자에게 성직자와 같은 수준의 윤리 의식을 요구할 수는 없다. 더욱이 화학자들은 극도로 단순화된 합리성을 과도하게 추구하기 쉬운 습성을 가지고 있고, 개인적인 유혹을 쉽게 물리치기 어려운 성향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학자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화학 재난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화학자들이 화학물질의 부작용에 대하여 가장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화학

앞으로도 화학은 일상생활과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의 삶과 산업이 모두 물질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화학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화학 기술의 활용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녹색화학(green chemistry)’을 추구해야 한다. 녹색화학은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폐해를 줄이고, 생산·소비·폐기의 효율 극대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녹색화학과 함께 사회적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소비 절약도 필요하다.

합성 공정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부산물이나 폐기물의 양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독성이 강한 중금속이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강한 酸·鹽基의 사용도 줄여야 한다. 독성이 없고, 공기 중에서 안정하고, 간단한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회수할 수 있는 촉매나 생체에서 사용되는 효소의 작용을 모방해 효율이 높은 촉매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불필요한 유도체 생성을 억제하고, 원료에 포함된 원자들이 모두 생산한 합성물질에 포함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산업적 합성에 사용하는 원료도 바꿔야 한다. 현재 산업적 규모의 생산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원료는 석유다. 그러나 석유를 이용해서 합성한 물질은 재활용이 어렵다. 석유와 같은 소모성 자원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대신 사용한 제품을 회수해 재활용할 수 있는 원료들을 활용해야 한다. 바이오매스(biomass)가 중요한 자원이 된다.

합성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觸媒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상온(常溫)에서의 합성을 일반화시켜야 한다. 합성의 온도를 낮추고, 촉매를 사용하면 독성이 강한 불순물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줄어든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溶媒의 사용도 줄여야 한다. 건조 상태의 분말을 직접 합성에 사용하거나 제올라이트 같은 고체 支持體나 이산화탄소와 같은 초임계 유체를 이용한 새로운 합성 기술이 필요하다. 고체 상태에서의 반응을 촉진시키기 위해 마이크로파·초음파·자외선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합성물질의 생산·소비·폐기의 모든 과정에서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독성을 최소화하고, 생산 과정의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생산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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