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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칸트론…“자유는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에 의해 초래되는 것”
가라타니 고진의 칸트론…“자유는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에 의해 초래되는 것”
  • 양도웅
  • 승인 2018.07.0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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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 콜렉션’ 출판 중인 도서출판b의 조영일 주간 인터뷰

지난달 15일,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 21』이 도서출판b에서 조영일·윤인로 번역으로 재출간됐다. 지난 2001년 사회평론에서 송태욱의 번역으로 출간된 바 있는 이 책은, 도서출판b가 지난 2006년에 시작한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의 16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가라타니의 주저 가운데 하나인 『트랜스크리틱-칸트와 마르크스』과는 다른 ‘칸트론’을 읽을 수 있는 『윤리 21』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가라타니는 “내가 칸트에 대해 생각한 것은 소련이 붕괴하고 ‘역사의 종언’이 이야기되던 시기”였다며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것을 쓴 시점에서 나의 칸트론은 현대사상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것을 각오하면서 쓰고 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라타니가 적으로 돌린 현대사상 전체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지난달 18일, 현재 16권이 출간된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가운데 13권을 번역한 조영일 주간을 관악구에 있는 도서출판b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조영일 주간은 지난해 『직업으로서의 문학』을 펴냈고, 가라타니가 그 책의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가라타니 고진의 새로운 칸트론을 읽을 수 있는 『윤리 21』이 재출간됐다. 이 책은 일본에서 벌어진 실제 살인 사건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이 지난 1995년에 '제3회 한일문학심포지엄'에서 행한 강연을 기초로 작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가라타니 고진의 새로운 칸트론을 읽을 수 있는 『윤리 21』이 재출간됐다. 이 책은 일본에서 벌어진 실제 살인 사건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이 지난 1995년에 '제3회 한일문학심포지엄'에서 행한 강연을 기초로 작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Q. 가라타니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비판적으로 지목한 현대사상은 무엇인가?
가라타니는 기존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덕이라는 말은 보통 선악의 문제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공동체의 규범입니다. 그것에 반대하여 선을 쾌락(행복)의 실현으로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오늘날 영미계 윤리학에서는 이것이 지배적입니다. 도덕성이 공동체의 규범에서 유래한다는 생각과 행복주의(공리주의). 칸트는 그 모두를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라타니는 보편적인 도덕성의 문제란 ‘자유인가 아닌가’에 있는 것으로 봤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온전히 ‘자기원인적’인 것, ‘순수하게 자발적’인 것이다. 

Q. 하지만 ‘순수하게 자발적인 것=자유’가 가능한가?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라타니는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에 의해 비로소 ‘자유’라는 것이 초래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즉 명령이나 의무, 혹은 책임에 의해 비로소 ‘자유’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는 원인에 의해 규정되는 세계에서는 초래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은 동시에 타자도 자유로운 주체로 대하라는 것을 포함한다. 이 명령을 철저하게 관철시키면 현재의 국민국가, 자본제 경제는 지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국민국가 체제에선 타국과 타국민을, 자본제 경제에선 노동자를 자유로운 주체로 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라타니의 후기 사상의 핵심 이념, 자본=국민=국가를 넘어서는 ‘세계공화국이’ 나온 것이기도 하다.

Q. ‘옮긴이 후기’에서 『윤리 21』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은 이유로 가라타니의 ‘경어체, 강연문의 형태’를 꼽았다.
이 책은 1995년에 열린 제3회 한일문학심포지엄에서 가라타니가 발표한 「책임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문에 기초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가라타니의 『근대문학의 종언』의 핵심 장도 동명의 강연문인 「근대문학의 종언」이다. 그런데 만약 똑같은 내용을 강연이 아닌 잡지 발표용으로 썼다면 어땠을까? 나는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 본다. 아니, 어쩌면 강연이었기 때문에 이런 텍스트가 성립했다고 말할 수 있다. 

Q. 강연문의 경우 매우 구체적인 독자(청자)를 상정했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글과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일반적인 글의 경우 대개 앞으로 나아가기를 힘쓴다. 거기에 자기비판이나 자기반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이에 반해 강연문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고 뒤(과거)를 돌아본다. 즉 무언가를 진척시키기보다는 지금까지 해온 일을 음미하는 것에 적합한 형태가 강연문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과거를 돌아보며 자기비판 내지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그 시점은 ‘사상적 전회’가 이뤄지는 때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비평의 본질을 이동(전환)으로 보는 가라타니에게 강연문(경어체) 텍스트가 많다는 것은 당연하다(필연성을 갖는다) 하겠다. 

Q.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에서 『윤리 21』의 위치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가라타니의 후기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는 칸트다. 가라타니는 1993년부터 『탐구Ⅲ』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완결한 뒤 제목을 『트랜스크리틱-칸트와 마르크스』로 바꿔 출판했다. 그런데 『탐구Ⅲ』은 출판되지 못했고, 『윤리 21』은 그 사이에 행한 강연을 토대로 작성됐다. 그렇다면 『윤리 21』은 가라타니의 ‘칸트로의 사상적 전회’를 이해하는 입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말할 수 있다. 또한 가라타니 후기 사상에서 중요한 ‘한국’이 짤막하게나마 언급되기 시작한 시점도 『윤리 21』이라고 봤을 때, 더욱 더 그렇다.

조영일 주간은 “근·현대 동아시아 사상가 가운데 가라타니 고진처럼 한국을 사유의 주요 조건으로 상정한 이는 드물다”며 “다케우치 요시미나 『아Q정전』을 쓴 루쉰도 한국을 거의 배제하고 중국과 일본, 동아시아를 사유했다”고 말했다. 
조영일 주간은 “근·현대 동아시아 사상가 가운데 가라타니 고진처럼 한국을 사유의 한 축으로 상정한 이는 드물다”며 “다케우치 요시미나 『아Q정전』을 쓴 루쉰도 한국을 거의 배제하고 중국과 일본, 동아시아를 사유했다”고 말했다. 

 

글·사진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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