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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을 때에 제국을 상대할 수 있다”
“제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을 때에 제국을 상대할 수 있다”
  • 박용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서양중세사
  • 승인 2018.06.2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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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제국, 문명의 거울』 (김능우 외 지음, 서울대출판문화원, 2018)

인간은 혼자 힘으로 살기 어렵다. 인간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태어나서 자신을 둘러싼 여러 층위의 공동체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일찍이 이슬람 학자 이븐 칼둔은 “인간이 집단을 이뤄 사는 것은 필연적이며 이것이 곧 문명이며 도시”라고 했다. 이처럼 도시에서 출발한 인간의 공동체는 점차 다른 도시를 통합해 국가를 이루고, 한 국가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다른 국가를 통합해 제국을 만든다. 이러한 사실은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수메르인들의 도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이러한 도시들 중 아카드인들이 세운 도시가 다른 도시를 정복함으로써 제국을 만들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한편에서는 여전히 도시로 사람들이 집중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제국의 형태를 띤 국가나 세력들이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영향력을 확대해 나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도시, 국가, 제국은 모두 인간이 만든 공동체이며, 이러한 점에서 이 공동체들은 공통점이나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외적인 특징을 관찰하고 형태와 유형에 따라 분류하면, 공통점과 보편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객관적 방법, 혹은 공동체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이러한 공동체를 바라볼 수도 있다. 공동체 내부에 있는 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그것이다. 거칠게 도식적으로 분류하자면, 전자는 보편적, 객관적, 과학적 방법일 것이고 후자는 개별적, 주관적, 인문학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제국, 문명의 거울』은 위에서 말한 두 관점, 즉 공통성과 개별성을 모두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중에서 후자, 즉 인문학적 관점에 좀 더 치중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문명연구사업단에 속한 연구자들이 ‘문명’을 밝혀주는 한 측면으로서의 제국에 대해 연구한 (중간) 결과물이다. 해당 사업단은 문명을 주제로 연구를 지속해오면서 먼저 도시에 관한 여러 사상들의 담론을 편역한 선집을 출판한 바 있다. 이후 해당 연구진은 제국을 연구 주제로 삼았는데, 그것은 도시가 문명을 만드는 초보적 형태라고 한다면, 가장 거대한 형태는 제국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로마가 도시국가로 출발해 지중해 제국을 건설했듯이, 문명에 관한 공동연구 역시 이러한 확대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목에 제국과 문명이 같이 등장하지만 방점은 제국보다는 문명에 찍혀있다. 제목을 굳이 풀어쓰자면 ‘문명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제국’, 혹은 문명을 담는 가장 큰 그릇인 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책은 유형별 분석보다는 인간과 제국, 즉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국이 갖는 공통성을 도외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점을 반영해 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공통성을 추구하며 2부는 개별성을 추구한다. 먼저 1부에서는 동서양과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제국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념을 다룬다. 그렇지만 모든 제국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고대 중국, 그리스, 로마, 그리고 근대 러시아와 유럽을 대상으로 이들 제국의 이념적 기반이 된 담론들을 살펴보고 있다. 2부는 개별 제국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특정 요소에 집중하여 제국이 문명과 인간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지리적으로는 고대 로마 제국, 중세 이슬람 제국, 중세 기독교 제국, 중세 해상 제국 베네치아, 20세기 중국과 영국, 그리고 현대 유럽 등이 대상이다. 주제도 다양하여 건축, 문학, 종교, 상업, 문화적 상징, 표준화, 그리고 좀비 등이다. 모든 주제가 다 흥미롭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건축과 좀비는 제국을 다루는 다른 연구에서는 보기 힘든 주제들이다. 또한 베네치아를 해상제국으로 간주한 것 또한 신선한데, 베네치아의 해상네트워크는 오늘날 국경을 넘나들며 이익을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에도 아쉬움은 있다. 무엇보다 책 한 권에 담을 수 있는 제국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 빠져있는 제국들을 거명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며, 그들을 책 한권에 모두 담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선택의 기준은 있어야 한다. 이 책의 2부는 다양한 제국의 개별 사례를 연구한 것이므로 그 필요가 덜하지만, 1부는 제국을 만드는 이념이라는 공통 주제이므로 해당 제국들이 차지하는 의의를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 1부에는 5편의 글이 있는데, 지리적으로 보면 그 중 하나만 동양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네 편은 모두 서양에 관련된 것이며, 시대적으로도 보더라도 세 편은 고대에 관한 것이고, 근대에 관한 것이 두 편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구성상의 불균형이 가장 큰 약점으로 보인다. 이러한 불균형이 있다면 그 이유를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 즉 해당 제국을 선택한 이유라든가 그 제국이 가지고 있는 대표성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구성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필요는 대개 서문에서 명시하게 마련인데, 이 책에는 그러한 의의가 밝혀져 있지 않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약점이라기보다는 아쉬움인데, 1부와 2부의 내용이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으면 불균형이라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일부에는 그러한 연관성이 있다. 가령 로마 제국의 경우 1부에서는 이념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2부에서는 제국의 이념이 건축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설명돼 있다. 그렇지만 그 이외에 1부와 2부의 연관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특히 중국에 관해서는 1부와 2부에 모두 나오지만 1부와 2부가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약점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제국에 대한 연구에서 새롭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사실 제국이라고 하면 우리는 먼저 19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된 서양의 제국주의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제국주의란 나쁜 것이라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제국주의를 바라보려고 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입장에서만 바라본다면, 그리하여 제국의 작동 방식과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모른다면, 피해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한반도가 두 제국, ‘팍스 아메리카나’와 ‘팍스 시니카’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을 때에 제국을 상대할 수 있다”는 에필로그의 문장이야말로 이 책 『제국, 문명의 거울』의 무게를 실감케 해준다. 물론 이 책은 제국에 대한 연구의 완결판이 아니라 그 출발점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 그 자체에 대한 문명사적, 인문학적 접근은 앞으로 제국 연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연구 방법에 있어서도 단순한 개별 연구의 단순한 종합이 아니라, 지속적인 논의와 토론을 통해 접점을 찾아가는 진정한 공동연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생각된다.

 

박용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서양중세사
서울대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논문으로 「문학의 기억, 역사학의 기억」이, 저서로 『중세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 역서로 『기적을 행하는 왕』 등이 있으며, 서양중세사학회, 프랑스사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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