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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호 새로 나온 책
927호 새로 나온 책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6.25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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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말말

기회의 지리와 지역 불균형

불균등발전과 불평등을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은 아주 다양하다. 그동안 계층, 계급 및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주 일반적이었다. 그동안 지역불균등발전에 대한 입장을 보면 크게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갈려 있고, 지역 발전 내용과 정책에서도 집중과 분산, 광역 단위와 소지역 단위, 내생전략과 외생전략, 폐쇄와 개방, 단절과 네트워크, 상향식과 하향식, 엘리트주의 계획과 시민참여, 중앙과 지방분권 등 이분법적 사고로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 변화는 전통적인 지역발전론과 지역정책 수단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하여 국가의 개입을 통해서 가능한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고자 했던 전통적인 공간적 케인즈주의 지역정책을 파기하고, 신자유주의와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지역정책으로 돌아서게 됐다. 이러한 정책을 지난 20년 이상 시행했지만 이 또한 사회와 지역 전체에 걸쳐 양극화와 불평등만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지역정책에서 신자유주의 국가 개입이 지나친 계층·계급 및 공간 선택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가 철수한 영역은 정작 개입이 필요했던 사회적·지역적 형평성을 위한 영역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지역균형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정권마다 그 열의는 사뭇 다르다. 보수주의 정권이 들어설 때는 지역균형 정책이 명목적 구호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권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자본주의 지역 발전은 본래 불균등과 불평등을 본성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불평등 상태를 전통적인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촌은 물론 도시와 도시, 도시 내부 소지역들 사이의 차이, 미시 정치지리적 입지 갈등, 이해 갈등 주체들 사이의 관계 변화 등 다양한 공간적 규모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지금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던 불균등발전과 불평등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다차원적인 불평등 상황을 일거에 개선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한계를 드러낸 신장주의 도시·지역정책을 벗어나 대안 모델을 모색해야 할 때다. 공평서장 모델과 기회의 지리 확장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공평성, 공유성과 협동성, 민주성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성장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품질 좋은 ‘기회의 지리’를 일종의 공간 하부구조로 구축해야 한다. 공평성장은 비공간적 정책 관점이 아니라 구체적인 생활지역에서 생활기회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의 지리를 확장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김용창 서울대 교수(지리학과),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푸른길, 2018.6)의 「한국의 지역불균등발전과 갈등구조」 중에서
 

새로 나온 책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 | 셰리 터클 지음 |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524쪽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내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다. 의자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의자 두 개는 우정을 위한 것이며, 의자 세걔는 사교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우리는 많은 말을 할 수 있게 됐지만, 대화하지는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책은 단절된 디지털 세상에서는 대화야말로 치유책이라고 굳게 믿는 ‘대화 상인’ 저자는 현대인에게 고독과 자아 성찰을 위한 첫 번째 의자, 가족, 우정, 로맨스를 위한 두 번째 의자, 교육, 일과 직장을 위한 세 번째 의자를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저자는 테크놀로지와 마술 같은 연애를 했던 현대인에게 돌보는 기계를 통해 서로에게 헌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되묻는다. 우리가 테크놀로지에 취약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눌 때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설득한다.   

 

미국,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 로버트 라이시 지음 | 안기순 옮김 | 까치 | 192쪽
『자본주의를 구하라』, 『부유한 노예』,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등의 저서로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주요한 변화를 예리하게 꿰뚫어보는 저자의 새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경제의 고속성장을 주도했던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중산층의 몰락, 빈부격차, 일자리 축소를 살펴보면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미국이 보호 무역주의의 칼을 휘두르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문제의 핵심으로 접근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수를 위한 자본주의, 자유무역, 세금지출, 사회보장제도, 법인세, 노동권, 긴축 재정, 이민 장벽, 학자금 대출, 금융개혁, 최저임금, 공유경제, 인종별·성별 재산 격차, 보편적 기본소득 등 정치경제 개념을 마치 눈앞에서 강의하는 것처럼 간결하고 쉽게, 하지만 통찰력 넘치게 풀어나간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폐단이 부의 불평등한 분배로 대기업, 거대 은행, 부자들을 부상시켰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말하며, 이를 바로잡는 해법의 핵심어로 ‘정의’를 거론한다.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독자에게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해낸다.

 

21세기 기본소득 | 필리프 판 파레이스, 야니크 판데르보흐트 지음 | 홍기빈 옮김 | 흐름출판 | 644쪽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말처럼 기본소득은 필수가 될 것인가?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점점 풍성해지는 가운데 21세기의 기본소득이 실현될 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저작이 출간됐다. 저자는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이 요즘의 것이 아닌 18세기 말 이래로 등장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오늘날의 불평등의 증가, 새로운 자동화의 물결 경제성장에 생태적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더욱 관심을 받게 됐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왜 보편적 기본소득이 이 시대의 위기를 타개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지, 보편적 기본소득을 실시하기 위한 전제조건들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분석한다. 그 결과 이 책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이라는 주제에 믿을 만한 정보 그리고 이해를 돕는 명쾌한 혜안들을 모아놓은 모종의 기록 보관소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해낸다. 

 

일상적 삶의 상징적 생산 | 여건종 지음 | 에피파니 | 503쪽
이 책은 저자가 오랜 기간 동안 품어온 ‘문화’, ‘대중’이라는 화두를 몇가지 주제와 개념, 그리고 실례들로 엮어서 하나의 모습으로 드러낸 결과물이다. 4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의 서론에서는 일상적 삶의 상징적 생산, 상징 생산의 생태적 순환계, 유물론적 미학이라는 세 주제를 본론의 내용과 관련해 기술했다. 이 주제들은 본론 3,4부의 대중 미디어 시장과 리얼리즘, 대중과 문화적 민주화에서의 이론적 논의와 실제 분석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하버마스의 부르주아 공공영역이 개념을 중심으로 살폈다. 저자는 4부의 대중과 문화적 민주화를 들여다보기 위해 시장사호의 등장, 포스트민주주의의 대두, 교환가치의 지배 등 후기 자본주의적 삶의 부정적인 변화들을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박탈됐던 권리를 복원시키려는 유물론적 미학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중국예술철학 | 주지영 지음 | 박성일 옮김 | 동국대학교출판부 | 460쪽
중국 고대의 예술이론에는 옛사람들의 철학적 사고가 포함돼 있고, 천지 만물과 인생에 대한 옛사람들의 체험이 체현돼 있다. 天人合一, 陰陽化生, 五行相成 등은 중국 옛사람들의 시적 철학의 체현이며, 중국예술이론에서 제창하는 言外之意, 畵外之音, 韻外之致는 감상자의 머리에서 만들어진 象外之象이다. 저자는 거의 모든 고전예술의 형식, 예를 들면 음악, 서예, 회화, 시가, 원림을 함께 아우르면서 중국예술의 본질을 심층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한다. 중국인들의 인생철학과 긴밀히 연관되는 인간의 생명의식이라는 점은, 중국인들의 독특한 심미적 취미와 심미적 깨달음으로 연결되기에 이 책은 중국 당대 예술이론의 중요한 원천이자, 당대의 예술 실천의 측면에서도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지아장커, 세계의 그늘을 비추는 거울 | 유세종 지음 | 봄날의박씨 | 279쪽
영화가 처음 공개 상영된 1895년 12월 28일, 프레드릭 제임슨은 “인간의 본성이 1895년 12월 28일경부터 바뀌었는가? 아니면 인간의 현실에서 영화적 차원은 선사 시대의 삶부터 있었으나 어느 정도 고도의 기술 문명에 이르러 비로소 현실화됐던 것일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자기 망막에 비친 물소나 말을 어두운 동굴 벽에 그려 넣은 인류 조상들의 세계 재현은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이었기에 리얼리즘의 기본정신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것의 원시성은 21세기에도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이 책은 국제 무대에서 활동 중인 중국 영화감독 지아장커의 영상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거대 중국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독법의 틀로 영화를 그 통로로 사용함과 동시에 영화 장르와 문화연구의 관계, 영화 이외의 예술장르와 영화의 상보·길항의 관계, 그것들의 융복합 관계를 살핌으로써 위기와 위태함에 몰린 현 중국 사회 개인들의 ‘21세기적 삶’을 조명하고자 하는 시도다. 특히, ‘낡은 이론’인 리얼리즘을 재론함으로써 영화예술의 궁극적 가치인 ‘영상 윤리’가 무엇인지 논한다. 저자는 지아장커가 스스로에게 ‘영화계의 루쉰’이라고 고백하며 이것이 지아장커론의 핵심이자 한계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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