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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 듯 교육 아닌 교육 생존기 
교육인 듯 교육 아닌 교육 생존기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6.18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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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대학 초년생 때 대학신문에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라는 글을 실었다. 문득 돌아보니 40년 전이다. 갓 입학해 학업에 대해 고심하면서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읽고 쓴 잡문을 교양 작문수업 교수께서 신문사에 보낸 것이었다. 대학에서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회의한 탓에 고졸로 배움을 마치려 했으나, 학력 중시 사회를 거스를 자신이 없었기에 집 부근의 등록금 싼 국립대에 입학한 터였다. 

미래를 설계한 꿈은 거센 사회 조류 속 물풀 꼴이었다. 문학과 미술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영문과를 지원했는데, 학교 지인이 의대로 바꿔주겠다고 집에 연락한(이것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위기의 날부터, 데모방지를 위한 휴교사태로 과제물 우편 제출 후 불로소득으로 학점을 받고, 본회퍼와 니부어 식의 지식인 사회참여를 고민하면서 「W. 블레이크의 예언적 시에 대한 해방신학적 고찰」이란 논문으로 졸업하기까지 대학 아닌듯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라는 의문은 훨씬 오래전에 시작됐다. 누구나 거치는 질풍노도의 중학 시절에 지겨운 학교에서 배움과 삶의 이유를 찾다가 퇴학 직전까지 갔다. 책에서 해답을 구하다가 프랑스 혁명사에 빠져서, ‘피의 혁명’을 저지하려고 과격파 언론인 마라를 암살한 샤를로트 꼬르데에 대해 소설을 써나갔다. 그런데 추첨 배정된 신생 중학교는 위상확립을 위해 하필 문교부(현 교육부) 주관 학생 독서장려를 위한 고전읽기 운동에 열성이었다. 매년 경시대회를 위해 상위권 학생들에게 2~3주씩 양호실 합숙훈련을 강제했다. 

‘진리찾기’를 위해 밤새워 읽은 고전들로 감히 지식경연이나 하는 제도를 개탄하며 혁명에 대한 소설을 쓰느라 ‘고전읽기’를 거부하고 도망 다니다가 선생님께 끌려갔다. 합숙생들 앞에서 훈련거부 사유에 대해, ‘제가 학교에 다니는 것은 어떻게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는지 배우기 위해서이지, 명령대로 따르는 로봇이나 기계인간이 되려함이 아니라’고 답했다가 2m 길이 지휘봉으로 오십 대 넘게 두들겨 맞았다. ‘네가 이 나라 문교부 장관이냐, 나한테 너를 어떻게 교육할지 가르치느냐’고 분노하셨다. 학교는 배울 게 없어서 중단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구도를 위해 입산했는데, 일주일 무단결석을 빌미로 퇴학시키겠다는 중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교육의 이름으로 학생을 학교 성과수단으로 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인격체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소신을 갖고 세상을 대하는 시건방진 태도를 자성하는 계기도 됐다. 코르데가 몰랐던 역사적 교훈을 나도 몰랐던 것이었다. 곧 국가와 사회에서 범민중적 자각에 앞서 독재자(체제)를 힘으로 중단시키면, 대중의 환상 때문에 그 독재세력이 가족이나 추종자들의 후계구도로 이어지는 생리를 몰랐던 코르데는 자기 신념 탓에 오히려 암살한 마라를 순교자로 만들고, 조국에 ‘피의 정치’가 연장되는 촉매제 역할을 한 셈이었다. 마찬가지로 새가 노래하기를 기다리기보다, 자기 목적을 위해 새장에 가두고 울도록 강제하는 교육을 거스르려다가 중퇴자나 고졸자가 될 뻔했다. 

덕분에 어쭙잖은 재주와 치기로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는 우는 피했다. 무책임한 젊은 글로 귀한 인생들을 파멸시키는 문학의 위해성을 논한 플라톤과 T.S. 엘리엇에 눈물로 공감하며 절필했다. 창작욕을 주체할 수 없어 대신한 미술도 수학처럼 정석대로 가르친 입시교육 때문인지 내 재능 부족 탓이었는지 포기했다. 결국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꿈꾸지 않았건만, 별다른 재주도 주변머리도 없다 보니 ‘천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교수가 됐다. 

이제는 뻔뻔하게도 ‘진리찾기’ 여정에서 수많은 선진들이 찾아낸 산고의 결과물들에 대한 지식쌓기와 경연을 근간으로 하는 ‘교육인 듯 교육 아닌 교육 같은’ 교육을 하는 주체가 됐다. 40년 전의 나 자신인 학생들 수백 명씩에게 매 학기 말로는 학습자 중심 교육을 운운하며, 실상 예전과 크게 다름없는 교육을 하고 있다. 그때 ‘진리와 정의’를 외치던 상아탑은 이제 급변하는 시대의 황새걸음을 뱁새걸음으로 종종거리며 따라가다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번지르르한 겉칠의 도금탑으로 변신했다. 과연 무엇을 위해 가르치는가?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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