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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로, 김치로, 봄철 입맛 돋우는 풀
나물로, 김치로, 봄철 입맛 돋우는 풀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6.11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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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02. 돌나물

 

돌나물. 사진 출처=두산백과사전
돌나물. 사진 출처=두산백과사전

지금 텃밭밭둑 구석구석에 부들부들한 돌나물이 길길이 자라 호랑이가 새끼를 칠판이다. 초봄에는 파릇한 잎줄기를 일일이 하나하나 골라 땄으나 늦봄이면 떼 지어 무더기로 나는지라 톱칼로 꼴 베듯이 쓱쓱 마구 자른다. 다른 말로 생명력이 하도 강해서 가려 다듬고 남은 허섭스레기를 흩뿌려두거나 통째로 쫑쫑 잘라두기만 해도 온통 돌나물로 뒤덮이게 된다.

사실 도톰한 이파리 하나만해도 멀쩡하게 돌나물 한 포기가 된다. 또 버거울 정도로 거침없이 나대니, 밭둑의 것이 밭두둑고랑으로 슬금슬금, 꾸역꾸역 기어들어 곡식을 괴롭히니 걷어내느라 애를 먹는다. 아무튼 세상에 돌나물보다 모질고 독한 풀은 본 적이 없다.

돌나물(Sedum sarmentosum)은 돌나물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로 한국, 중국이 원산지로 보통은 양지 바른 풀밭이나 바위틈에도 나기에 돌나물(石上菜, stonecrop)라 하는 모양이다. 잎은 전체적으로 긴 타원형 꼴로 줄기에 3개씩 돌려나고, 잎자루가 없으며, 잎 양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통통하고 반들반들한 것이 물기를 많이 품은 다육성이다. 또 잎은 보통 황록색이지만 거름기가 많은 곳에 난 것들은 퍽이나 진한 녹색을 띤다.

줄기는 땅 위를 낮게 기며, 마디마디마다 헛뿌리(虛根)가 난다. 기후는 가리지 않으나 토질은 다소 습한 곳을 좋아하고, 잡초 아니랄까봐 한여름 뜨거운 햇볕이나 서늘한 나무그늘속 등 어디든지 잘 자라 생존력이 세기로 이름났다.
그래서 돌나물이 유럽이나 미국 등지로 퍼지지 않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빈터에다 잔디처럼 심는다고 한다. 노란빛이 도는 녹색융단처럼 공터를 가지런히 짙게 깔고, 돌 틈을 메우며, 번지(bungee)처럼 줄기를 돌 위에서 아래로 구부정하게 뒤룽뒤룽, 주렁주렁 길차게 벋으니 운치가 난다하겠다. 우리가 남의 나라 꽃식물을 좋아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것이겠지만….

꽃줄기는 곧추서고, 높이는 15cm 정도이며, 꽃은 노란색으로 6~8월에 핀다. 중앙에 있는 꽃들이 핀 다음 주변 꽃이 피는 취산꽃차례를 이루고, 수술은 10개, 암술은 5개이다. 5개의 꽃잎은 바소꼴(披針模樣)로 끝이 뾰족하고, 꽃받침보다 길다. 돌나물을 ‘돈나물’이라고도 하는데 오랜 세월 우리고유의 식품재료이면서도 재배채소가 되지 못한 들풀이다. 아마도 일부러 돌보아 키우지 않아도 기세등등하게 무진장으로 떼 지어 깃들 정도로 생활력이 강해 하찮게 여긴 탓이리라. 어쨌거나 돌나물이 일단 포기가 빽빽이 저리잡기 시작하면 종형무진 판을 치는 통에 다른 잡초들은 지레 눌려서 언저리에 얼씬할 엄두를 못 낸다.

6월이 지나면 고온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 잎사귀가 뒤룩뒤룩 세어짐으로 이른 봄에 한 번 잘라 먹으면 꽃피는 시기가 늦어져서 두세 차례 거푸 잘라 먹을 수 있다. 주로 봄철 연한 새싹을 뜯어먹지만 이렇게 자르고 또 잘라주면 잇따라 연한 새순이 연신 미어터지게 나므로 여름철에도 언제나 여린 것을 따 먹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인들이 돌나물이 봄철 입맛을 돋군다하여 즐겨 먹는 편이라 한다. 구질구질하게 별걸 다 먹는다 싶지만 김치를 담가 먹거나 나물로 무쳐 먹는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뜯어 무침, 쌈 등으로도 먹으니 마냥 봄채소의 향미를 즐길 수 있다. 사실 올해도 벌써 여러 번 돌나물물김치를 담아 먹었다. 돌나물 물김치는 국물이 흥건하면서도 맵지 않고, 삼삼하게 담가 먹는 김치로 다른 김치와 달리 젓갈을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한다.

물론 뜯어다 곱게 다듬어 여러 지인들에게도 나눠 주었지.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들어부어 일일이 밑동줄기를 자르고, 센 잎을 떼어 가리면서 집사람과 이런 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한다. 둘이가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이 데면데면 사는 편이라 집사람은 퍼질고 앉아 머리를 맞대고 다듬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그 시간이 제일 좋다한다.

그런데 물김치를 담글 때도 쌀풀이나 밀풀을 써서 넣는 것은 왜일까? 김치를 담거나 고추장을 담글 적에도 풀이나 설탕 등 탄수화물을 섞는다. 이것은 사람 몸에 이로운 유산균이나 효모가 번식하는데 필요한 그들의 먹잇감(培地)이 되는 것이요, 유산균 때문에 김칫국물이 그리 시원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참 슬기롭게도 요구르트 대신 이런 김칫국물 따위의 발효식품에 든 유산균을 먹어왔던 것이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했던가. 

돌나물물김치 말고도 돌나물무침을 해 먹는다고 했다. 싱싱한 돌나물에다 고추장·식초·설탕·다진 마늘·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그 위에다 통깨를 뿌려 먹으니 돌나물무침이다. 또 돌나물로 비빔밥이나 샐러드, 땅콩샐러드를 해서 먹으면 풋풋하고,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도 좋다.

돌나물에는 특히 간염치료에 좋은 성분인 사르멘토신(sarmentosin)과 알칼로이드(alkaloid)물질, 세도헵툴로오스(sedoheptulose)라는 당분도 들었다고 한다. 또 예부터 한방에서는 고열이나 상처의 해독에 썼고, 인후염·간염·소변곤란·화상에는 물론이고 뱀이나 벌레에 물렸을 때 짓찧어서 붙였다 한다. 기실 식물치고 다른 포식동물을 막아내기 위한 독을 가지지 않거나 발암물질이 아닌 것이 없다. 우리가 먹는 식품들은 모두 가장 독이 적은 것을 골라 먹을 따름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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