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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책을 발견하거나 책이 발견되거나
도서관, 책을 발견하거나 책이 발견되거나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8.06.04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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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메시지가 수만 가지의 매체를 타고 우리의 감각기관을 향해 달려오는 시대다. 이러한 메시지를 생산해 내야 하는 홍보담당자의 머릿속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2016년부터 스웨덴에서 시작된 ‘플로깅’(plogging)이 전 세계로 확산 중이라고 한다. 쓰레기를 줍는다는 뜻의 스웨덴어 ‘plocka upp’과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플라스틱을 수거하면서 스쿼트나 조깅을 하는 등, 운동과 환경보호를 함께하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런 방법, 그러니까 도랑치고 가재 잡는 방법은 없을까?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약 6만 종의 신간이 출판됐다(일반도서 기준). 성인 10명 중 4명이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나라에서, 말하자면 관심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 이 책들이 출판됐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출판사 홍보담당자의 시름은 쌓여만 간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을 제아무리 정성들여 만들었다 해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른다면 그 책은 서랍 속에 든 일기장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위치한 ‘별마당 도서관’이 개관 1주년을 맞이했다. 13미터 높이의 서가가 인상적인 850평짜리 이 도서관에는 잡지 600여 종을 포함해 약 7만 권의 도서가 비치돼 있는데, 지난 1년간 방문객이 2천1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SNS에서도 인기 스타다. 1년간 별마당 도서관 해시태그를 단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8만 건에 이른다. 홍보 카피대로 ‘휴식과 만남, 그리고 책을 주제로 소통하는 문화 감성 공간‘이 된 것이다. 

연간 임대료 600억 원이 절대 아깝지 않은 성과다. 플랫폼은 인터넷상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별마당 도서관처럼 오프라인에서도 사람이 모여서 놀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플랫폼이 된다. 도서관에 인접한 커피숍의 매출이 전년에 비해 30%나 늘고 신규 브랜드 입점도 이어지는 등 ‘신세계건설’이 거둔 경제적, 문화적 효과는 상당했을 것이다.

별마당 도서관 열풍이 파장을 일으켰는지, 용산 아이파크몰은 지난달 리뉴얼을 하면서 리빙파크 3층 580평 공간에 영풍문고를 열었다. 총 7만여 권의 도서와 북카페, 원형 극장형 독서 공간으로 조성하여 독서는 물론 다양한 문화 체험과 휴식의 장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한다.

대기업들이 관여하는 이러한 형태의 도서관과 함께 또 하나의 좋은 징조가 있다. 공공도서관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고 특색 있는 도서관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용인시에서는 ‘희망도서바로대출 서비스’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역 상권과 연계한 방식으로 공공도서관 이용자가 도서관에 없는 책을 거주지에서 가까운 동네서점에서 빌려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2년 만에 대출 권수와 이용자가 50배나 늘었고 동네서점의 매출도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휴전선 근처라는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여 평화, 인권, 환경을 주제로 하는 각종 책들을 모아놓은 파주의 ‘평화도서관’, 만화사 100년을 담은 한국만화박물관에 자리한 부천 ‘만화도서관’, 각 지역의 ‘어린이책 전문도서관’ 등 전문도서관들은 다양한 주제로 분화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6월초에 개관하는 ‘파르나스 도서관’(가칭)은 매우 의미가 있다. 인터콘티넨탈호텔로 알려진 ‘파르나스호텔(주)’에서 공간과 서가를 제공하고 한국대학출판협회가 도서를 제공하는, 기업과 출판단체의 협업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이 도서관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및 일본 대학출판부에서 출판한 고급교양서와 학술서적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상설공간이라는 것이다. 한국 협회에서 총 2천500여 권을 기증했는데 여기에는 일본 협회에서 기증한 150여 권도 포함돼 있어 일본의 학술출판의 단면도 볼 수 있게 됐다.

또한 이 도서관은 무인관리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개방형이며, 파르나스호텔 1층 로비 바로 옆이고 지하의 파르나스몰과 연결돼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이러한 장점을 잘 살린다면 연구자나 고급독자, 국제비즈니스맨들이 자주 찾는 매력적인 문화 공간이 될 것이다.

요즘 출판계에서는 ‘책의 발견성’이라는 말이 자주 거론된다. ‘독자가 책을 발견하거나 책이 독자에게 발견되거나’를 아우르는 중의적인 문구이다. 어쨌든 책의 발견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여전히 도서관 활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플로깅’ 같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려면, 나홀로 멀찍이 서있는 죽은 공간이 아니라 발자국 소리가 끊이지 않는 살아있는 도서관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또한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에서도 전국에 산재하는 2만2천 개의 도서관이 잘 운영돼서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최신의 지식과 정보가 다다를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김정규 방송대 출판문화원 팀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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