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9-24 17:29 (금)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과학연구제도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해야"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과학연구제도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해야"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6.04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의 안과 밖 ‘동서 문명과 근대’_ 이상욱 한양대 교수(철학과)의 「근대 과학 사상과 현대 과학 제도를 넘어서」

네이버문화재단 ‘열린연단_ 문화의 안과 밖’의 다섯 번째 강연 시리즈 ‘동서 문명과 근대’가 매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강연은 동서양 근대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취지에서 기획됐으며 올해 50회 강연이 예정돼 있다. 이상욱 한양대 교수(철학과)의 「근대 과학 사상과 현대 과학 제도를 넘어서」 강연 중 주요대목을 발췌·요약해 소개한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이상욱 한양대 교수(철학과).
이상욱 한양대 교수(철학과).

근대 과학 ‘사상’은 경험적 연구의 강조와 분석적 연구 방법론을 그 주요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 더해 수학화된 이론과학 분야에서는 예외 없이 성립하는 법칙지배적 세계관도 상당한 사상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발표자의 입장은 이런 근대 과학 사상의 문제점이 방법론적 환원주의의 장점을 그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확장시켜 존재론적 환원주의까지 확장했다는 데 있다. 인식론적 환원주의는 과학자들의 연구 의욕을 고취하는 차원에서, 철학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어느 정도 그 유용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진정으로 풍부한 다양성을 보여주는 세계를 그 풍부함에 충실하게 연구하려 하지 않고 존재론적으로 이 다양성 배후에는 단순한 자연법칙이 있다고 단정 짓고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태도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특히 이런 태도는 다양한 과학 활동 사이의 위계를 설정하려는 시도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만약 정신없을 정도로 풍부한 현상의 복잡함 배후에 단순한 법칙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런 법칙을 탐구하는 과학은 ‘더 근본적인’ 과학이 된다. 그에 비해 수많은 예외가 있는 경향성이나 상관관계만을 탐구하는 과학은 ‘덜 근본적인’ 과학이 된다. 마치 과학과 공학을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으로 규정하듯 이런 위계적인 과학관은 물리학에서 시작하여 화학과 생물학을 거쳐 사회과학으로 이어지는 ‘근본성’의 희석을 강요한다. 이런 위계 구조는 각 학문 분야서도 다시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가령 물리학 내에서도 입자물리학이 응집물질물리학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어서 덜 근본적인 물리학 이론은 모두 보다 근본적인 물리학 이론으로 ‘환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의 문제점은 당위적으로 바람직한 과학관인지 여부를 떠나 일단 사실적으로 참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위계적 과학 구조가 상정하는 서로 다른 분야 과학 이론 사이의 설명적 환원은 실제로 한 번도 엄밀하게 성취된 적이 없다. 호킹이나 윌슨처럼 이런 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과학자들은 단지 환원적 설명의 ‘스케치’의 대략적인 구도의 시작점 정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들 환원주의적 과학관에 매료된 과학자들의 기대와 달리 실제 과학 연구는 다원주의적 방식으로 수행될 때 가장 성공적이다. 다만 문화적 다원주의와 달리 과학 연구에서의 다원주의는 상호정합성 조건을 존중하는 다원주의이다. 각 과학 분야의 이론은 각자 영역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제시하고 이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과학 지식을 축적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분야에서 수용된 결론들 사이 충돌을 빚을 수 있는데 이 충돌은 인식론적으로 만족스러운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소되어야 한다. 최근 기후과학이라는 융합 학문의 등장으로 대기화학과 고생물학 연구 결과 사이의 불일치가 협동 연구를 통해 해소된 것이 좋은 사례다.

이런 일이 항상 가능하지도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정합성 조건을 지키는 한 다원주의적 과학이 생산적이라는 것은 경험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 발표자의 희망은 이런 정합적이면서 동시에 다원주의적인 과학관이 21세기 과학 ‘사상’으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근대 과학 사상의 한계가 상당 정도 극복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현대 과학 제도화의 한계는 어떨까? 다양한 측면에서 한계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발표자는 과학 연구의 상업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과 기술을 분리하여 이 문제에 대응하려는 전략은 과학 연구와 공학 연구가 현실적으로 간단하게 분리된 섬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응용성도 기대하기 어려운 순수 기초 연구부터 지식적 혁신을 그다지 기대하기 어려운 지극히 응용 연구까지 스펙트럼으로 존재하기에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더 결정적인 것은 현대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배치되는 특허와 상업화의 압력에 끊임없이 시달린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상업화가 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증진시키기에 효과적이라는 논리 하에 추진됐다는 점을 기억할 때 과학 연구의 상업화 자체를 당위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그다지 큰 실효가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과학 연구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결국 과학 연구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과학 연구 자체의 본질적 가치와 그 연구 결과와 (불확실한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 사회적 가치에 근거한다면 미래 과학 연구의 제도화는 이 점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즉, 현재 진행 중인 과학의 상업화가 진정으로 과학 지식의 축적에 효율적인지 하는 부분을 따져보아야 한다. 개인 연구자의 연구 의욕을 고취시키는 데 상업적 이익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수많은 특허권과 연구 결과 비밀 유지 조건이 과학 지식 성장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압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과학 연구 및 과학 지식의 본질적 가치를 고려할 때 과학 연구의 지나친 상업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과학 연구와 사회적 가치

과학 연구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산출하는 사회적 가치의 측면에서 고려하면 어떨까? 이 부분은 논란이 많은 주제여서 간단하게 결론 내기는 쉽지 않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학 연구라는 개념은 매력적이지만 실제로 그 연구가 어떤 방식으로 수행될 때 사회적 가치가 극대화될지에 대해서는 분석 틀과 분석 범위에 따라 수많은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표자는 상당히 논쟁적인, 실현되는 사회적 가치의 ‘총량’보다는 지금까지 현대 과학 연구 제도화 과정에서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대안적 과학 연구 제도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과학 연구 주제 선정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비용만이 아니라 우리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에 근거한 포괄적인 가치, 인문적 가치라 부를 수 있는 가치를 반영하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는 과학자들이 연구 과정에서 인문학자들 말을 들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일반 시민을 포함한, 과학자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지향점과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의 새로운 과학 연구 제도화가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과학자의 연구 결과가 과학 지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관련 주제 전문가들의 동료 평가를 통과해야 하듯이, 과학 연구 주제 설정과 연구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확장된’ 동료 평가를 거치는 방식을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물론 발표자와 같은 인문학자도 이 과정에서 기여할 수 있다면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 과학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든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엄청나게 중요한 분야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