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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날 기억하지 않기 바란다
아무도 날 기억하지 않기 바란다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3.06.04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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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간강사의 '죽음'이 던진 파장

촉망받던 서울대의 한 시간 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관악경찰서는 지난 달 30일 서울 관악구 캠퍼스 내 야산에서 서울대 시간강사 백 아무개씨(34)가 소나무에 목을 매고 숨진 채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백씨가 실종된지 10여일 만의 일이다. 관악경찰서는 백씨의 컴퓨터에서 "가족들과 팀원들에게 끝까지 배신감과 절망감을 안겨준다…아무도 날 기억하지 않기 바란다"라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됨에 따라 백씨의 죽음을 자살로 보고, 수사를 종결지은 상태다.


그러나 시간강사의 경제적 어려움과 학문후속세대의 좌절당한 '학문에의 열정'을 읽을 수 있는 백씨의 유서는 그동안 말만 무성했던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3면>


자신을 '상자속의 사나이'로 표현한 백씨는 유서에서 "경제적으로 가능성이 없는 일만 했다…제일 급한 일은 카드대금을 정리하는 것이고, 월말엔 대출금 이자도 정리해야 한다"라며 시간강사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내와의 사이에 7살바기 딸을 둔 백씨는 지난 2001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에서 시간강사와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강사료 월 40만원과 연구소에서 주는 월 1백50만원의 급여로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간강사의 '생활고'가 학문후속세대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백씨의 죽음을 경제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낮은 강사료 뿐 아니라, 60%에 달하는 교육의 시간강사 의존율, 턱없이 좁은 교수임용 관문, 단기 계약에 그치는 학술지원책,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폐쇄적인 교수 사회 등이 학문후속세대의 원활한 양성을 어렵게 하고, 전문 연구 능력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백씨와 함께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던 한 동료 시간강사는 "물질적인 면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더라도, 독자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조성돼 있었다면, 한 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문에의 열정을 접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뚜렷한 해결책이 있지도 않은 상황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것. 시간 강사 문제는 단순히 강사료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또 김문황 충북대 교수(노어노문학과)는 체홉의 단편소설을 설명하면서 "세상을 거부한, 혹은 세상이 거부한 '상자속의 사나이'와 시간강사로서 막다른 길을 가고 있는 듯한 자신을 동일시시킨 듯 하다"며 학문적 동료였던 한 시간강사의 때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한편, 변상출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일부 언론에서는 백씨의 자살을 개인의 임용좌절과 우울증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은 수년동안의 불평등 고용구조로 인한 희생으로 봐야 한다"라면서 "어느 직종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급여가 10배 이상 차이나는 곳이 없다"라며 시간강사에 대한 시급한 처우 개선책 마련을 주문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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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없는 강사 2003-06-11 22:29:29
그러고 보면 교수가 된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실력이 있어서라기보다 돈이 많은 사람들 같다. 이야기를 말하자면 이렇다:
여기 두 명의 유학생이 있다. A는 돈 많은 부자집 아들이고 B는 가난한 혹은 평범한 아들. A는 유학기간 내내 항상 한국의 문화적 촌스러움, 지적 무뇌증, 정치경제적 모순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지식인의 공정한 자세를 촉구한다. 그러면서 그는 유학생을 매우 "우아하게" 보낸다. 최고급 와인, 위스키에, 분위기 좋은 카페를 잘 꿰고 있고 음악회, 전시회를 가난한 음미대생들 보다도 더 많이 가고 있다. 그는 학위를 B보다 먼저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빨리 받아 귀국해서 시간강사도 많이 안 나간다. 학자는 학문의 길에서 세속의 어려움을 달래야 한다며 시간강사의 처우를 주장하는, 전국적 범위에서 강의를 하며 차안에서 햄머거로 끼니를 때우는 B를 조롱한다. 누가 교수가 될 가능성이 많은가? B는 게속해서 1818하고, 고상한 A는 연구에 매달리는 것에 더하여 가끔 친한 교수님들과 호텔 일식집에서 "쏜다". 매달 이렇게 교수님들에게 대접하는 건 현행법상 뇌물이나 청탁이 되지 않는다. 왜냐면 그 식사자리에서 그들은 우아한 예기만을 할 것이고 식사대접을 받은 교수는 자기는 이 사람으로부터 "대접"을 받앗다고 생각지 않으며 추후에 교수임용과정에서 공정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B는 이 순간 얼굴이 꺼멌게 돼서 서서히 이 한국사회에 대해 의도하지 않은 좌파가 돼고, 만약 그가 학창시절에 조금이라도 경력이 있다면(아주 주금이라도!) 어느덧 교수사회에서, 그리고 대학사회에서 그는 빨치산이 돼가고 있다. 그런데 먼저 교수가 된 A는 이제 매우 진보적인 인사가 돼 가지고 이제는 정치의 꿈을 소중히 키우고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