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01:10 (수)
암호화폐의 미래
암호화폐의 미래
  • 이영환 동국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5.28 11: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로칼럼] 이영환 동국대 명예교수·경제학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비트코인(Bitcoin)을 비롯해 이름도 생소한 여러 가지 암호화폐(cryptocurrency)에 대한 투자 열풍으로 인해 세상이 시끄러웠다. 그러더니 무슨 이유인지 요즘은 잠잠하다. 가상화폐, 암호화폐, 디지털화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돈에 대한 논의는 우선 호칭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새로운 개념의 돈을 두고 여러 가지 명칭이 혼용되고 있지만 필자는 암호화폐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돈은 암호기술(cryptography)을 이용해 인터넷에서 안전한 지불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암호화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비트코인의 출현을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필자는 암호화폐의 등장은 필연적인 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금융위기가 극에 달했던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인이 온라인상에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짧은 논문을 업로드했다. 이 논문에서 나카모토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를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2009년 1월 다른 사람과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안전하게 거래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입증했다. 이후 수많은 암호화폐가 등장해 현재 약 1천500개가량의 암호화폐가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정체는 무엇인가? 화폐라는 이름이 사용되지만 과연 이것이 돈인가?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견해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암호화폐는 실체가 없으면서 극심한 가격 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투기적 자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런 견해를 가진 대표적인 인물로는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워런 버핏을 들 수 있다. 그는 암호화폐는 쥐약보다 더한 독극물이라는 식으로 강하게 비난했다. 반면 암호화폐는 미래의 화폐로 손색이 없다고 확신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들에 의하면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는 화폐로서의 모든 조건을 다 갖췄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부분이 일반인들에게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화폐로서의 조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폐를 정의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보통 화폐의 기능을 중심으로 정의한다. 화폐란 회계의 단위, 교환의 매개 및 가치의 저장 기능을 수행하는 어떤 것이며 이로 인해 일반적인 구매력을 갖는다. 이런 기준에 의해 전통적으로 금은 화폐로서 가장 적합한 금속으로 간주됐던 것이다. 앞에서 거론한 기능 외에도 수량이 한정돼 있으며 휴대하기 간편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금은 고유한 가치, 즉 내재적 가치가 있는 금속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금의 내재적 가치란 무엇을 말하는가? 금은 먹을 수도 없고 의복으로 사용할 수도 없다. 단지 반짝거리는 희소한 금속일 뿐이다. 금의 내재적 가치는 사람들이 그렇게 믿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즉 모든 가치의 원천은 결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있다. 이른바 가치에 대한 믿음(faith)을 모두 공유한다면 그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믿음을 얻는다면 금 외에 다른 것도 화폐로써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인류가 돈을 사용했던 최초의 기록은 5천여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서 발견되지만 오늘날 의미의 돈에 해당하는 최초의 주화는 기원전 7세기경 지금의 터키에 있던 리디아(Lydia) 왕국에서 사용했던 일렉트럼(Electrum)이라는 코인이다. 이후 다양한 코인들이 사용되다가 금본위제도가 채택되면서 오랫동안 금에 기반을 둔 화폐가 사용됐다. 지금은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법정통화(legal tender)가 사용되고 있는데 정부가 보증하는 돈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내재가치를 갖지 않는 돈이다. 따라서 법정화폐도 실체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우리는 돈을 돈답게 유지시켜주는 실체는 금과 같은 귀금속도, 정부도 아니고 사회구성원들의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믿음에 기반을 둔 사회적 합의가 바로 돈의 내재적 가치요 실체인 것이다. 이런 기준에 비춰보면 앞으로 암호화폐가 돈으로 사용돼서는 안 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물론 현재 수많은 암호화폐가 모두 돈으로 사용될 수는 없으며 지금처럼 가격이 급등락하는 한 돈으로 사용될 수 없다. 그렇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의 시대에 적합한 암호화폐의 장점을 감안할 때 미래 어떤 시점에서 각 나라 정부가 암호화폐를 최소한 보조통화로 하는 복수통화제도를 선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더욱이 요즘처럼 어지러울 정도로 기술혁신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영환 동국대 명예교수·경제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