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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사전 온라인 제공 … 스마트러닝, 그리고 AI로 가는 ‘콘텐츠출판’의 대표주자
외국어사전 온라인 제공 … 스마트러닝, 그리고 AI로 가는 ‘콘텐츠출판’의 대표주자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8.05.28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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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의 산실, 대학출판부를 만나다_ 3. 한국외국어대 지식출판콘텐츠원
콘텐츠원을 이끌어나가는 이들. 앞쪽 왼쪽부터 신선호 팀장, 가정준 원장, 백승이 씨. 뒤쪽 왼쪽부터 박현정, 문수진, 정준히, 이리나, 김민수 씨.  사진제공=한국외대 지식출판콘텐츠원
콘텐츠원을 이끌어나가는 이들. 앞쪽 왼쪽부터 신선호 팀장, 가정준 원장, 백승이 씨. 뒤쪽 왼쪽부터 박현정, 문수진, 정준히, 이리나, 김민수 씨. 사진제공=한국외대 지식출판콘텐츠원

어떤 이들에겐 조금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다. 전통적인 ‘대학출판부’라는 이름을 내거는 대신 ‘지식출판콘텐츠원’이라고 명패를 새긴 곳, 한국외국어대 지식출판콘텐츠원(원장 가정준·법학)이다. 1963년 출범해서 여느 대학출판부와 다르지 않은 기능을 수행했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세계를 떠나 또 다른 ‘신세계’를 찾아 나섰다. 2013년 ‘대학출판부’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지식출판원’으로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당시 권원순 출판부장(경제학)의 과감한 방향전환 결정이었다. ‘외국어사전’을 다음, 네이버에 탑재하는 사업이 계기였다. 그러다가 지난 4월 다시 콘텐츠 생산 및 AI개발 사업 도입을 계기로 ‘지식출판콘텐츠원’으로 거듭 진화했다.

분명 ‘출판부’라는 틀에서 바라본다면 한국외국어대 지식출판콘텐츠원(이하 콘텐츠원)은 너무나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한국외국어대의 교육이념 구현을 위해 제반 교육 및 연구에 필요한 도서를 간행하며, 글로벌·디지털시대의 출판문화 재정립’에 있다고 비전을 세웠고, ‘어학, 지역학 등 대학 내 자원을 결합한 양질의 지식콘텐츠를 유통하는 허브 역할’을 미션으로 인식하고 있다. △기획도서 시리즈 및 어학 학습 애플리케이션 개발 △대학교 스마트 러닝의 선제적 전파 △다국어사전 고도화 및 서비스 다각화 △정부 및 기업 수요에 최적화된 콘텐츠 개발 등을 추진전략으로 출판문화 부문에 깊이 진입해있다. 특히 콘텐츠원이 ‘스마트 러닝’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대목은 눈여겨봐야 한다. 이들의 핵심 전략이 교육-지식콘텐츠의 빅데이터화와 연결돼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수익원, 종이책에서 지식재산권으로

지난해 수익구조를 분석해보면 이들이 전통적인 종이책과 미래적인 지식콘텐츠 위에 견고하게 서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기준 총 100여종(신간 54종, 구간 46종) 7만부를 출판했다. 종이책 수익은 전체대비 58%, 지식재산권 31% 구조인데, 신선호 팀장은 올해 종이책 35%, 지식재산권 48%로 역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지식재산권은 콘텐츠원이 개발, 제작한 29종의 외국어사전 등 각종 디지털지식콘텐츠에서 발생한다. 이 부분이 여느 출판부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한국외국어대 사업지원처 소속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하는 콘텐츠원의 전체 식구는 규모에 비해 단촐하다. 신선호 팀장을 비롯 박현정(종이책 담당), 정준희(사전 DB 담당), 이리나(전자책 담당), 백승이(마케팅 및 캐릭터 담당), 김민수(물류 및 마케팅), 문수진(회계 재무 담당) 등이다. ‘대학발전기금’을 담당하던 신선호 팀장이 7년째 콘텐츠원 실무를 맡고 있고, 그 외 직원들은 작년, 올해 입사했으니, 조직 구성은 무척 젊은 편이다. 출판 주력 분야는 ‘어학’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외국어사전과 외국어학습교재 등이다.

사실 지식출판콘텐츠원은 2012년부터 대학출판의 한계와 위기를 체감하면서 어떤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때 위기 타개의 구심 역할을 한 두 사람이 있었다. 신선호 팀장은 콘텐츠원의 밑거름이 된 이들 두 사람에게 공을 돌린다. 권원순 현 사업지원처장과 탁경구 대학원 사무1팀장이다. 2012년부터 5년간 출판부장으로 활동했던 권원순 처장은 당시 박철 총장을 쫓아다니며 “출판 부문을 디지털라이징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10개월에 걸쳐 총장을 설득한 끝에 2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지식출판원 발전 5개년 계획’을 가동했다. 권원순 부장과 지식출판원은 이를 정확히 4년 2개월 만에 마무리했다. ‘출판부’에서 ‘지식출판원’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었지만, 그 안의 내용은 획기적인 것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한국외국어대가 자랑하는 ‘외국어사전’의 디지털라이징이 놓여 있었다. 외국어사전은 탁경구 전임 팀장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교수신문>이 창간 20주년 기획으로 마련한 ‘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에서 한국외국어대가 내놓은 외국어사전 29종이 수상작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탁경구 팀장의 기여다.

책을 만든다고 다 잘 팔릴 수는 없다. 판로가 중요하고, 또 그런 역할을 누군가 나서서 몸으로 때워야 한다. 외국어사전 29종이 그랬다. 신 팀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저도 외판원처럼 매일 나갔습니다. 사전 콘텐츠 팔려고 말이죠. 정말 여러 곳을 뛰었습니다. 그래서 ‘Daum’도 만나게 된 거죠. 그렇게 안 만났더라면……. 그때까지 지식출판원은 교내 구성원들에게 한 번도 눈길을 못 받고 있었는데, 29억 원(인세 제외하면 25억)을 벌어왔더니 교수님들이 모두 놀라시더라고요. 지금 Daum과 네이버에 보면, 저희가 제작한 외국어사전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콘텐츠원이 ‘출판’에서 멀어져가는 것은 아니다. 올해 초에 내놓은 『자바 우체부길』(고영훈 지음)은 콘텐츠원이 ‘세계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하나로 출판한 책이다. 출판계 반응도 좋다. ‘고영훈의 스토리텔링 인도네시아 문화유산답사기 001’이란 작은 타이틀이 눈에 띈다. 신 팀장은 “이런저런 문화유산 답사기는 제법 있지만, 세계문화유산을 쉽게 안내해주는 책은 드뭅니다. 2012년에 이런 기획이 있다면 어떨까 해서 100권을 목표로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세계 각 지역 문화유산을 좁고 깊은 콘텐츠로 다가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외국어대’의 대학 특성을 오롯하게 살린 기획인 셈이다.

인문 교양 교육과 연계된 고전시리즈의 재발견

고전시리즈의 재탐구 작업도 눈여겨볼만하다. 이미 유수의 출판사들이 세계문학전집류를 선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전시리즈’에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번역 작업은 문화의 두께를 확장한다는 생각에서다. 콘텐트원은 그래서 고전시리즈의 맨 앞에 ‘셰익스피어 전집’을 내걸었다. 물론 셰익스피어학회 전문 연구자 12명이 참여한다. 『베니스의 상인』을 번역학 박우수 한국외국어대 교수(영문학)의 말을 들어보자.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다 보니 『베니스의 상인』은 이미 번역본이 여럿 나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새로운 번역을 시도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보이는 그의 말장난의 다의성을 어느 한 번역으로 다 담아낼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다. 이 말은 셰익스피어의 번역은 계속해서 열려있음을 의미한다. 셰익스피어 번역에 있어서 완성본은 없다.” 『베니스의 상인』과 『한 여름밤의 꿈』(오수진 옮김)이 현재 출간돼 있으며, 모두 44종을 번역한다. 신 팀장은 이 고전시리즈를 더욱 넓혀나갈 계획이다. 독일어문학권에서 다음 후보를 물색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그런데 고전시리즈 출간 작업에는 또 다른 ‘신의 한수’가 작용한다. 한국외국어대가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한국외국어대 라이프 아카데미’ 사업과 연동돼 있다는 것. ‘HUFS  LIFE ACADEMY’는 지난해 학교 예산으로 시작했지만, 올해는 가정준 원장의 노력으로 동원그룹의 동원육영재단에서 1억5천만 원을 지원 받아 진행하고 있는 인성·교양 심화 프로그램이다. ‘Homo Quaerens(질문하는 인간)’을 지향하는 교육이념에 따른 것으로, 10개월간 24권의 책이 탐구된다. 일종의 한국외국어대판 ‘인문고전 100선’ 프로젝트라고도 할 수 있다.

주력 출판 분야가 ‘어학’이라고 하지만, 쓴맛도 많이 봤다. 대표적인 게 어학도서 『베트남어 고득점 전략』(송정남·박연관 지음, 2015)이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대통령 방문과 한류 영향으로 ‘붐’이 일고 있는 지역이다. 이 책은 고등학생들이 입시 대비로 사용할 수 있게 기획했지만, 경쟁도서 분석 실패로 매출이 저조했다. 베트남 어학도서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시켰지만, EBS 베트남 어학도서에 고객을 뺏겼다는 분석이다. 그래도 콘텐츠원은 꾸준하게 어학도서 출판에 전념하고 있다. 『힌디어 첫걸음』, 『타밀어 기초회화』 등 ‘전공특화분야’를 깊이 개척하고 있으며, 『텍스트언어학사』, 『언어교수학입문』과 같은 학술서도 내놓고 있다.

스마트러닝의 힘

‘지식콘텐츠’를 출판과 연계한 한국외국어대 지식출판콘텐츠원은 한국 출판의 새로운 모델로 벤치마킹될 수 있을까. 다른 대학과 달리 ‘스마트러닝’을 콘텐츠원이 주도하는 특성을 본다면, 일단은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자책 담당으로 지난해 콘텐츠원에 입사한 이리나 씨는 이렇게 말한다. “전자콘텐츠인 만큼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그 활용도 또한 무궁무진합니다. 특히 스마트러닝을 함께 진행함에 있어서 학생들이 디바이스(전자기기)로 편리하게 콘텐츠를 사용하고, 나아가 각자의 콘텐츠를 창조해내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학습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편리한 기능 등을 소개해, 콘텐츠와 전자기기를 통한 보다 편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이런 스마트러닝의 가능성 때문인지 신선호 팀장도 이렇게 말한다. “아마 다음은 AI로 가게 될 것입니다. 어학, 교육 부문에 특화된 저희 콘텐츠원은 스마트러닝에서 확보한 다양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좀 더 발 빠르게 AI에 기반 한 콘텐츠 제작으로 진입할 것입니다. 종이책과 함께 여기서 발생하는 각종 과금(지식재산권)이 새로운 수익원이 될 것입니다. 실제, 다음과 네이버에 제공하는 사전류 디지털콘텐츠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이를 증명합니다.”

한국외국어대 지식출판콘텐츠원이 자리 잡은 데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출판’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조직 리더들의 존재, 그리고 이들과 함께 헌신을 아끼지 않은 구성원들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기초’였다고 말해야 한다. 이들은 대학 구성원의 생각을 변화시켰고, 디지털시대로 가는 마인드를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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