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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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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홍 논설위원
  • 승인 2018.05.2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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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대학 창의적 자산 실용화 지원 (BRIDGE+)사업 선정- 5년간 34억원 사업비 지원’

새 현수막이 또 교정에 걸렸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 현수막이 걸리는 것을 보면 ‘정부재정지원사업’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양이다. 요즘에는 ‘경축’하라고 선동하는 현수막들이 많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이런 현수막을 보면 왠지 나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처럼 느끼게 된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그 자체로 미덕 아니던가. 그런데, 대학의 ‘사업’ 수주를 간단히 자랑할 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업’의 효과는 학생을 키우는 대학에서의 사업 결과를 즉각 ‘돈’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 일단 논외로 하겠다.

사업을 수주했으니, 당장 대학은 사업을 실제로 벌여야 한다. 대학이 원래 수행하던 활동인 연구와 교육을 내용으로 하는 사업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가외의 새로운 사업을 만들고 진행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 기회를 제공한다던지, 지역의 기업체들과 네트워크를 만든다던지. 회사를 창업한다던지. 아차, 이런 일들보다 앞서서 그리고 가장 공들여서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사업계획서 작성이다(작성을 대행하는 자문회사들이 성황이라는 풍문도 들린다). 대학의 속성상 이런 일들은 대체로 관련 학과들의 젊은 교수들에게 떠넘겨진다.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연구 실적 압박에 허덕이는 젊은 교수들에게 무거운 짐이 또 얹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웬만한 사업은 ‘인건비’ 지출을 금하고 있어서 보상은 약간의 활동비가 전부이다. 그래도 이들은 사업의 ‘수혜자’이다.

사업에 적합하지 않은, 달리 말하면 ‘기업가적’ 속성이 없는 학문분과 교수들은 이제 대학에서 구경꾼쯤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업이, 그 사업에 대한 대학 전체 차원의 역량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대학의 ‘대응자금’ 투자를 필수조건으로 내세운다. 심지어 대응자금 액수를 많이 써넣은 대학을 ‘낙찰’하겠다는 사업도 있다. 발전기금 등등으로 여유자금을 비축하고 있는 대학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은 다른 곳에 써야 돈을 돌려서 충당해야 한다. 자원을 빼앗기는 학문분야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밖에도 다양한 조건이 붙는다. 어떤 사업은 특정 학문분야의 교과목을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설하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어떤 사업은 사업단장(연구단장이 아니다)을 학장회의 같은 최고위 심의기구 구성원으로 넣으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대학의 자원과 교육내용과 의사결정이 사업을 중심으로 재편성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연구하고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라 사업하는 기관, ‘사업대학’이라고 해야 한다. 하기야 위의 현수막에 등장하는 ‘사업’은 내놓고 ‘기업가적 대학 역할을 강화’할 것을 조건으로 삼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대학에 재정을 지원해야 하는 교육부로서는 예산부서에 예산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고, 무작정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니 이러저러한 목적에 사용하겠다고 용처를 특정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배정받은 국고를 모든 대학에, 예컨대 학생 수를 기준으로 하거나 교수와 학생의 비율을 기준으로 해서 배분할 수도 있겠지만, 능력과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정신’에서 보면 그것은 나태와 무책임의 나눠먹기일 것이다. 그러니 대학의 본질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평가지표들’을 만들어 대학들을 줄 세우고 선별적으로 돈을 나눠주며 대학을 망가뜨린다.

게다가 경쟁을 통한 줄세우기는, (경쟁에서 패배한) 다수의 대학들이 받는 부당한 차별을 놓고, (그 사업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면) 모든 대학들에 골고루 배분해야 할 돈을 그렇게 배분하지 않는 정부의 잘못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는) 개별 대학들의 역량이나 노력의 취약에 책임을 묻는 왜곡 효과를 동반한다. 사업대학 총장들이 ‘돈’ 이야기만 하면서 사업 신청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업 선정 자랑에서 청탁을 가리지 않는 것은 그런 왜곡 효과의 당연한 귀결이다. 오늘날 대학들이, 돈을 앞세워 대학을 줄 세우는 권력의 기대나 요구에 맞게, 진리니 자유니 정의니 하는 쓸모없는 이상을 내던졌다는 이야기는 사족이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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