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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지방선거와 시민의 독서권 
6월 지방선거와 시민의 독서권 
  •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
  • 승인 2018.05.2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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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의 시민활동 그룹인 ‘고양시 책·도서관·문화 정책포럼’(대표 한상수, 이하 정책포럼)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근 「고양시 지방선거 입후보자들에게 바라는 독서·도서관 정책 공약 제안」을 발표했다. 

정책포럼이 내건 주요한 요구 사항은 5가지다. △고양시 예산의 1% 이상을(현재는 0.15% 수준) 독서진흥 및 도서관 자료 구입비로 책정하라(도서관 건립 및 운영 예산은 비포함) △독서정책 실행과 시민 참여의 거버넌스 확립 근거 마련을 위한 「독서문화진흥조례」를 제정하라 △행정부서로 ‘독서·도서관정책과’를 설치하라 △양질의 도서관 서비스를 위한 시설 개선, 전문인력(사서) 및 최신 장서를 확충하라 △어린이·청소년을 위해 ‘1인 1책 지역서점 바우처’ 제도를 시행하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책과 관련된 쾌적한 공공 서비스 환경을 시민의 생활권에 마련하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을 자치법과 행정에 적극 반영해 시민의 서재인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고, 시민을 위해 책과 관련된 기본 예산을 책정하라는 제안이다. 

이러한 요구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책(작가, 독서, 도서관, 출판, 서점) 관련 단체들이 입을 모아 제시한 형식과 닮았으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많이 다르다. 전국 10번째로 100만 인구를 돌파한 대도시인 고양시는 그동안 ‘전국 최고 수준의 도서관 인프라 구축’과 ‘아주 특별한 책의 도시 고양’을 자랑삼아 표방해 왔지만, 인구비례로 볼 때 사실은 전국 최하위권의 공공도서관 인프라임을 숨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시민들이 자각하고 그 구체적 대안을 고민한 결과라는 점이 우선 주목된다. 고양시 공공도서관의 1관당 봉사인구 수(6.1만 명)는 전국 평균(5.1만 명) 및 경기도 평균(5.2만 명)에 훨씬 못 미치는 전국 최하위권이며, 공공도서관의 시민 1인당 도서구입비(1천500원)는 경기도 31개 지자체 중 25위에 머물렀다. 

지자체 예산의 1% 이상을 책과 독서진흥에 써야 한다는 상징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내건 점이나, 아직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는 거버넌스 독서진흥위원회 설립 요구, 변방의 사업소 기관인 도서관 정책 부서를 시정의 중앙에 독서·도서관정책과로 만들라는 제안, 전국 어느 지자체에서도 시도된 바 없는 어린이·청소년의 도서 구입 바우처 지원(지역서점 구매)를 제안한 점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한 집안이 흥하려면 최소한 가계 지출의 1% 이상은 책을 구입하거나 관련된 활동에 써야 하듯이, 고양시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꾸려면 시민을 위해 1% 이상을 공공도서관의 자료 구입과 독서진흥 관련 사업비로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 정책포럼의 설명이다. 한국도서관협회가 제정한 ‘한국도서관 기준’에서 대학의 경우 대학도서관 운영예산을 대학 총 예산의 5%로 하고, 4년제 대학은 총 경상비의 2%를 자료구입비로 책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을 지방자치단체에도 만들어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공약 제안들이 실현된다면 놀라운 책 생태계의 긍정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시민들은 그만큼 좋은 환경 속에서 양질의 최신 장서를 도서관에서 접하면서 도시의 일상에서 독서 프로그램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책포럼의 마지막 제안은 미래 세대인 어린이·청소년들(초등 1학년~고등 3학년)에게 1년에 1권씩 읽고 싶은 책을 지역사회(고양시)가 선물하는 바우처 제도를 지역서점 경유로 시행해 시민의 독서권 보장에 기여해야 한다는 희망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일본 하치노헤시에서 배포한 ‘마이 북 쿠폰’ 배부 사업이 좋은 선례로 꼽힌다.

상식적으로 과하지 않은 이러한 요구들이 매우 혁신적으로까지 보일 수도 있는 것은 우리의 책과 관련된 정책 토양이 그만큼 척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100만 인구의 도시에서 책 구입하고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예산(약 24억 원)이 각종 축제 예산의 1/4밖에 되지 않았던 고양시. 고양시민은 위와 같은 제안을 공약으로 내거는 시장 및 시의원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정책포럼은 공개적으로 정당과 입후보자들을 압박했다. 그 성취가 어디까지일지 지켜보는 눈이 많아지고 있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지, 시민의 독서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은 비단 고양시만의 사정이 아니다. 선거의 주체이자 주권자인 시민들이 책을 통해 사람답게 살 권리, 공부하고 사유할 권리,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할 권리, 꿈꾸고 상상할 권리를 가지려면 이번 지방선거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지방분권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요구를 지자체 선거판에 녹여내야 하기 때문이다. 고양시 정책포럼의 제안이 전국 각지에서 내 고장의 제안으로, 내 삶과 직결된 요구로 탈바꿈하여 번지기를 바란다. 주인이 주인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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