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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어떤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가
지금 여기, 어떤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가
  • 신유아 인천대·역사교육과
  • 승인 2018.05.21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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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역사 교육과정안과 집필기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언론의 관심은 집필기준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논란에 가세하기 전에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역사 해석의 ‘다양성’에 관한 것이다.

지난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여론의 비판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국정교과서가 학생들의 다양한 역사 인식을 가로막는다는 것이었다. 이번 정권이 들어서고 대통령이 국정교과서의 폐기를 선언한 것도 다양한 역사 인식을 담은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쓰이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과연 다양한 역사 인식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인가? 역사 교과서가 학계에서 소위 ‘주류’라고 평가되는 생각과 ‘다른’ 역사관을 담아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까? 

전 정권에서 최하위 실무직으로 일하며 고초를 겪었던 사람들까지 모조리 ‘적폐세력’으로 몰아 무리한 진상 조사를 벌이고, 관련업무와 교과서 집필에서 배제시키며 근현대와 상관없는 역사학 전반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무조건 ‘보수적’이라고 몰아붙여 공격적으로 대하는 현실을 접하다 보니, 역사 교육에서 과연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전 국민의 노력으로 검정제는 지켜졌지만 정작 역사를 한다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종다양의 교과서가 나온다고 해도 ‘하나의’ 시각만을 담아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혹자에게는 정치적으로 쟁점화시킬 수 있는 주제가 많은 근현대사가 고대나 고려, 조선시대의 역사보다 더욱 쓸모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근대의 역사도 우리 민족이 함께 일구어온 소중한 역사다. 현실 정치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1단원에 넣고 잘 가르치지 않는다면 역사교육의 본의가 어디 있는지 의심받을 수도 있다. 

중학교 ‘역사2’에서 한국 전근대사를 많이 가르치도록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도 있으나 시간적으로 근현대사의 10배가 훨씬 넘는 방대한 역사를 중학교 학생들에게 고등학교에서보다 훨씬 더 상세히 가르치는 것이 타당한 일인지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오히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근현대사가 현대와 시기가 가깝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더욱 친숙하고 배우기도 쉬울 것이므로 근현대사는 중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 적합할 수도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서로 ‘다른’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역사교육의 최상위 목표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동안 중고등학교가 서로 비슷한 내용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교육과정을 계속해서 개정해 학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온 국민이 합심해서 화합과 통합을 이야기해도 부족한 시기에 이렇게 ‘이념 과잉’을 추구하는 교육과정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민족이 식민지를 겪고, 분열하고 대결해온 역사만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이 왜 분단됐고 분단을 고착시킨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는 것만큼이나, 우리민족이 왜 하나이고 또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도대체 언제까지 세종대왕 시기 민족문화의 발달상보다 일제 강점기의 총독들 이름이나 각종 통치정책들에 대해 훨씬 더 상세히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이런 내용을 일일이 외우라고 해야 한다는 것인가? 국난의 시기마다 국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은 적 없는 노비와 백성들이 의병을 조직해 나라를 지킨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이렇게 축약해 가르치는 것에 동의하는 국민들이 대다수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전 세계가 움직이고 있다. 소모적이기 짝이 없는 이념 대립을 반복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연구 및 교과서 검정 시스템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몇몇 전문가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수십만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의 내용과 구성을 좌지우지하게 해서는 이런 분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부디 정부가 나서서 역사교육이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지 않도록 방법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

 

신유아 인천대·역사교육과
서울대에서 조선전기사 및 역사교육으로 박사를 했다. 대표 논문으로 「조선전기 체아직 운영의 실제」, 공저서로 『지하철을 탄 서울사』가 있으며, 역사교육연구회, 역사교육학회, 역사학회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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