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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교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교수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5.08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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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아주 까마득한 태고적, 45억년 전 우주가 생겨났어요. 광대한 우주의 수많은 은하들 한 구석에 지구라는 행성이 있었지요. 이 작은 별에서는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만든 수많은 소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는데요. 아득한 옛날부터 개명을 거듭하면서 이어온 한 나라가 있었어요.

옛적 한때는 고조선으로 칭해졌고 지금은 대한민국이라고 불려요. 많은 나라 중 세상 중심을 자칭하는 中國 옆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반도에서 자그마치 반만년을 지탱해온 인고의 나라이지요. 하긴 이 나라가 소속된 우주 나이 45억년을 45km 마라톤에 빗대자면, 여태 5cm 걸음마한 것에 불과하지만요.

대한민국은 교육열이 높기로 행성 지구에서 유명해요. 소싯적부터 명문대학 진학에 인생을 건다고 해요. 아, 인생이라 함은 평균 80년을 잡으면 45억년 우주나이의 1/5625만년이고, 45km에서 0.8mm에 해당하는 존재입니다.

대학은 뭐하는 곳이냐면, 한때는 인간이 보다 인간다운 삶을 더불어 향유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설립된 최고교육기관이었다고 해요. 음, 요새도 대학존립의 이유가 그렇다면 구태여 명문대학에 가기 위해 (바보도 아닌데) 인생을 걸지는 않겠죠.

사실 이 나라는 지연, 학연, 혈연이라는 3계명과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라는 ‘3수저’ 신분제가 삶을 좌지우지하는 곳이에요. 동화 속 앨리스가 토끼 굴에 빠져서 들어간 이상한 나라가 있지요. 이 요상한 계명과 신분제가 동화 속보다 철저하고 잔혹할 정도로 엄격하게 집행되고 있어요.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베를 짤 때 누가 귀족이었고,’ 환웅과 웅녀가 신시에 살 때 누가 금수저였는지. 그런데 신분과 지연을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날 수가 있나요?

그러다보니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은수저와 금수저로 신분상승하고 유지하는 방편으로 학벌과 인맥을 쌓으려고 고군분투한답니다. 이 나라에서는 ‘부유층’과 ‘상류층’이 동의어거든요! ‘명품’ 교육이 아니라면 흙수저 신분 탈출을 위해 주식이나 비트코인 투자라든가 도박 같은 것에 목숨 걸면서 ‘대박’을 꿈꿀 수도 있지만 ‘쪽박’ 찰 위험을 무릅써야 해요.

나라가 온통 신분상승과 유지를 위해 학벌, 인맥, 외모, 소유의 ‘명품화’에 열을 올리다보니 다른 사회에서라면 행복한 삶을 누렸을 극히 정상적이고 귀한 생명들이 사회 낙오자, 실패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오명과 누명을 뒤집어쓰고요. 꿈 많고 개성 있는 앨리스들을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강제로 잡아서 귀양살이 시킨다고 합니다. 동화 속 앨리스는 꽃들과 대화하고 흰 장미를 페인트로 색칠하는 여유라도 있었는데, 토끼 굴에 빠진 대한민국 앨리스들은 숲이나 꽃을 만끽할 틈도 없어요.

3계명과 3수저 신분제를 힘 있는 어른들이 혼신을 다해 개혁하는 대신에 사회적 신분, 권력, 기득권을 수호하는 시스템 유지에 사활을 걸다보니, 이 나라는 스트레스 왕국, 최저 출산율, 최고 자살률, ‘헬조선’이라는 별명이 불었어요. 3계명을 지키는 높은 장벽 밖의 3포(N포)세대 행복지수가 행성 지구에서 최하위권인 것은 지식과 권력을 소유한 어른들 탓이지요. 수십 년 동안 치리한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 탓만으로 돌리면 죄책감이 덜하기는 하겠지만요, 인간 생명체의 속성인 양심이라는 것 때문에 그럴 수 없겠네요. 대학에서 녹을 먹으면서 무력하게 상황을 방관하거나 공조해온 지식인 교수는 더욱 그렇지요.

0.8mm의 생명 경주조차 힘겨워서 자포자기한 젊은이들의 목숨 값은 ‘지식의 권력화’를 주도, 편승, 수수방관한 지식인에게 있지요. 금수저와 은수저 기득권층과 최고교육기관에 속한 교수들의 책임을 지금은 부인한다 해도, 지구역사나 우주역사에서 지식인의 자멸의 예화로 길이 기록될 것 같아요. 

악화일로의 사회체제 탓에 이 나라는 ‘인구절벽’에 다다르며 등장인물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답니다. 45km에서 겨우 5cm를 지났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달려갈 수 있을까요. 동화 속, 영화 속보다 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이 특권체제를 수십 년 이어온 붉은 여왕과 괴물 시스템을 와해시키고 해피 앤딩을 맞을 수는 있으련지요.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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