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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교수에게 드리는 두 번째 권면의 말씀
신임 교수에게 드리는 두 번째 권면의 말씀
  •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 승인 2018.05.08 12: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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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한국정치사

지난 908호(2월 5일자) 지면에 이어 신임 교수에게 두 번째 권면의 말씀을 드립니다. 본디 중세 유럽에서 대학(University)이 생겨날 때 그것은 보편적 진리(universal truth)를 전수하는 교육 기관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산업혁명 이전이었으니까 가르치는 것은 文史哲이 주요 항목이었고, 사회과학으로는 정치경제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사회가 분화되면서 과학 기술이 독립 학문으로 나뉘고 미술·음악이 한 장르를 이뤄, 이제는 대학이 대략 200개 학과로 분화돼 있습니다.

학문이 직업으로서의 과학에 몰두하다보니 자기 분야에 대한 지식은 깊어졌을지라도 인문학을 돌아볼 겨를이 없게 되면서 정서는 메말라지고 기계적 인간형(homo mechanicus)이 사회의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역사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대학의 본질도 아니고 삶의 가치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연과학이든, 예술이든, 인문과학이든, 교수는 다음과 같은 점을 학생들에게 들려주어야 한다는 점을 저는 평생의 모토로 삼고 살았습니다.

첫째, 대학의 강의는 인생의 이야기를 담아야 합니다. 선배로서의 체험을 진지하게 반추하고, 자신의 생애에서 겪었던 실패담을 진솔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부모님 속 썩이던 소년 시절, 방황하던 청년 시절, 꿈과 야망의 좌절과 극복, 시련……. 이런 문제들을 강의 틈틈이 들려줘야 합니다. 중간고사 끝나면 잊어버릴 교과목보다 이런 문제를 강의에 묻혀 들려주는 지식과 고뇌가 필요합니다.

자연과학 실험 시간에 인생을 얘기할 겨를이 어디 있냐고요? 프랑스의 물리화학자 파라디(M. Farady)는 실험 중에 “내가 명색이 물리화학자이지만 나를 위해 어머니가 흘린 눈물의 성분을 분석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학생들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파스퇴르(L. Pasteur)는 “과학에는 조국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로 프랑스 젊은이들의 우국심을 고취했습니다. 쇼팽(F. Chopin)은 평생 조국 폴란드의 흙을 머리맡에 두고 살았습니다.

둘째,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회는 이기적이고 單子化 됐습니다. 이제는 이웃이 없고, 사촌이 없는 사회가 됐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나 살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사람 냄새나는 삶이 그립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유일하게 암에 걸리지 않는 부분이 심장입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광야를 달리다가 문득 말을 멈추고 뒤를 바라보며 잠시 서 있습니다. 내 육신이 이토록 허둥대며 달려오는 동안 내 영혼은 제대로 따라오는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셋째,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난하지 않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가난은 죄가 아니다”라고 가르쳤지만 그렇다고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가난은 불편하며, 사람의 도리를 못하게 합니다. “그대가 진실로 賢者라면 가난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If you are really wise man, you should not be poor.)”라는 마셜(Alfred Marshall)의 말이 평생 저의 가슴을 짓누릅니다. “너무 가난하게 살면서 仁義를 말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司馬遷)일 수 있습니다.

끝으로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상형으로서의 추억을 남겨줘야 합니다. “나도 먼 훗날 저 분과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久遠의 인간상이 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전공과목이나 가르쳐주고 말 일이라면 대학이 통신강좌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거듭 말하지만 교수는 성직자의 소명이 필요합니다. 귀하의 말 한마디가 감수성 많은 젊은이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골프 얘기로 한 세월 보내다가 허둥대며 강의실에 들어가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한국정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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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2018-05-10 00:49:45
좋은글 감사합니다. 교과지식보다는 삶에 대한 열망과 지혜를 가르치는 교수.. 입에 미소가 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