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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차이나', 화교 연구기
'리틀 차이나', 화교 연구기
  • 이정희 인천대·중국학술원
  • 승인 2018.05.08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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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화교연구는 1999년 대구화교중학 고등부 3학년 교실에서 시작됐다. 당시 기자로 화교학교를 취재하다 학생들에게, 한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한 학생이 큰 소리로 “난 한국사람 정말 싫어요!”라고 외쳤다. 이 외침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기에 한국사회가 청소년을 비롯한 화교들에게 얼마나 차별적인 대우를 했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기자로 근무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시민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이 청소년의 ‘외침’을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화교가 무엇인지 몰랐다. 중국 사람이 왜 한국에 와서 살고 있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완전히 문외한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130년 넘게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살아온 화교의 역사, 한국인과 화교 간의 관계, 화교의 한국사회 인식을 정말 알고 싶었다. 

마침 일본의 대학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져 2000년부터 화교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일본의 각 도서관과 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근대 한국화교 관련 자료뿐만 아니라 한국, 대만, 중국에 소장된 각종 공문서와 신문, 잡지 등을 수집했다. 한국, 대만, 일본, 미국, 아프리카 거주의 한국화교 100여명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소중한 개인사를 인터뷰했다. 

한국화교는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화교’로 불린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통치자인 일본인과 한국인을 압박할 정도로 큰 경제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포목상점을 비롯한 상업은 물론이고 주물공장과 양말공장과 같은 제조업, 염전·철도·도로 공사장에 화교 노동자가 대량으로 동원됐다. 아름다운 종교건축물로 평가받는 명동성당, 약현성당, 계산성당(대구), 전동성당(전주) 등은 모두 화교 건축청부업자와 벽돌공에 의해 시공된 것이다. 서울, 인천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의 상업 야채는 화교 농민이 재배한 야채에 의해 거의 독점되고 있었다. 이러한 화교의 왕성한 경제활동은 1931년 7월 화교 200명을 학살하는 이른바 ‘만보산사건’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종합해 2012년 일본에서 『조선화교와 근대동아시아』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근대 한국화교의 역사를 경제사적 시각에서 분석한 것이다. 그러나 집필과정에서 화교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는 각종 사회단체, 종교, 학교, 비밀결사에 대한 분석, 즉 한국화교의 사회사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인천대 부임 후 5년간 인천화교협회가 100여년 동안 소장해 온 각종 자료를 활용해 한국화교의 사회사적 분석을 했다. 그 결과 화교 간의 관계, 신앙, 교육을 통한 후세 양성 등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화교의 연구는 화교연구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화교 연구 자체가 중국을 분석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이주한 화교는 중국 고향의 삶속에서 체화된 각종 관행, 종교, 음식, 기술을 가지고 이주지에서 그것을 재현한다. 세계의 여러 민족이 디아스포라가 되지만, 중국인처럼 세계 각지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하면서 이주지에 ‘리틀 차이나’를 만들어 내는 경우는 없다. 화교를 연구하면 할수록 ‘중국’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교를 통한 중국과 일본 간의 외교관계, 한국과 중국 간의 외교관계, 한국과 대만 간의 외교관계도 들여다 볼 수 있다. 

북한에도 현재 5천명의 화교가 거주하고 있다. 북중 무역의 담당자로서 북한사람에 비해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북한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생활하는 그들은 누구보다 북한을 잘 안다. 평화통일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만큼 북한화교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북한화교 출신의 화교학자와 공동으로 『한반도화교사전』의 편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북한 화교와 관련된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 등을 총망라한 세계 최초의 한반도화교사전이 될 것이다. 올해 연말 출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정희 인천대·중국학술원
일본 교토대에서 동양사학으로 문학박사를 받았다. 영남일보 기자,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사무국장, 일본 후쿠치야마공립대학 교수를 역임한 뒤, 2014년 8월부터 인천대 중국학술원에서 화교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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