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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향수 가득한 長江 용머리
1930년대 향수 가득한 長江 용머리
  • 박인성
  • 승인 2003.05.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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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도시 이야기 4 : 인공의 물류도시 - 상하이

▲□ 항구와 항운을 경쟁력 삼아 급성장을 하고 있는 상하이. 푸동 개발을 시작한 지 불과 10여년만에, 이미 뉴욕의 맨해튼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인공의 신시가지가 건설됐으며, 국제무역 및 금융중심의 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계획이 현재 진행중에 있다. /
1840년 영국이 발동한 아편전쟁의 결과 1842년에 난징조약이 체결됐고, 연해지역의 광저우(廣州), 푸저우(福州), 샤먼(厦門), 닝보(寧波)와 함께 상하이항이 개항됐다. 개항이후 상하이는 동중국해와 장강 하구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광대한 장강 삼각주 지역을 배후지로 가진 입지적 잠재력이 발휘되면서 대내외 무역과 근대공업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국제무역 및 금융 중심도시로 성장

개항 이전에는 인구 20만 정도의 중등 도시에 불과했던 이 도시가 1930년대에는 5백만 인구의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 무역 및 금융중심도시로 발전했다. 상하이(上海)라는 이름대로 바다위로 떠오른 것이다. 당시 상하이시의 도시계획 및 건설 방식 등은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각 국에 중요한 참고 모델이 됐다. 오늘날에도 상하이 시가지를 거닐다보면 음식점 까페 등의 간판에서 ‘1930年代’라는 상호를 자주 볼 수 있는 데, 이는 그 시절에 대한 상하이 시민들의 향수 어린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49년 5월에 인민해방군이 상하이에 입성한 후부터는 지령성 계획경제체제하에서 발전잠재력과 성장동력이 억제됐다. 개혁개방 이전의 신중국의 경제정책 및 지역개발전략은 경제효율보다는 국방상의 안보와 균형개발, 원자재 산지와의 거리 등을 중시했으므로, 산업 및 기반시설 투자도 적의 공격에 노출된 연해지역보다는 내륙, 산간오지 등에 집중됐다. 그 결과 이 도시는 상업 및 무역기능과 함께 도시발전도 억제, 위축됐다.

극좌 모험주의 노선의 참담한 결과를 경험한 후, 1978년 말부터 시작된 개혁개방 정책의 추진은 초기단계에는 션젼(深土川)경제특구와 광저우를 중심으로 하는 주강삼각주지역이 주도했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상하이의 푸동신구(浦東新區)를 중심으로 하는 장강삼각주지역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푸동이란 장강의 지류로서 상하이시를 남북방향으로 흐르며 동서로 나누는 황푸강(黃浦江)의 동편 시역을 가리킨다.

원래 상하이에서는 황푸강의 서편인 푸시(浦西)지구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발전돼 왔으나 1980년대 말에 푸동지구 개방·개발정책이 결정되면서 황푸강을 가로지르는 교량과 하저터널이 건설되고 푸동지구에 신시가지와 신국제공항 건설과 함께 국제무역·금융 등 고급서비스 기능이 확충되면서 중국경제의 성장과 개혁개방을 선도하는 용머리로 떠올랐다.

2000년에 확정된 상하이시 도시총체계획은 2020년까지 국제 항운과 경제·무역·금융 중심도시로서의 지위 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년 안에 뉴욕을 따라 잡겠다는 상하이시 정책담당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 기백과 자신감을 부러워했다. 우리도 미국을 따라 잡겠다는 발상을 해볼 수 있을까.

상하이의 상징인 와이탄(外灘)의 황푸강변 도로에서 강 건너로 보이는 루자쭈ㅔ이(陸家嘴) 금융무역구의 시용(市容)을 대하면 미국을 따라 잡겠다는 그들의 말이 결코 허풍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푸동개발을 시작한 지 불과 10여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미 뉴욕의 맨해튼을 연상하는 시가지가 건설돼 실재하고 있으며, 국제 무역·금융중심으로 발전하기 위한 계획 역시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의 경쟁력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항구와 항운이다. 중국 대륙 동부 해안선상의 중간에서 장강 출해하구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황푸강과 그 지류인 우송강 등 장강삼각주 일대의 호수와 저수지 수운망을 통해 중국내 대부분의 성시들과 상호 연결된다. 황푸강과 장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크고 작은 배들을 보면 그것이 바로 물류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 배들이 서쪽으로는 장강을 따라 우한과 총칭을 지나 서부내륙지역의 수운망으로, 동으로는 황해와 동중국해, 그리고 태평양으로 운항하고 있다.

동북아 물류중심기지로 떠올라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 개혁개방 이전까지 약 30년간은 상하이가 가진 우수한 입지적 조건들이 억눌리고 도시경제와 발전이 침체됐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반식민지·봉건 잔재를 청산하면서 내부적 통일을 다졌다고 볼 수도 있다.

상하이는 ‘上海’라는 의미 그대로 다시 든든한 기초 위에서 동북아 및 세계 물류 중심의 도시를 향해 떠오르고 있다. 2002년 상하이의 인구는 1천4백만에 달하고, 항구의 컨테이너 처리량은 부산항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했다. 장강의 용머리가 다시 떠오르며 동북아 경제중심을 지향하는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박인성 /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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