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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문학의 풍경과 소설 『북호텔』
1930년대 문학의 풍경과 소설 『북호텔』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8.04.2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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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1930년대, 경성도 아닌 광주 양림동에 양림 쌀롱(Salon de YangLim)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서구 문화가 들어온 경로는 선교사들과 일본을 통해서였다. 광주의 ‘서양촌’ 혹은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양림동에는 100여년 역사의 근대문화유산이 산적해있다. 1904년에 지어진 양림교회, 선교사 관련 기념물인 오웬 기념각과 사택, 1908년에 설립된 수피아 여학교 등이 이 시대의 건축물이다. 일제의 말살 정책이 정점으로 향하던 시기였지만 모더니즘이 심화되고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풍요로웠던 때였다. 양림동에 살았던 문인으로 시인 김현승, 서정주, 소설가 박화성 등이 있었으니 광주의 ‘몽마르트’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1930년대 경성에서는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미스코시 백화점이 문을 열었으며 축음기에서는 콜럼비아사의 전속 가수였던 박향림의 「오빠는 풍각쟁이」가 흘러나왔다. 모단걸, 모단보이들이 들락거렸다는 ‘쌀롱’은 차를 마시는 공간 혹은 양장점에 붙이는 명칭이었다. 프랑스에서 ‘살롱’은 차를 마시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전시 공간이자 18세기에 지적 교류가 이루어졌던 ‘문학 살롱’을 의미한다. 쌀롱이었든 살롱이든 당시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은 문화적 취미로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유럽에서 시작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이상의 작품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으니 당대의 지적, 사상적 수용은 놀랍기만 하다.

1930년대 프랑스는 양차세계대전 사이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공황의 여파가 유럽에도 상륙했고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내각이 설립됐으며 프랑스에서는 사회당과 공산당이 결합해 인민전선을 결성했다.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지로두의 「트로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리」, 사르트르의 『구토』가 이 시대에 나온 주요 문학작품들이다. 작가들은 혼란스러운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다가올 전쟁의 위협에 대한 불길한 예언, 인간의 실존에 대한 탐색에 몰두했다. 이른바 주류 문학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당시 파리 서민들의 일상의 삶을 다룬 외젠 다비의 『북호텔』(원윤수 역, 민음사, 2009)도 눈여겨볼 만하다. 『북호텔』은 이미 1960년대 동아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출간됐고 마르셀 까르네 감독, 아나벨라, 장 피에르 오몽 주연의 1938년 작 영화, 「북호텔」로도 소개됐으니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소설 『북호텔』을 통해 들여다보는 1920∼30년대 파리는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소설 속 서민들의 삶의 빈곤하고 상스럽고 그들의 미래 또한 밝아 보이지 않는다. 파리 하층민과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을 다룬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소설 『목로주점』의 풍경을 재현하는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 에밀 르쿠브뢰르는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예상하고 돈에 맞는 허름한 호텔을 인수한다. 그는 호텔의 주인이 되면서 저마다 방 한 칸을 차지한 노동자들, 이주민들, 젊은 여자들, 노인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일종의 사랑방을 제공하게 된다. 호텔에 숙박한 손님들의 삶의 방식과 유형은 북호텔의 방 개수만큼이나 다양하고 그들의 사연은 각 장에 하나씩 할애되어 독자에게 전달된다. 작가 외젠 다비는 그들의 삶을 각 장을 통해 개별적인 이야기인 것처럼 들려주지만 등장인물들이 북호텔이라는 공동의 공간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가 흩어지고 주인 르쿠브뢰르의 카페에서 다시 만나게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에 일체성을 부여한다.

소설 『북호텔』을 읽는 재미는 지난 시절을 추억하게 만드는 데 있다. 물론 대부분의 독자들은 1930년대를 살아본 경험이 없을 것이고 더구나 『북호텔』은 파리에서 살았던 프랑스 서민들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1930년대라는 빈곤했던 시절에 대한 공통의 기억,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집안의 세계문학전집에 대한 기억, 어두운 시절 ‘문화 해방구이자 슬픈 게토’였다던 경복궁 앞 프랑스문화원에서 보았던 흑백영화에 대한 기억과 맞물려 『북호텔』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게 만드는 소설이자 영화가 됐다. 소설에서 호텔에 딸린 카페에 한 남자가 들어와서 주인에게 “붉은 포도주!”를 외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레드 와인!”이라는 번역은 아니지 않는가? 

양림동의 선교사 사택을 개조한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며 호랑가시나무 언덕에서 김현승의 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노인이 아닌 젊은 세대들이다. 그들이 찾으려는 파리는 오늘날 외국인이 넘쳐나고 카페 대신 세계적인 커피 체인점이 차지하고 있는 낯선 도시가 아닐 것이다. 그곳은 ‘북호텔’이 있었고 문학과 예술을 토론하던 카페가 있었던 1930년대, 아니 그 이전의 기억 속의 파리이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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