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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추동하는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예술가를 추동하는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 이남인 서울대·철학과
  • 승인 2018.04.23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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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예술본능의 현상학』(이남인 저, 서광사, 2018.4)

필자는 1993년 『에드문트 후설의 본능의 현상학』(Edmund Husserls Ph?nomenologie der Instinkte, Kluwer Academic Publishers)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필자는 후설이 생전에 출간한 저술뿐 아니라, 여러 미발간 유고를 토대로 후설의 본능의 현상학을 재구성하고 그를 토대로 후설의 현상학의 전체 체계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제시했다. 이 책의 출간 이후 필자는 지난 25년 동안 계속해서 본능이라는 주제를 천착해왔다. 이번에 출간한 『예술본능의 현상학』은 『에드문트 후설의 본능의 현상학』의 후속편이다. 

후설은 여러 미발간 유고에서 주로 본능의 현상학의 일반론을 전개한다. 그러나 다양한 유형의 본능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각각을 분석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구체적인 본능의 현상학을 전개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본능의 현상학은 다양한 철학분야를 쇄신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후설을 비롯해 그 어떤 현상학자도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구체적인 본능의 현상학을 전개하고자 시도하지 않았다. 필자는 『예술본능의 현상학』에서 바로 다양한 유형의 구체적인 본능의 현상학의 한 분야인 예술본능의 현상학에 대한 필자 나름의 독자적인 구상을 펼쳐봤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예술본능론

서양지성사에는 예술본능론의 전통이 존재한다. 이러한 전통의 출발점은 『시학』에서 예술창작과 예술감상의 기원을 해명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이며 그 후 실러(F. Schiller), 니체(F. Nietzsche), 더튼(D. Dutton) 등의 철학자뿐 아니라, 리글(A. Riegl), 보링거(W. Worringer) 등의 미술사학자들도 이러한 전통에 속한다. 
필자는 이들 중에서 예술본능의 현상학을 전개함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몇몇 학자들의 예술본능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예술본능의 현상학을 전개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실러의 예술본능론이다. 그가 『인간의 예술교육론에 관하여』에서 예술적 놀이본능을 해명하면서 전개한 예술본능론은 예술본능의 현상학의 몇몇 중요한 내용을 선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나름의 형이상학적 전제 때문에 예술본능의 현상학으로 전개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를 갖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실러의 예술본능론을 현상학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예술본능의 현상학을 전개했다. 

예술본능의 현상학을 전개함에 있어 실러의 예술본능론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후설의 현상학이다. 그가 선보인 다양한 현상학적 이론과 현상학적 방법은 예술본능의 현상학을 전개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예술본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예술본능에 대해 체계적으로 논의한 적도 없지만 예술활동을 하도록 예술가를 추동하는 힘인 ‘혼령’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예술본능의 존재 및 의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예술본능의 현상학을 실제로 전개하는 일은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어려웠다. 예를 들어 예술본능론의 전통에 있는 여러 이론들은 의지할 언덕처럼 보여 그로부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연구를 시작해보니 그 이론들이 현상학적 관점에서 볼 때 나름의 문제점을 안고 있음이 드러났고 그에 따라 그것들과 비판적으로 대결하면서 연구를 진행하느라 고생했다. 또 V장에서 미적본능과 미적경험의 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뒤프렌느(M. Dufrenne)의 미적경험의 현상학에 나오는 미적경험의 단계를 활용하면 될 줄 알았으나 막상 연구를 진행해보니 거기에도 많은 문제가 있어 그와 비판적으로 대결하면서 미적경험의 유형들을 새로 정리하고 그 토대 위에서 미적본능과 미적경험의 관계를 해명하느라 고생했다.

예술본능의 현상학은 예술창작 경험과 예술감상 경험을 포함한 모든 예술경험의 발생적 원천인 예술본능에 대한 해명을 토대로 전개되는 현상학적 미학이다. 모든 예술경험은 그의 발생적 원천인 예술본능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의 여러 성격들이 규정된다. 따라서 예술본능의 현상학은 예술본능을 고려하지 않는 미학이론이 드러낼 수 없는 예술경험의 여러 가지 중요한 속성들을 해명할 수 있다. 또 예술본능이 모든 예술경험의 발생적 원천이기 때문에 예술본능의 현상학은 미학의 다양한 주제와 관련되며 따라서 예술본능의 현상학은 미학의 다양한 분야의 전반적인 쇄신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책은 예술본능 개념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고 예술본능과의 연관 속에서 예술창작, 미적 경험, 미적 태도 등 미학의 여러 주제들을 해명하고 있다.

1장에서는 예술본능론의 전통, 근현대 미학사에서 예술본능의 현상학이 차지하는 위치, 예술본능의 현상학의 내용과 방법 등을 다뤘다. 이어 2장에서는 전체 논의의 출발점을 마련하기 위해 본능 개념을 해명한 후 3장에서는 실러의 예술본능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예술본능 개념을 해명했다.

4장에서는 예술본능이 모든 유형의 예술창작을 추동하며 그러한 한에서 그것이 예술창작의 발생적 원천이라는 사실을 해명하면서 예술적 천재론, 현상학적 예술작품론, 예술창작 본능과 예술감상 본능(미적본능)의 관계 등을 해명했다.

5장에서는 뒤프렌느의 미적 경험의 현상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출발점으로 삼아 미적 경험에서 미적 본능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살펴보면서 미적 경험의 발생적 현상학을 전개했다. 여기서는 미적 본능과 예술맹의 문제, 미적 본능과 본래적 미적 경험의 관계, 재현적 미적 경험에서 미적 본능이 수행하는 역할 등을 비롯해 미적경험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미적 본능과의 연관 속에서 해명했다.

6장에서는 미적태도를 신화로 간주하는 분석미학자 디키(G. Dickie)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미적 본능이 미적 태도의 발생적 원천이라는 사실을 해명하면서 현상학적 미적 태도론을 전개했다. 미적 경험은 미적 태도를 토대로 이뤄지며  따라서 미적 경험의 정체를 그 뿌리로부터 해명하기 위해서는 미적 태도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7장에서는 예술본능의 현상학의 의의를 살펴보고 예술장르에 따른 예술본능의 현상학의 전개 가능성, 동물의 예술본능의 문제, 예술본능의 현상학의 실천적 함축 등 예술본능의 현상학의 남은 과제들을 살펴보면서 전체적인 논의를 마무리했다. 

근현대 미학사의 맥락에서 볼 때 예술본능의 현상학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근대의 추상적인 미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구체적인 미학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현대철학의 다양한 사조를 추동했던 전반적인 이념이 구체성에 토대를 둔 철학이었듯이 예술본능의 현상학을 추동하는 이념은 구체적인 예술경험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수행되는 구체적인 미학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미학의 이념을 추구하는 예술본능의 현상학은 현대미학의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여러 모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현상학적 미학의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분석철학, 해석학, 탈현대철학 등 여타의 다양한 현대철학사조에서 전개된 미학의 논의를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남인 서울대·철학과
1991년 독일 부퍼탈대에서 현상학을 주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현상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2008년부터 국제철학원(IIP)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현상학과 해석학』이,대표 논문으로는 「현상학과 질적연구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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