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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교과서 개발 시급하다n學會 중심으로 집필 … ‘학문적 인정’ 인색
사회과학교과서 개발 시급하다n學會 중심으로 집필 … ‘학문적 인정’ 인색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5.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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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우리 교과서 만들기 현장을 찾아서

사회과학 영역에서 우리 교과서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 이상 번역교과서나 번안교과서만으로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으며, 또한 학생들을 학문의 세계로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학회 중심의 연구자 집단이 교과서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교과서 집필에 대한 인식, 지원체계 등을 볼 때 전망이 밝은 건 아니다.

사회과학은 경험과학이다. 현실을 관찰 분석해 이를 설명의 체계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죠셉 슘페터의 ‘경제분석사’나 모겐소의 ‘국가간의 권력’ 같은 뛰어난 교과서들은 당대의 첨예한 현실문제들을 사회과학적 인과율로 설명한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의 사회과학계엔 이런 교과서가 부족하다. 이 땅의 정치·경제·사회의 실핏줄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면서 큰 동맥을 그리는 자생적 개론서들 말이다. 아카데미의 개론과목 교재의 해외의존 문제가 학자들에게 큰 고민거리로 다가온 건 오래 된 일이다. 하지만 고민이 실천으로 옮겨진 것은 비교적 근자에 들어서다.

사회학 사회학 분야에서는 한국사회사학회, 한국정보사회학회, 한국산업사회학회, 이론사회학회 등이 우리 교과서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사회사학회는 지난 1995년 근현대사 속의 사회학적 현실에 대한 개론적인 서술을 시도해 그 결과물로 ‘한국사회사의 이해’(1995)와 ‘한국현대사와 사회변동’(이상 문학과 지성사 刊, 1997)을 펴낸 바 있다.

이 중 ‘한국사회사의 이해’는 교과서적 통일성 등 형식적인 부분을 위해 워크샵도 열고, 집필 후 교차 독해도 하고 수정을 거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책으로 그 질적인 수준도 평가받고 있다. 물론 맑시즘에 경도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최근에는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의 정년퇴임기념논문집을 교과서로 쓸 수 있게 편집하자고 의견을 모아 네권으로 펴낸 바 있다. ‘한국사회사연구’, ‘한국사회사상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사회발전연구’ 등이다. 실무를 맡은 배규환 국민대 교수는 “다양한 시각과 접근방식을 반영해 새로운 사회학의 조류를 읽어낸 점은 장점으로 평가되나, 공동작업의 효율성을 크게 살리지 못해 표준이론에서는 거리가 있다”라고 자평한다.

한국산업사회학회는 지난 1998년 젊고 진보적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사회학’(한울 刊)이란 교과서를 펴낸 바 있다. 기존 교과서류와는 다르게 ‘인종이론’ 같은 덜 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고, 실제로 응용가능한 기초이론을 필자 한명 한명이 책임감을 갖고 서술해 널리 읽히고 있는 책이다. 이 학회는 산업사회연구회였던 시절부터 ‘새로운 사회학 강의’, ‘산업사회학 강의’ 같은 대학생들을 위한 개론서를 꾸준히 시도해왔고, ‘사회학’은 그것의 종합성숙판이라 할 수 있다.

편집실무를 맡은 김정훈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원은 “교과서의 천편일률성과 번역교과서의 난해함을 돌파하기 위해 참고문헌, 생각해볼 문제들, 주요핵심어 박스처리 등을 강화했다”라고 설명한다. 현재 새로운 편집위원이 구성돼 1.5버전의 개정판을 준비중인데, 길게 볼 때 교양성을 강화한 책과 이론적인 업그레이드를 강화한 책으로 이원화시켜 “어렵다는 불만과 너무 쉽다는 불만”을 동시에 잠재울 계획이다.

이론사회학회는 지난 2001년 토착사회이론을 표방하며 결성된 단체로, 김필동 충남대 교수, 이기홍 강원대 교수의 주도로 사회학이론의 토착화 가능성과 그것의 교과서로의 연결을 조심스럽게 타진했다. 몇 차례 회의를 거듭했으나, 구체적인 절차에서 집필진, 책의 체계 등이 갖춰지지 않아 현재는 잠정 유보된 상태다.

정치학 정치학계의 새로운 교과서 쓰기는 한국정치사상사학회가 독자적으로 이끌고 있다. 회장인 이택휘 서울교대 총장, 박홍석 이화여대 명예교수, 신복룡 건국대 교수와 김석근 연세대 연구교수, 박현모 정문연 연구교수, 김현철 고려대 연구교수 등 원로와 소장으로 배분된 편수위원회를 구성해 고중근세 한국정치사상사를 통관하는 대형기획을 준비중이다.

이것은 3단계로 진행될 계획이다. 내달 초 집필진을 확정지어 개괄적인 통사를 한번 쓴 뒤 → 고대, 고려, 조선 전·후기, 근대로 세분화해서 4~5권을 낸 뒤 → 다시 그걸 종합하는 통사 구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실무를 맡은 정윤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는 “한국 정치사상에 관한 책이 몇권 있지만 몇몇 사람들이 알음알이로 정보를 나누며 만든 게 전부”라고 지적하며 이번 작업의 의의가 ‘公論’에 있다고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는 정치사상이라는 주제영역을 다루는 것이라 정치학 전반의 개론서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론과 역사와 사상을 종합하는 정치학 개론서가 필요한데 아직 멀다. 몇몇 교수 등 교과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긴 하지만 실천에 나서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경제학 반면, 경제학 쪽의 사정은 썩 다르다. 미국경제학이 근대경제학을 통일하면서 이론적 표준화를 이룬 상태라 이걸로 우리 경제를 설명하는 것이 그리 어색할 게 없다. 그래서인지 학자들은 “교과서 개발보다는, 현실에 맞게 잘 적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래도 번역(안)이 전부가 될 순 없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사회경제학회를 중심으로 주류경제학이 아닌 부분을 포함시켜서 옴니버스 식으로 편집한 新경제학 교과서가 두서너 차례 시도됐고, 그 결과물로 ‘한국경제론’(1993, 한울 刊) 등이 나왔으나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건 없다. 우리현실에 맞게 첨삭된 이론이라기보다는 스주의적 세계관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학계의 새로운 교과서 개발 시도는 대학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계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들이 전원 참가해 학교의 연구지원을 일부 받으면서 진행중인 통상경제학 개론서 4부작이 그것이다. 이기동 교수는 “우리 학생들에게 맞게, 커리큘럼과 수준 등을 고려해서 통상경제, 통상경영, 통상실무 등으로 나올 예정인데, 지난 3년간 준비해서 집필 완료된 상태다”라고 말한다. 대학 내부의 교과서 쓰기 움직임은 영남대, 경북대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지난해 초 김형기 경북대 교수가 쓴 ‘새정치경제학’의 경우 제도경제학 등 포스트근대의 경제학을 흡수하고 한국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회과학계의 ‘새로운 교과서’는 현실화 부분에서 학자마다 인식 차를 드러내고 있다. 교과서 집필을 학문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문제, 시장성을 ‘포기’하는 학술서와 다르게 시장성을 창출해야 하는 문제, 개론을 쓸 수 있는 능력의 문제 등이 겹쳐서 현실화가 어렵다는 것. 이 부분에 대한 학계의 심층적인 의견수렴이 전개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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